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뚝. 첫서리 내린다는 상강이었다.

11학년 아이랑 며칠 만에 같이 온전히 한 해건지기였다.

아침 7시 천천히 몸을 깨우다.

 

어제 도라지밭 가의 농기구 창고를 쓴 식구들이

정리라고 노란 컨테이너를 잔뜩 쌓아놓았는데,

공간이 넓어져서 좋기는 했으나 일하기 좋은 구조는 아니었다.

너무 높아서 물건을 꺼내 쓸 수 없다면 그것 또한 정리라고 보기 어려운.

다 꺼내 담긴 것들을 확인하고

컨테이너 하나 하나 정리를 하고,

무거운 컨테이너와 쓰임이 잦지 않은 것들부터 안으로 넣고

손이 닿아 꺼내 쓰기 좋은 높이로 다시 놓다.

그 다음에야 밭으로 들어갔다.

그 밭에서 우리는 무수한 이야기들을 하지.

물꼬의 지나간 이야기들, 그 속에 등장하는 숱한 인물들,

그들로 오늘에 이른 물꼬라.

다시 고마웠고,

멧골 깊은 곳 밭에서 우리들은 우정을 쌓아가고.

같은 시간 학교아저씨도 올라와

기숙사 뒤란 축대에서 긁어내린 마른풀들을

오늘은 바닥에서 다 꺼내 버리다.

아래 학교에서는 얼마 전 작업한

흙집 화장실 정화조에 이어진 배관들을 흙으로 덮었다.

 

오후 교과학습에 대한 안내;

도저히 공부가 안 되는 그런 날,

일어나서 다른 일을 하는 것도 방법이지.

그런데 일어서기 전 딱 10분만 더 앉아 있어보기.

계속해야겠다고 마음이 변할 수도 있고,

또 다음 날 책상 앞에서 바로 공부를 이어가기도 쉬우니까.

다음 날 여전히, 그래도 하기 싫다?

그래도 책상에 가서 앉기.

무라카미 하루키가 전업 작가의 날들을 그리 보냈다지.

비록 한 줄도 써지지 않더라도 어쨌든 일단 앉는다.

 아무튼 그 책상에서 두 시간 동안 버티고 앉아 있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면 글을 쓸, 공부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것.

우리 뇌가 그렇다잖은가(정신의학자 에밀 크레펠린).

뇌는 일단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멈추는 데 에너지가 더 소모된다고 생각해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 판단한다고.

공부하기 싫은 날도 일단 책상 앞에 앉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대개 뭐라도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습이 되고.

, 책상 앞으로 일단 가세나.

 

저녁상을 물리고 아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부엌살림을 정리하고

달골 거실에서 책읽기.

호흡명상을 하고 하루재기를 하고

손빨래를 하고 날적이를 쓰고...

오늘도 하루 금세였더라.

 

아침: 토스트와 우유

낮밥: 잔치국수

저녁: 잡곡밥과 무국, 떡볶이, 달걀후라이, 간장게장, 고구마줄기무침, 열무김치, 그리고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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