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이다.

달골은, 엊그제부터 쫄쫄쫄 아껴 쓰던, 개울에서 길어와 쓰던 물이었다.

없어봐야 귀한 줄 더욱 알지.

아래 학교에는 사택 쪽으로 들어오는 마을 수도관을 고친다고,

위 달골은 지하수 모터를 수리하느라 부산한 아침이었다.

지하수 모터를 뜯어 이웃 도시로 넘어가 고쳐왔다.

어른의 학교진행에 당장 어려움을 줄 일은 아니었으나

이러저러 마음 쓰일 것을, 잘 마무리 지었다.

거의 바닥이던 밥못에 물도 채워 넣었네.

 

마침 대보름이라.

어른의 학교는 대보름제가 되리.

달골 기숙사에서 잘 게 아니라 청소 하나를 덜고,

학교 본관과 가마솥방 청소를 더했다.

여느 일정이라면 두어 시간 전에만 들어가도 될 부엌일 것이지만

낮밥상을 물리고 미리 불렸던 나물들을 삶아 무치고 볶고.

손이 오래 가는 것에 견주면 젊은이들에게 그리 환영받을 반찬도 아닐 것이나

설렜다. 도시에서 사는 젊은 것들, 단단한 밥상을 멕여야지 하며.

오곡밥(이라고 하지만 여덟이었네)을 위해

찹쌀과 보리 조 기장 수수며 몇 가지 콩을 삶고 말린 밤도 불리고,

거기 멥쌀도 섞고, 소화를 돕게 물을 좀 넉넉히 붓기로 하였으니 찰밥이라기보다 멥밥.

하루 전부터 준비한 먹을거리라.

2월 어른의 학교는 그리 특별함이 있다.

물꼬로서는 한 학년도를 마감하는 일정이고,

각자 한해를 갈무리하는 시간이라. 성찰하고 나아가는.

 

저녁버스로 세인샘 연규샘 하다샘이 먼저 들어왔다.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는 그대로 반갑고

먼 시간 건너 온 이는 또 그대로 고맙기 더하지.

연규샘이 몇 해만에 걸음 했다.

오지 않은 시간에도 그가 왔더랬다! 나는 오래 그를 기다렸더라.

아홉 살부터 서른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그는

여름과 겨울 아니어도 때때마다 물꼬에 머물러

그야말로 내부자(?)에 다름 아닌.

물꼬를 속속들이 잘 아는 그이니

향이며 국수며 골뱅이며 커피며 여기 필요한 살림들을 쟁여왔다.

봄이 오면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될,

그래서 가기 전 인사 겸 오기도 한 세인샘도

모두 즐겨먹던 주전부리를 기억하고 실어왔다.

차부터 달여냈다, 잘 왔다, 얼굴들부터 보자 하고.

하다샘과 세인샘이 가습이 산책을 시키는 동안

연규샘이랑은 달골 올라 밥못에 드는 물을 잠그고도 왔네.

명상정원 아침뜨락을 막 만들기 시작하던 때

미궁의 잔디를 심는 일손에 그도 여러 날 같이 있었다.

그가 걸음하지 못하고 있던 동안에도

듬성듬성했던 그 잔디 자라 틈을 메우고 있었다.

 

저녁밥상을 물리고 밤마실을 나갔다. 걷기수행이기도 할.

두멧길이 주는 푹함도 푹함이지만

역시 이어지는, 각자 한해를 산 이야기에 흠뻑 젖다.

끝마을 돌고개도 지나 윗마을 수원지 들머리까지 가서야 발길 멈췄네.

돌아오며 마을회관 마당에서 운동기구들도 다 만져보고.

소원문을 쓰고 야()단법석을 위한 자리를 마련할 즈음,

0130분 들어온 재훈샘과 진주샘이었네.(유정샘과 유진샘은 낼 밤에)

모둠방에서 잘 거라 달골 오를 부담도 없이 편히 기다렸던.

그제야 다들 운동장에 나가 소원문을 달집에 매달았다.

커다랗고 희뿌연 달무리 관을 쓴 달이 올라 있었다, 그야말로 중천에.

바람이 세지고 있었다.

재훈샘과 하다샘이 소화용 어깨걸이 물통을 각각 지고 왔다.

소화기도 하나 들고 나와 곁에 두었다.

달맞이와 함께하는 달사르기이나 우린 또 우리 형편에 맞게

비로소 달집에 불을 지폈다.

코로나19, 강풍으로 달집 태우기를 멈춘다는 소식들을 들었다.

불이 높이 치솟아 달을 그을렀다. 다소의 긴장이 일었다.

악귀를 내몰고, 저 끝까지 닿을 우리들의 소망이라!

 

()단법석,

배추전과 김치전과 골뱅이소면과 과자들이 놓였다.

물꼬에서 우리가 불렀던 노래들이 소환되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보낸 이름자들도 딸려나오다.

호열샘은 꼭 제 닮은 아들을 둘이나 보았네,

아람샘은 재작년에 혼례를 올렸지,

가온이도 곧 제대를 한다지...

 

03시에야 갈무리를 하였다.

모두가 잠든 밤, 04:30 뒤란 아궁이며 바깥을 돌아보러 나서는데,

아쿠, 바람이 아주 거셌다.

고마워라, 별 탈 없이 달집 태우고 거칠어진 바람이고나.

 

화장실이 안에도 생겨 다행했네.

중앙 현관문이 그예 내려앉아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았는데,

낡은 살림은 늘 우리에게 작전명령 같은 걸 수행케 한다니.

밤에 아주 닫았다 아침에 열어두는 걸로.

어른들은 바깥해우소를 쓰는데, 밤엔 안을 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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