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3. 16.쇠날. 가끔 구름 지나다 / 백두대간 '괘방령-추풍령' 구간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가 마당까지 흘러내려오는
산골의 이른 아침입니다.
어른들이 일찍 집을 나선 종훈이네에
박진숙엄마가 준비해둔 도시락을 같이 들고 오려
류옥하다가 건너갔습니다.
“종훈아, 가방 좀 보자.”
여벌 바지랑 양말이 들어있지 않았던 가방이 채워졌겠지요.
“물 안 들어가는 바지 입어야 되는데...”
“뭘루 갈아입지?”
“저기 있네.”
“잠바도 갈아입어야겠네.
너무 두꺼우면 산에 가서 힘들어. 얇은 거 없어?"
“없어.”
“옷장에 한 번 찾아봐.”
“이거?”
“좋은 거 있네. 봐, 열자마자 있잖아.”
그렇게 채비를 하고 둘이 나타났습니다.
산에 갈 때 신발을 시원찮게 신고 왔던 적이 있는 종훈이라
제가 물었지요.
“운동화도 하다 네가 챙겨 신긴 거야?”
“아니, 그거는 지가 챙겨신더라. 기억하고 있었나 봐.”
산골 사는, 열 살 아홉 살 형제 같은 아이들 이야기랍니다.

산에 갑니다.
학기의 시작과 끝에 있는 산오름입니다.
조금 거친 남덕유산으로 가는 건 어떨까,
어른들을 더하더라도 일행이 다섯인데
이번 참에 아주 멀리까지 가보는 건 또 어떨까,
이리 저리 따져보다
결국 해오던 백두대간종주를 잇기로 합니다.
제 8구간(우두령-추풍령) 가운데
제 16소구간인 ‘괘방령-가성산-추풍령’을 걷기로 하였지요.
길이야 그리 어려울 것도 아닌데,
외려 그것이 지리할 수도 있겠습니다.

괘방령.
상범샘이 우리를 부려놓고 학교로 돌아갔고,
우리는 산에 사는 것들에 대한 예의를 다시 짚은 뒤
길을 올랐습니다.
10시 20분,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시작입니다.
아직 겨울 기운이 가시지 않은 잡목들 사이 왼쪽으로
늘상 지나다니는 매곡-직지사길,
그리고 그 길 양쪽으로 자리를 튼 마을들이 보입니다.
해서 산을 타는 느낌보다 앞산 능선을 따라 걷고 있는 듯 여겨져
발도 그만치 가볍습니다.
종훈이가 조금 더디기는 하나
언제나처럼 꾸역꾸역 나아갈 겝니다.
418m봉을 지나면서 능선이 왼쪽으로 크게 꺾이고
작은 봉우리 하나 넘은 안부 오른쪽으로 길이 열립니다.
매곡 공수리 오리실에서 올라오는 곳이지요.
이제 계속 오르막입니다.
“어?”
포르릉거리는 새소리가 발을 멈추게 합니다.
고개를 들었지요.
3m도 더 되겠는 긴 나무의 맨 끝에
아주 작은 새 한 마리가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박자를 따라 우리도 리듬을 타며 흥얼거려보았지요.
“왜 왔니?”
“너는 뭐하니?”
한참을 화답하다 그가 날아가서야 우리도 갈길을 갑니다.

“좀 쉴까?”
출발해서부터 한 시간, 내리 걸었던 걸음을 놓습니다.
길가 무덤, 죽은 자의 집에서 산자들이 늘어지게 쉬었지요.
가성산(716m)까지 다시 한 시간여 걸어야 한다 했습니다.
산길도 20여 년 전에 견주면 길이 참 좋아졌습니다.
그때 만들어진 안내도들에 따라 걷다보면
예상보다 늘 시간이 단축됩니다.
백두대간을 밟는 사람들이 그리 많아졌다는 얘기겠지요.
구불구불 하던 길이 좀 발라지기도 했겠습니다.
괘방령에서 가성산까지도 어른 걸음으로 2시간인데
아이들 걸음으로 20분이나 줄데요.
가성산 꼭대기는 열댓 평의 시멘트 공터,
흉물스럽기보다 예까지 그걸 져다 나른 손에 놀라 못 봐 줄 것도 아닙니다.
“저어기가 황악산!”
나침반을 놓고 아이들과 남쪽을 향해 서니
거기 황악산이 있습니다.
뒤를 돌면 장군봉이지요.
“저 너머 봉우리 있지? 거기가 눌의산이야.”

