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23.달날. 빗방울 / 전교조분회 참실대회

조회 수 1067 추천 수 0 2006.10.27 12:05:00

2006.10.23.달날. 빗방울 / 전교조분회 참실대회


“개산에 분홍색의 구절초 꽃이 시들고,
참억새 꽃이 바람에 날리기 시작하자 강바람이 쌀랑거렸다.
상강이 되기도 전에 서리가 내렸다.”
문순태님의 ‘타오르는 강’에서 그리 쓰고 있습니다.
상강(霜降)입니다.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에 들며,
아침 저녁 기온이 내려가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이지요.
지구온난화로 곳곳에서 이상기온이 이어진다는데도
계절과 계절 사이 비가 들고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무어라 다 표현할 길 없는 신비로운 자연입니다.
다시 겸손해지는 이 아침이 고맙습니다.

전통수련법과 명상으로 해건지기를 하고 감을 줍고
노래로 배움방을 열고 ‘첫만남’을 하고 ‘찻상’앞에 앉았다
새로운 장편동화를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단소연습도 있었지요.
‘우리말우리글’을 합니다.
문장부호 익히기와 사전 찾기를 하였지요.
부호를 다루며 수학에서의 부호의 의미도 같이 알아보며
‘부호’란 말을 정의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미 사전에서 낱말을 찾을 줄 안다는 아이들은
겹모음이며 겹자음의 차례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처음 찾는 이들은 새로움으로 즐거워했지요.
세 모둠으로 나뉘어 낱말 찾기 놀이도 했더랍니다.
나아가 어떤 자료에서 차례와 색인을 쓰는 법도 다루었지요.

참, 1학년 신기가 지각입니다.
아무래도 그 아이 흐름에 학교 다니기가 힘든가 봅니다.
집에서 좀 쉬기를 권할까 싶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많고 많은 날들에 굳이 학교가 좀 더디면 어떻습니까.

오늘은 노래 ‘가라’에 맞춘 춤이 끝이 났다네요.
상범샘이랑 읍내에 다녀들 왔지요.
“상범샘도 같이 했어?”
“아니요, 상범샘은 은행 털러 갔어요.”
은행을 따러 가기라도 하였나 했더니
은행에 일보러 간 모양입니다.
신기랑 종훈이도 열심히 했다데요.
재밌어라 하더랍니다.
썩 흥미를 느끼지 못 하는듯 하더니
정말 하다보니 재미가 있기도 한가 봅니다.

달날마다 구미를 다녀오면 젊은 할아버지가 늘 문을 열어주십니다.
열려있는 현관인데도 말입니다.
늦게 돌아오는 딸자식을 기다리는 아비 같습니다.
저녁엔 저들끼리 한데모임을 하고 날적이를 챙기고
귀신놀이를 했다 합니다.
젊은 할아버지를 졸라 조금 늦게 불을 껐다네요.
낼 아침 해를 더디 건지겠습니다.


낮 3시 30분,
구미 야은초등학교에 있었습니다.
전교조분회 참실대회였지요.
‘공교육과 대안교육의 만남’이라고 제목을 달았데요.
“물꼬는 대안학교로 불리는 것을 원치 않지만
공교육에서 보자면 역시 대안교육을 하는 곳이기에...”
분회장샘이 그리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교장 교감샘을 더해 열댓 분의 샘들과 자리를 함께 했지요.
“말이 어찌 저희 사는 질감을 담을지요.”
가볍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말이 많이 어눌하였습니다.
참 열심히 말해서 때로는 그 뜻이야 무엔지 몰라도
마치 알아들어야만 될 것 같다고들 하는데,
오늘은 말도 열심히 못했습니다.
한정된 내 에너지가 정녕 쓰일 곳에 잘 쓰이고 있는가 하는
요즘 하고 있는 고민이 삐죽삐죽 나와서였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사회의 우리는 너무 잘 ‘압’니다.
우리는 너무 잘 알아서 다른 걸 알지 못하며
너무 잘 알아서 고집과 아집이 강하기도 합니다.
다르구나, 그렇게 열고 들을 수 있기만 해도
새로운 세계를 유쾌하게 만날 수 있지 않을지요.
저런 움직임도 있구나 하고
물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셨길 바랍니다.
“공교육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배움에 이르는 길이, 진리에 이르는 길이 어디 하나이겠는지요,
다양하길 바랄 뿐이라 했습니다.

어줍잖게 교사의 가치관, 삶에 대한 자세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어떻게 배움에 이를 것인가가 나오는 거지요.
“아이들과 같이 해나가는 교실일지라도
결국 어른이기에 교사가 즐겁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
왜냐하면 고스란히 교실 분위기를 움직이게 하는 존재이니까요.”
그럴려면 교사야말로 누구보다 수련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겠냐고도 했지요.
뭐, 제 얘기였습니다.
“우리가 뭘 가르친단 말인가요,
정보가 얼마나 많은 사회인가요,
그림을 가르친다한들 연극을 가르친다한들 전문가들만큼 할 수 있을까요,
문제는 아이들과 어떤 관계에서 익히고 있는가 하는 거겠지요.”
아이들과 관계 맺는 이로서 필요한 게 어떤 걸까도 두어 마디 했을 겝니다.
황송하게도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였지요.
“동기부여요?
아이들은 동기로 충만해있고
그들은 배움을 즐긴다는 걸 여러분도 너무나 잘 아실 겝니다.”
그 즐거움을 앗지나 않는 교사가 될 일입니다.
순전히 제 얘기지요.

