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야삼경에 아이들과 칠흑의 두멧길을 걸었다.

저마다 넓게 자리하고 바람을 맞으며 밤길을 걷는데,

비틀즈 음반 자켓마냥 무슨 화보이기라도 한양 그 자유로운 몸짓 해방의 몸짓 같았던.

건호가 그랬던가, 물꼬에서는 어떤 악조건이 뜻밖의 선의 조건이 된다나.

별이 숨어든 칠흑의 하늘이 오히려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고,

그 어둠이 우리에게 다른 선물들을 가져와 주었다.

멧골을 채운 소리에 더 집중하게 한다든지 하는.

흐려서, 땀을 무시로 흘려도 일하기 좋았고,

흐려서, 비가 오지 않아, 일정 진행이 순조로왔더라.

 

아침, 걸음을 쟀다.

아침뜨락에 조금 더 손이 갔음 좋겠다 싶었다.

지느러미길에서부터 벽돌 오솔길을 미궁에서부터 쓸어내려왔고,

감나무 아래 콩나물 벽돌지대의 풀을 뽑았다.

손놀림이 바빠지니 몸에 더 힘을 주게 되고

조금 무리하게 움직여 호흡이 좀 벅찼기도 했던.

여유로이 준비해도 더 하고 싶은 혹은 해야 할 일들이 줄을 서는 이곳이라

늘 공연 5분전의 숨가쁨이 꼭 있기 마련.

 

정오,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12학년 영우는 결국 어제까지 오네 마네 하고 있다가

역시 부담스럽다고 빠져 넷이 구성원이 되었다.

이번에 초등계자에서 새끼일꾼으로 드디어 합류하는 채성에서부터 건호 현종 상범.

청계의 목적부터 짚는다.

최근 언론에서 시끄러운 두어 가지 소식으로 포문을 열며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도, 어떻게 흔들려도 사람이 지켜야 할 것들이 있잖을까,

어쩌면 그런 가치들과 삶의 경이로운 질서를 생각해보고 우리 안에 굳건한 심지 하나 세우는 일,

내 삶을 찬찬히 살펴보며 그런 거 하려 한다.

지난 학기를 성찰하고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더하여 기꺼이 자신을 쓰면서 더 깊이 성장하는 시간.

거기 쉼과 놂이 함께하기도.

이틀에 무엇이 그리 변할까만 계기는 될 수 있을 것.

저 여기 전에 왔었어요!”

? 그래? ... 혹시 너 경국이 동생 상범?”

세상에! 10년도 더 전에 여섯 살쯤이었던 아이가 자라 10학년이 되었다.

그간 공부하느라 못 왔다나.

중고생 나이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초등 때?

그가 왔던 빈들을 기억한다.

뱃속 아이에서부터 칠십 노모 안세영 할머니가 함께했던 그때.

긴 세월 지나 또 이렇게 만나네.

물꼬가 여전히 여기 있어 그리 본다.

하여 구성원 모두가 물꼬를 다녀갔던 이들이었더라는.

 

열무국수에 아이들이 가져온 어묵볶음과 메추리알조림,

그리고 물꼬 냉장고에서 머윗대장아찌와 양파지가 나온 낮밥상을 물리고

복숭아와 자두를 넉넉하게 먹고 물꼬 한 바퀴’.

공간을 돌아보는 것이면서 결국 물꼬의 가치관을 나누는.

구석구석 공간쓰임이 좋다,

낡은 곳이 정말 깨끗하다,

물꼬가 기후위기에 하는 구체적 삶의 방식을 들으며

플라스틱이며 물건을 생각 없이 써왔던 걸 반성한다,

마지막에 교문에 둘러서서 그런 나눔들을 하였더라.

 

비가 드문드문 있었다.

오직 한 걸음’(일수행).

저는 그저 놀고먹으며 좋은 관계라는 거 썩 믿지 않습니다.

그럴 때 안 좋을 게 뭐 있겠어요?

함께 땀 흘릴 때 관계가 더 돈독한 줄 압니다.”

공부만 잘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세상에서

물꼬는 끊임없이 일을 통한 교육을 주장하고 있다.

공부하는 머리 못잖게 일하는 몸도 중요하리니.

1. 소파 정리

책방의 낡은 1인용 소파 둘을 빼내고,

거기 둘러씌운 천의 핀을 다 뽑아내고,

수행방과 모둠방에 있는 소파를 빼낸 자리로 옮기고,

수행방에는 어른 책방에 있던 소파를 보내고,

나온 소파는 숨꼬방 곁 허드렛땅으로 보내놓고.

2. 동쪽개울 수영장 치기

수영장 가는 길의 일부 풀을 뽑고,

수영장 바닥에 깔린 흙을 쓸어내고,

걸리는 돌을 치우고.

비 내리면 멈출 것이었으나 고맙게도(?) 하늘은 일을 좀 더하라고 했다.

흐리나 날은 더워 물에서 하는 일이 반갑기도. 이내 추워졌지만.

초등 계자를 준비하는 일이기도 했다.