볕이 다사로웠지요.
정상을 피해 도시락을 여는 게 일반적이나
바람이 달아
그래요, 달아서 자주 침이 고였지요,
정상에서 자리를 깝니다.
늘 물꼬표 김치김밥만 먹다 오늘은 갖가지가 들어간 보통김밥입니다.
약식도 담겨있습니다.
사과도 먹기 좋게 잘라주셨네요.
급히 준비했던 계란말이와 잊지 않은 김치도 별미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산길이 평탄했음을 먹는 데서도 확인하지요.
먹성이 썩 크지는 않데요.
그런데, 홀로, 문득 아이들이 그리웠습니다.
첫정이 무서워, 역시나 상설 1기 아이들이 젤 생각키데요.
우리 함께 올랐던 그 산들, 그 땀들...

가성산 정상을 넘어서며 잠시 길이 헷갈립니다.
안내도에서도 그리 일렀더랍니다.
“오른쪽으로 난 좋은 길은 김천공원묘지로 가는 길이고
대간은 왼쪽 잡목 속으로 이어지는데
초입에 작은 잡목이 꽉 덮여있어 길 찾기가 힘들다...”
가다가 왼편 비탈길에 키 낮은 소나무군락이
거대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존재 존재들이 끼리끼리 모여 사는 양에 울컥합니다.
사는 일이 참 별일 아니다,
그만 아득해지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이 능선이
왼편으로는 영동 매곡, 오른편으로는 김천 봉산을 가르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3월, 그것도 주중, 사람 만날 일이 좀체 없겠다 했는데,
홀로 산을 오른 이가 있습니다.
종주하는 이가 아니라면 이 길을 탈 일이 거의 없지요.
“종주하시나 봐요.”
5월에 끝내려한답니다.
물꼬산 포도즙을 나눠 마시며 같이 다리쉼을 하다
그 먼저 걸음을 재촉했지요.
“종주를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가성산에서 마치 눈앞에 있는 듯하던 장군봉인데
깊게 내려갔다 올라가야 하니 그 거리가 결코 짧지 않습니다.
몇 십m 나아가니
큰 바위를 왼쪽으로 돌아 밑으로 내려서면서 길이 뚜렷해집니다.
일부러 길을 비껴가며
가을과 겨울이 지난 숲에 쌓인 낙엽 위로 데굴데굴 굴러보기도 합니다.
미끄러진 김에 아예 일어설 생각을 않고
그만 누워버리기도 하였지요.
거기 평온과 평화가 있습니다.
아이들도 덩달아 아예 낙엽미끄럼을 타며 내려와
역시 데굴거리며 하늘을 향해 봅니다.
발은 낙엽더미에 푹 빠졌고 온 몸이 낙엽 속으로 푹 꺼졌습니다.
안온합니다.
정토나 천국이 또 별 게 아닌 거지요.
이처럼 살았으면 싶습니다.
다시 일어나 한참을 내려갔다 다시 오르고 또 오릅니다.
옌가 젠가 장군봉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겠구나 하는데
대구백두회에서 남긴 표식이 펄럭였지요.
“장군봉 624.8m”
백두대간 종주하는 걸음들이 많아지면서
곳곳에 매둔 리본과 이런 안내판이 좋은 길잡이가 됩니다.
어쩔 땐 거슬릴 때도 없지 않으나
뒷사람을 위한 훌륭한 안내가 되고 있음에 고마움이 더 크지요.
다시 30여분을 그리 걸었더랍니다.

눌의산(743.3m)을 향합니다.
장군봉에서 1시간이라 하였으니 지금 우리 걸음으로는 4,50분이면 닿겠지요.
“이것 좀 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30Cm쯤 자란 나무가 90도로 꺾여
경사지 아래편으로 6,70Cm로 자라
다시 하늘을 향해 올라있었습니다.
“말 같애.”
아이들이랑 말을 타보았지요.
한참을 달리다 내려왔습니다.
“다른 사물은 조금만 달라도 신기해하면서
왜 사람은 조금만 달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우리들은 종대샘이 던진 말에
곰곰이 생각을 달며 다음 길을 걷게 되었더라지요.
곧 편평한 능선이 오른쪽으로 틀면서 헬기장을 보여줍니다.
정상으로 보기에 조금 석연찮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더 올라가니 정상에도 헬기장이 또 있습니다.
“와!”
이 구간 최고의 전망대가 바로 여기지요.
발 아래 추풍령이 까마득히 내려다보입니다.
오른쪽에서부터 경부고속도로가 추풍령을 휘어 돌며 왼편으로 가고
기찻길도 연달아 가고 있습니다.
"추풍령 저수지다!"
우리는 노래도 부르고 사진도 찍고,
기울기 한참 된 해를 올려다보며 다시 일어섰지요.

