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14.물날. 흐림

조회 수 1139 추천 수 0 2007.04.02 22:12:00

2007. 3.14.물날. 흐림


가마솥방에서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 온기가 있는 곳이 아쉬운 산골이지요.
오늘은 식탁을 치우고 난롯가에 요가매트를 깔아서
바닥에 앉아보았습니다.
‘찻상 앞에서’ 도란거리고
‘피아노 곁에서’ 노래 부르고
Elfie Donelly의 장편을 읽어나갑니다.
아침마다 들려주는 동화의 이번 학기 첫 책입니다.
그리고, 옛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으로
이번 학기 ‘우리말 우리글’ 첫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마솥방에서 공부를 하니 교사에게도 움직임이 좋습니다.
아이들이 작업 하는 틈틈이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일까지 볼 수 있지요.
올해는 ‘가마솥방지기’ 자리가 비어 있어
마음을 내고 시간을 낸 이가 먼저 들어가는 부엌이랍니다.

오후에는 달골에 나무 두 그루를 심었습니다.
새 학기 첫날을 여는 ‘형님 되는 날’에 심으려던 것이었습니다.
달골 들머리 한 편은 돌이 많은 비탈이라
남자 어른들이 구덩이를 판다고 애먹었지요.
“우와!”
마지막에 파낸 돌덩이는 바위라 일컬을 만치 컸고,
길로 굴러내려 움직이질 않았지요.
그걸 또 아이들과 저는 한 곳에 자리를 잡아주겠다고 움직이려는데
상범샘이 소리쳤습니다.
“하면 만원 준다!”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렛대를 쓰니 받침돌을 쓰니 야단입니다.
“만원의 힘이 크구나?”
“그게 아니라 이걸 정말 움직여보고 싶은 거예요.”
그 돌, 움직여졌을까요, 움직였다면 어느만큼 갔을까요?
아니면 그 자리에 두었을까요,
그도 아니라면 어른들이 도와 다른 곳에 놓였다?
젊은할아버지와 상범샘이 길 이 편으로 구덩이를 또 하나 팔 때
종대샘은 경운기 지나 다녀 다 패여 버린 달골 마당 잔디를
다시 잘 깔아주었네요.

그리하야
들머리 왼쪽에는 ‘하나’가, 오른쪽엔 ‘훈나’가 심겨졌습니다.
하다가 돌보는 나무, 종훈이가 돌보는 나무,
뭐 그런 뜻이랍니다.
물을 흠뻑 준 뒤
모두 손을 맞잡고 둘러서서 노래를 불러주었지요.
바람 많은 동네에 어린 나무가 혹 쓰러지기라도 할까
목수샘이 지지대를 잘 만들어주었습니다.
달골에 벚꽃 날리는 날도 머잖겠지요.
아이들이 성큼 자라 그 나무 그늘 아래를 걸을 날도 오겠지요.

아이들은 달골을 내려와 이번 학기 속틀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학기 흐름 가닥이 좀 잡혔지요.
한 아이는 공동체에서 오래 지내왔고,
한 아이는 작년 한 해를 예서 살았습니다.
했던 가락, 그거 무섭데요.
아이들이 일이고 공부고 잘 움직이고 있습니다.

공동체식구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장기방문자로 머무르는 목수샘의 등장으로
일이 많이 수월하다고들 했습니다.
이틀 꼬박 걸리리라던 포도밭 가지치기도
어제에다 오늘 오전을 더하니 끝났더라지요.
작년에 농사부에서 들여놓았던 버섯이
학교 큰마당 가에서 한 트럭 종균을 안고 쌓여있었습니다.
이제 저들 집을 세워줄 때가 됐는데,
올해 줄이고 있는 농사규모에서 이건 또 어쩌나 고민이 많았지요.
“상품으로 할 게 아니라면 굳이 못할 것도 없겠다,
달에 한 차례 뒤집어주면 된다는데...”
표고장을 마련키로 한 까닭이 이러하였습니다.
모양이 곱지 않아 팔기는 뭣해도
두루 나눠먹는 거로야 어려울 것이 없겠지요.
거름장을 호두나무 아래로 옮기고
버섯동하우스를 만들어 표고목을 옮기기로 합니다.

“달골 콩밭에 물이 많은데...”
수로를 만들 날을 받기도 하였지요.
아이들이 해본 가락으로 살아가듯
여전히 일 많고 사람 없는 올해,
어른들 살이가 고단키도 하겠구나 싶더니
살아본 가락이 또 이리 무섭습니다.
하루 하루 여유로이, 그러나 꽉 차서,
잘도 흘러가는 산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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