2020.10.18.해날. 맑음

조회 수 398 추천 수 0 2020.11.22 11:49:11


 

날씨 한 번 좋다.

올려다 본 아침하늘만 그런 게 아니라 종일. 어제부터.

고마워라.

지난 한 주 내내 나절가웃 흐린 하늘이었다.

이 하늘을 잃는 날이 가끔 두렵다.

(인간에게 저 하늘이)잊힐까 아주 가끔 긴장이 든다.

 

4주 위탁교육 기간 가운데 2주가 흘렀다.

오늘은 학생의 어머니가 면회(?)를 왔다.

두어 가지 반찬과 과일과 필요한 물건을 실어온.

일정 시작할 때 절반을 보내고 그리 해 달라 부탁했더랬다.

아침뜨락의 옴자 한 부분 장미 자리를 내주는 곳에 심을

장미 꽃 화분 둘을 찻값으로 지참하십사도 했다.

몇 개 들고 오신다는 걸 마다했다.

어머니와 아들 이름이면 되었다.

물꼬로 들어오는 이들이 두루 그리 채울 장미꽃밭이리.

 

해날도 해건지기는 계속된다.

가끔 너무 독한가 싶지만

좋은 습을 만들려는 일정이다, 이곳에서의 교육이 언제나 그러하듯.

수행하고 일터로 갔다.

한곳에 모아 심으려고 거름을 넣고 흙을 쪼아두었던 느티나무 삼거리 아래쪽에

분꽃뿌리부터 마저 심었다.

막 도착한 어머니와 이곳에 머물던 아들은

아고라에 들어 잔디 사이 풀을 뽑았다.

어느새 마무리를 하고 미궁의 장승 아래까지 진출한 두 사람.

나는 옴자 사잇길을 따라 심었던 광나무를 돌보았다.

멧돼지가 파헤치고 정리했던 둘레를

그 멧돼지들 다시 들러 마구 헤집었더랬다.

손을 대지 못한 채 여러 날이 흘렀다가

사람들이 풀을 뽑는 사이 흙을 쪼고 고르고 물도리를 만들고,

그리고 물을 흠뻑 주었다.

여러 날 없는 비다.

마침 물 줄 때도 되었던.

그런데 늑골에 담이... 으윽!

 

아래 학교에서는 손을 대다 만 흙집 화장실 양변기 두 개를 놓는 일이 이어졌다.

어줍잖게 접근하는 이들보다 경비를 더 들여도 기술자가 붙어야 한다는,

언제나의 결론이었다.

결국 그 만큼의 비용이 들고 마니까.

산골 삶의 어려움 하나는 사람 부르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닌.

도로가 넓혀지고 차가 씽씽 달릴 수 있어도 여전히 깊은 멧골이라.

지난 11일 흙날 공사를 시작할 때 타일작업까지 할 수 있다는 이가

변기를 놓고 미장을 하였으나 타일은 손 놓았다.

타일공을 따로 불러야했고,

앞서의 작업에서 몰탈 덩이가 변기 배관에 들어가 있는 걸 발견했네.

지난 작업자가 마저 작업했더라면 일 다 하고 또 뚫을 뻔하였다.

반나절 작업 동안 학교아저씨가 보조를 하고,

정화조를 파고 헤쳐 놓은 곳은 하얀샘이 물길을 잘 열고 관을 묻었다.

달골에 쓰이고 남았던 타일은 제법 있었으나

벽체용을 바닥용으로 쓸 수는 없었다.

면소재지 나가 구석에 있는 얼마쯤을 가져다 썼다.

깔끔하게 바닥은 정돈되었다.

사람들이 떠났고, 곧 다시 할 작업이 남았으나

시멘트 먼지를 그대로 두고 지낼 수는 없었다.

청소라!

 

몇 가지 반찬을 챙겨 대처 식구들이 서둘러 떠나고

낮 밥상을 물리고 차를 마신 뒤 면회를 마친 아이의 어머니도 떠나고

하얀샘도 가고

학교에는 셋만 남았다.