초벌 청소를 그리 해두면 샘들이 들어와 재벌 청소를 할.

돌아와, 마르지야 않더라도 젖은 옷들을 빨아 널고

간단하게 찬물을 끼얹다.

마음을 내고 움직이는 이들이 주는 감동이 있었다.

태성이가 그랬던가, 일하며 흘리는 땀은 좀 다르다고, 개운하달까.

그걸 안단 말야?”

 

햇발동 청소가 덜 된 부분이 있어 혼자 잠시 달골 오르다.

, 잠깐이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의 많은 일은 간 걸음을 더하게 될 것을 보거나

엉뚱하게 벌어진 일을 만나거나.

거실의 소파가 인근 도시의 한 학교 교장실에서 온 것이었는데

잘 닦아두었다 싶었는데도 덮개 천을 걷어 털려는데,

가장자리들에 곰팡이가 슬었다.

거실은 건물 안에서 가장 낮은 곳이고, 마침 거기가 습도 가장 많은 곳.

장마 때면 소파 뒤로 늘 벽에 곰팡이가 잊지 않고 찾는 곳이기도 했다.

박박 닦아내고 마른걸레질하고 바삐 가마솥방으로 돌아오다.

 

물일이 고단들도 했을 게다.

커피들을 찾았다. 물을 끓였고

더러는 얼음을 넣어 차게도 마셨다.

그리고 전기주전자의 물이 남아있었는데

채성이가 물었다, 물 비울까요?

, 새끼일꾼으로의 자질을 충분히 가진 그였네.

제 움직임의 마지막을 점검하는!

 

저녁에는 칠절판을 준비했다.

지난 달 연어의 날에서도 저녁상에 내놓았던.

뭐 반응이 좋으면 또 하게 되는.

마흔 밥상도 그리 준비했는데 여섯 밥상쯤이야.

거기 감자도 졸여내고 오징어채무침과 부추김치와 어묵볶음을 내다.

참외로 입가심하고.

설거지를 하는 아이들.

상범이가 야물게 시작했던 설거지가 다른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마음을 먼저 내는 채성이 역시.

 

실타래’.

수학이 자신의 숙제였던 채성은 수학대중서를 읽고 있었고,

현종은 쥘 베른의 소설에서 물꼬를 만나기도 했더라지.

철학에 관심 깊은 건호는 사르트르의 <구토>를 전하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들을 꺼내 모두의 공감과 이해를 받았던 상범.

그만 두는 용기,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힘을 보여주어 박수 받았다.

듣는 이들은 타인의 문제에 대해 모두 성급히 해결해주려기보다

깊이 경청하고 따뜻하게 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내 경우 아이들 이야기를 듣거나 굳이 따로 권하는 책이 있지는 않은데,

이번 청계는 특별하였네.

마침 청소년대상 독서록을 곧 출간할 거라 거기에서 다루었던 책

<좁은 회랑><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권하다.

지금 읽고 있는 <향모를 땋으며>도 잠시 곁들이고.

결국 만남을 통해

이 시대 우리가 만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낙관으로 끝났던가.

 

밤마실’.

뜻하지 않게 서른한 살 남자 어른이 동행한.

외가에 놀러왔다 마을에 나섰는데 어둠 속으로 성큼 들어갈 엄두가 안나 서성이고만 있다

우리를 발견하고 같이 가도 되냐고 물어왔더랬네.

바람이 좋았다. 우리도 바람 한 자락 되어 걷고 있었다. ...

어둠이 되려 우리 눈을 키워주고 있었다.

마을 앞 삼거리에서 여섯이 좌악 퍼져 두멧길을 채우고 있었는데,

그 풍경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행복했다.

상범이는 쇠똥구리, 풍뎅이, 사슴벌레들을 길바닥에서 찾기도 했고,

전봇대가 있으면 그 빛 아래로 좇아갔다. 현종이가 얼른 따랐다.

거기 곤충들이 매달려 있을까 살피는.

형님은 동생들에게 얼마나 훌륭한 선생인가.

별은 없었으나 골짝 끝마을 돌고개 이르기 전 매우 어둑한 곳에서

우리는 길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세상을 채운 소리들이 귀로 흘러들었고,

우리는 더 많은 별을 헤고 있었으니.

동행했던 어른이 저 위에서, 그리고 내가 아래에 서서 아이들을 지켰다,

이 밤에도 차가 올 수 있으리니.

건호가 그랬다.

물꼬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별을 볼 수 없는 하늘이 싫을 수도 있는데

그런 지점들에도 물꼬라서 좋았다던가.

돌아오는 길, 한 사람씩 자기 가진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한자가 어렵다면 어떻게 접근할까,

수학은 또 어떻게 할까, 그런 학습적인 것까지도.

 

()단법석’.

자정에 골뱅이소면을 먹었다.

한 덩이 더 섞을까?”

그예 삶았던 국수를 다 먹다.

달골에 닿아 차에서 가방들을 내리는데,

, 비가 후두둑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이 신비로운 물꼬의 날씨를 말하기 않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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