이제 내림길입니다.
추풍령을 향한 마지막 길이지요.
경사가 급해 나뭇가지를 잡고 겨우 내려섭니다.
길도 많이 미끄러웠지요.
아이들은 아예 엉덩이를 내놓았습니다.
검은 진흙이 좋아라 붙었겠지요.
종대샘과 종훈이는 뒤에서 무에 저리 말이 많은 걸까요?
보지 않아도 종대샘이 슬슬 약을 올리고 있는 거겠다 짐작하겠고
종훈이는 또 능글거리며 따박따박 말대응을 하겠구나 예상했지요.
나중에 물으니 구구단을 외웠더라나요.
"'산 타는 게 힘들다’는 생각에 잡혀 있으면 고되니까...”
몸과 생각을 떼놓아 도와주려 그랬다는 종대샘의 설명이었는데,
글쎄요,
종대샘이 하고픈 수다는 아니었나 모르겠네요...
능선이 완만해지며 계속 잡목숲이 이어집니다.
“나비다!”
엄지손가락 한 마디의 절반쯤 되는 나비 한 마리 곁을 지납니다.
산을 오르기 시작할 때부터 함께 했던 그랑 걸 알아차렸지요.
봄길을 그가 잡아주고 있었던 겝니다.
외로울까 마음 썼던 그인 듯하여
그만 잠시 목울대가 떨렸지요.

툭툭툭툭 내려서다 다리에 힘이 다 빠지는 어느 순간이 있었습니다.
한 바퀴 돌며 길가에 벌러덩 누워버렸겠지요.
뒤에 오던 이들도 덩달아 착착 누웠습니다.
맨 마지막의 젊은할아버지까지.
지나간 시간들과 오늘 우리들의 산오름,
그리고 남은 날들을 위해 도란거렸지요.
“우리 이렇게 내내 살자!”
너나없이 마음들이 그랬을 겝니다.
사는 일이 참 아무것도 아니지요.
삶의 다사로움이
바로 그 자리에 잔잔한 물결 이는 호수마냥 번져가고 있었지요.

갈림길이 나타나 오른쪽으로 내려섰습니다.
“세상에...”
수십 년은 넘어 되는 살구나무 댓 그루가
방울방울 꽃망울 머금고 펼쳐져있었습니다.
학교 마당에 있는 오래된 살구나무에 안면 있는 아이들도
당장 반가워라며 발걸음을 멈추었지요.
봄은 기적입니다.
이래서 또 살만해지는 겁니다.
그 맞은편으로 자두꽃 벙글고 있었고
밭두렁엔 봄존재들이 다부룩다부룩 솟구치고 있었지요.
오른쪽으로 내려서니 송리 마을에서 돈목마을로 넘어가는 작은 길이었고,
능선은 소나무숲을 이루며 고속도로까지 이어졌지요.
송리 마을로 들어서서 길을 따라 내려와
고속도로 다리 밑을 지나니 포도밭이 이어집니다.
“장하네.”
포도밭 가지 치던 아저씨 한 분이 관심을 보였지요.
그렇게 아이들 어깨 으쓱하게 해주는 사람 하나쯤 만나주면 고맙다마다요.
조 아래 어느 폐교에서 자연학교를 꾸리는 이들의 소식도 들려주셨습니다.

철도를 지나 마을 사이로 난 길을 지나
2차선 도로 위에 섰습니다.
“추풍령표석비가 저쪽인가요?”
“저 다리 있고 있었는데, 이제 없어졌을 걸요.”
맞겠습니다.
대신에 맞은 편 어딘가에 노래비를 세웠다 들었습니다.
그렇게 추풍령 당마루에 닿았습니다.
당집이나 당나무 한 그루 없지만 여전히 당마루입니다.
겨우 해발 221m의 언덕배기이지요.
그래도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분기점이며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입니다.
마을은 하나인데 절반은 김천, 나머지 반은 영동이지요.
이 편에 경상도 주막이, 저 편에 충청도 주막이 있는 게지요.
눌의산을 출발해 또 1시간이 걸렸습니다.
5:30.
걷기야 많지 않았어도 쉼이 오래였더니
7시간을 들인 산오름이었네요.
추풍령 노래비 앞에서 사진 한 장!
“구름도 자고가고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구비마다 한 많은 사연
흘러간 그 세월을 뒤돌아보며
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
그 모습 그립구나 추풍령 고개”(노래 ‘추풍령’)
충청도 쪽 주막에서 다리쉼을 하며 저녁을 먹습니다.
젊은할아버지가 애쓴 모두를 위해 한 선물이었지요.
곡주도 한 잔.

다시 상범샘이 우리를 실으러 왔습니다.
추풍령역을 지났지요.
경부선 열차가 하루 3백여 차례는 지나나
서는 건 겨우 네 편,
서른 남짓 타고 내린다던가요.
칙칙폭폭 시절 부산에서 물을 채운 증기기관차는
삼량진에서 다시 물배를 채우고
예서 다음 물을 먹었다 했습니다.
말쑥해진 건물이야 그 기억을 살려주지 못하지만
추풍령의 이름자가 먹은 추억이 그 건물을 덮습니다.
우리들의 오늘도 그런 추억이 될 겝니다.
충만한 하루였더이다.

모다 애썼지요,
모다 고맙지요.
좋은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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