해날 오후 비로소 자신의 시간을 쓴 아이는

5시 저녁 준비를 도우러 가마솥방으로 들어와

어제처럼 마늘을 깠네.

 

하루재기에서 11학년 아이가 말했다.

엄마에게 할 말이 많았는데,

엄마가 와서 반갑고 좋고 했지만 말이 그리 나오지는 않더라지.

뭔가 어머니로부터 자신이 떨어져 나온 느낌이 있더라고.

엄마는 여전히 엄마인데... 엄마 치마폭에서 벗어난 것 같은...”

독립체!

찡했다. 그 사이 아이가 또 훌쩍 자란 거다.

삼시 세 때 단단하게 먹고 있는 아이는 볼에 보기 좋게 살이 붙었듯

마음에도 그리 살이 붙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제가 할 일이 공부만 하면 되겠다는...”

준비가 된 거다, 수험생으로 돌입할.

9학년을 마치고 필리핀에 어학연수를 갔고

들어와 코로나19에 발이 묶였다.

잠시일 줄 알았던 시간이 아홉 달이 되고

11학년이 흐르고 있는데, 대학을 갈 생각을 하며 막막해라 하던 차에 온 위탁이었다.

아이가 사람의 마음을 알고 좋은 습을 가졌으니

이제 그대는 공부만 하면 된다는 말을 농처럼 놀이처럼 던지고는 했는데,

정말 이제 공부만 하면 되겄다.

 

며칠 전부터 왼쪽 갈비뼈 쪽이 뻐근하던 차에

아침뜨락에서의 괭이질에 그만 담이 왔더랬네.

위탁 일정도 이어지고 있고,

낼모레 초등 전교생 대상 특강도 종일 이틀 내리 있는데,

안 되겠다, 몸이 스스로 회복할 때까지 기다릴 게 아니다며 근육이완제를 먹기로 한다.

뜨거운 물주머니로 찜질도 하고.

 

여름 하늘같은 별들이었다. 쏟아진다...

 

아침: 토스트와 잼, 우유

낮밥: 잔치국수

저녁: 밤밥과 홍합국, 고기볶음, 고구마야채샐러드, 멸치볶음, 고구마줄기무침, 배추김치, 그리고 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636 4월 물꼬stay 닫는 날, 2019. 4.21.해날. 맑음 옥영경 2019-05-20 17525
6635 2012. 4. 7.흙날. 달빛 환한 옥영경 2012-04-17 8171
6634 민건협 양상현샘 옥영경 2003-11-08 4804
6633 6157부대 옥영경 2004-01-01 4448
6632 가족학교 '바탕'의 김용달샘 옥영경 2003-11-11 4325
6631 완기의 어머니, 유민의 아버지 옥영경 2003-11-06 4275
6630 대해리 바람판 옥영경 2003-11-12 4252
6629 흙그릇 만들러 다니는 하다 신상범 2003-11-07 4239
6628 뚝딱뚝딱 계절학교 마치고 옥영경 2003-11-11 4208
6627 너무 건조하지 않느냐길래 옥영경 2003-11-04 4166
6626 이불빨래와 이현님샘 옥영경 2003-11-08 4150
6625 122 계자 닫는 날, 2008. 1. 4.쇠날. 맑음 / 아이들 갈무리글 옥영경 2008-01-08 4029
6624 출장 나흘 옥영경 2003-11-21 4024
6623 2008. 4.26.흙날. 바람 불고 추웠으나 / 네 돌잔치 옥영경 2008-05-15 3613
6622 6월 14일, 류옥하다 생일잔치 옥영경 2004-06-19 3582
6621 6월 18일, 숲 속에 차린 밥상 옥영경 2004-06-20 3512
6620 123 계자 닫는 날, 2008. 1.11.쇠날. 맑음 / 아이들 갈무리글 옥영경 2008-01-17 3502
6619 '물꼬에선 요새'를 쉽니다 2006-05-27 3458
6618 12월 9일, '대륙보일러'에서 후원해온 화목보일러 옥영경 2004-12-10 3395
6617 2007.11.24-5. 흙-해날. 맑음 / 김장 옥영경 2007-12-01 3325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