어디서나 그러하듯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었지요.
일일이 대답을 잘하진 못했습니다.
답을 한들 그게 답이 될지요.
- 아이들이 사회로 나가 적응할 수 있을지...
아니 제도권에서는 그러면 사회에 얼마나 적응하나요?
- 기초학습이...
기초학습이 무엇입니까. 다음 배움 과정을 수행할 능력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풍성한 인문학적세계가 그것을 더 잘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을지요.
제도권 5학년과 물꼬 5학년의 학력은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앎’의 영역에서 물꼬 아이들이 뒤진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 후원을 받아서 하던데 후원이 끊기면...
돈이 교육의 질을 결정하지는 않지요.
물꼬를 둘러친 자연만으로도 훌륭한 배움터입니다.
생명의 길을 찾아가는데 어려울 게 없지요.
사람이 사는데 그리 많은 게 필요한 것도 아니구요.
- 샘이 시작을 했고 샘 인맥으로 바깥샘들이 들어오고 샘이 담임을 하고,
만약 샘이 빠진다면 그 교육이 이어질지...
그건 아마도 제가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 들릴 것입니다.
정작 공동체 안에 들어와 보면
제 자리의 범주가 전체 가운데 불과 얼마 되지 않지요.
- 교육은 백 년을 내다보아야 하는데,
지금 그게 꼭 옳은 길이란 걸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는 거지요.
제도교육인들 꼭 옳은 길인가요?’
- 우리도 십년 전에 이십년 전에 다 해봤던 길인데...
문제는 지금도 하느냐는 것 아닐지요.’
- 작은 학교에서나 가능한 방식들이지 우리는 숫자가 많아서...
‘거긴 거기 맞는 방식을 찾는 게 또 교사의 소임이겠지요.’
- 검증받은 것이 아니라...
‘사람살이의 진리는 이미 인류가 검증해놓은 것 아닌가요.
물꼬는 사람답게 사는 길을 일찍이 가르쳐준 신성한 안내자들을 따라가고 있지요.’

생동감 넘치는 깔끔한 이 교실은 어떤 이들의 왕국일까요,
6학년 2반 교실을 떠나 계단을 다 내려왔을 무렵,
김현숙샘이던가요,
달마다 두 차례 주말에 자원봉사를 가도 되냐십니다.
‘당신 학급도 있는데, 저리 마음을 내신다...’
마음이 싸아하데요.
춤에 관한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실 분이랍디다.
대학 강연을 통해 만났던
많은 품앗이(물꼬자원봉사자)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지난 이십여 년 물꼬를 꾸려준 큰 주축이었지요.

저로서는 무척 긍정적인 자극의 자리였더이다.
스물두 살에 시작한 일이 이제 마흔이 되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걱정을 지금도 듣지요.
아이들은 자라 어른이 되었고 또 다른 아이들이 성큼성큼 자랍니다.
다만 기다리지 않고 지금 여기서 무언가를 해보는 겁니다,
정말로 그러한가 묻고 또 물으며.

그런데 교장 교감샘도 새로운 형태의 교육현장에 관심이 많은 학교인데다
현장에서 애쓰는 좋은 동료들이 곁에 많이 있어 좋겠습디다.
부러웠습니다.
귀한 시간을 내서 그리 모여 아이들 얘기를 하고 있는 것도 보기 좋았지요.
교사들이 아이들 얘기 말고 무엇을 한단 말인가요.
교사 알기를 우습게 알고 살다가
좋은 교사들을 만나며 암담하다는 교육현장에 신뢰가 가는 이 즈음이었습니다.

채소가 많은 맛난 저녁도 얻어먹고,
차비라며 두툼한 봉투도 주셔서 학교살림을 꾸리는 이에게 잘 전할 참입니다.
고구마를 찌고 달골포도즙을 나눠먹자고 보자기에 싸갔는데,
풍물모임에서 꺼내지 않았음 다시 실어올 뻔하였네요.
구구한 말 대신 포도즙 하나를 같이 마시는 게 더 좋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세상에 나갔는데, 여전한 세상이었다는 느낌입니다.
그래도 세상은 변하고 있을 겝니다,
누구보다 저리 애쓰는 샘들을 통해.
세상,
그 속에 변함없는 진리가 있고 전 시간과 전 공간을 관통하는 것들이 있겠지요.
그것을 잘 찾아나가며
이 땅의, 아니 이 우주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평화가, 행복이, 다른 존재로 나눠지길 바랍니다.
지혜롭고 따뜻한 가치안내자로 저 자신을 잘 가꾸어
그저 아이들에게 보탬 하나 되면 참말 좋겠습니다.

아이들 방을 들여다보며 단도리를 해주고 나온 늦은 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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