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25.물날. 조금 가라앉은 하늘 / 햇발동의 밤

조회 수 1248 추천 수 0 2006.10.27 18:47:00

2006.10.25.물날. 조금 가라앉은 하늘 / 햇발동의 밤


아이들도 이 산골 가을의 한 풍경입니다.
오전엔 자기 연구 주제를 위해 움직이다가
국선도수련을 하고
연극시간엔 저녁에 있을 ‘햇발동의 밤’을 위해
사물놀이를 사람들에게 보일 만큼 되나 가늠을 해 본다 연습도 하고
다른 식구들과 나눌 노래도 한 번 불러보았지요.
아이들이 오가는 큰 마당에선
가을 산 다양한 색깔의 잎들처럼
웬 어른들이 한 무데기 족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영화사에서 보육원으로 쓰일 장소를 찾으러 온 적이 있었고
그들이 다시 배경으로 쓰일 곳으로 적당한지 알아보러 온 거지요.
그냥 가기엔 그들도
이 산골 가을 그림이 못내 아쉬웠던가 봅니다.

이번학기 낮 4시로 옮긴 ‘두레상’.
봄 여름 가을은 농사로 바쁘지만
겨울은 살아내느라 힘든 이곳,
땔감이 쌓여있어 든든하기도 하지만
각자 살림을 잘 살펴서 따뜻한 겨울이 되도록 하자고들 합니다.
종훈네서 농사지은 콩이 한 자루 왔다지요.
“나락을 열심히 키웠으나 뺄 것 다 빼면 그간 애쓴 마음이며 우리 품삯이나 나올까,
콩을 거두고도 김점곤아빠 마음이 혹여 그렇지 않았을까...”
무농약, 혹은 유기농으로 짓는 농사들을 서로 헤아리기도 합니다.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면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
사람 관계 또한 그렇겠구나고도 합니다.

두루두루 공동체 안팎으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도 나눕니다.
우물물을 끌어 하우스로 보내는 장치가
지난 밥알모임 아빠들이 파이프를 묻으며 다 됐고
경운기 나사가 빠져 수리를 할 거라 하고 농사부에서 전합니다.
논의 짚은 널어놓은 채 말릴 때까지 말려 여유 있을 때 묵자하고
은행은 비료포대 넣어서 삭히자 합니다.
김천 농사는 쇠날이면 벼 수확이 끝나고
콩은 아직, 그리고 수수는 덜 익은 것만 남았다 하며
배추 무를 먹을 만큼 심고 물주고 있다네요.
종훈네는 수확철에다 이사준비로 바쁘고
정민네는 밭의 것들을 한참 거두고 있나 봅니다.
동희네야 서무행정에다 가마솥방일까지 틈틈이 돕는 게 수확입니다.
요새 신기네는 기중기를 만들어볼까 한다지요.
“요만큼 쇠붙이 떼어 낼려고 이따만한 걸 가져오고,
잘 못 되면 뜯어내고 다시 하고,
부식된 것들 가운데 성한 부분을 오려내고,
설계도도 아닌 그림을 들여다보며 열심히 하는 걸 보며
이런 걸 어떻게 알았을까,
허우대만 멀쩡하고 말만으로 자기 성찰하고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을 줄여보는 것을 생각하며 삽니다.”
이웃 이은영엄마가 정운오아빠를 보며 하는 생각이라지요.
가마솥방은 영양에서 무 배우, 김천에서 무가 와 김치를 잘 먹고 있다 하고
아빠들이 눈물 흘리며 깐 양파로 고추와 함께 장아찌를 담았답니다.
곡성에서 유기농 사과가 와서
포도 배에 이어 과실이 풍성하게 이어지고 있지요.
교무실에서는 소식지를 만들고 있고 배움방을 지원하는 일을 전합니다.
다음주엔 영동대총장님, 교육장님과 자리를 해서
물꼬와 자매결연 건을 다루기로 하였습니다.
영동대로부터는 스포츠학과에서부터 일찍이 일어과 영어과의 지원들이 있어왔는데
사회봉사활동학점으로든 그들이 학교 내에서
이왕이면 어떤 혜택이 있었음 하는 바램이 있지요.


‘햇발동의 밤’이 있었습니다.
기숙사개방의 날쯤 되려나요.
아이들은 저녁을 먹자마자 서둘러 올라가서 널린 것들을 정리도 좀 하고
젊은 할아버지를 도와 컨테이너창고에서 콘티라 불리는 플라스틱상자를 꺼내
의자로 쓰일 수 있도록 기 햇발동 앞에다 둥글게 원을 그려놓았지요.
“환영인사라도 한 마디 해야지 않을까?”
금새 모여 역시 준비한 것처럼 거실 벽에다 한 마디씩 써서 붙여놓았네요.
먼저들 앉아 단소 연습도 하는 걸 잊지 않았습니다.
“어서오세요.”
“햇발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사람들이 올라오자 들머리까지 달려가 인사를 합니다, 주인답게.
건물 그림자가 진 한 켠엔 양초가 불을 밝히고 늘여서있고
마당에는 모닥불이 피었습니다.
곶감집이며 조릿대집이며 가마솥방에서
비스킷과 귤과 튀김과 은행이 안겨왔고
그리고 자리를 함께 한 두 분의 손님이
아이들 입이 벌어지게 한 종합선물세트와 구경하기 힘든 아이스크림까지 실어오셨지요.
“오늘 이 시간에 참석하기 위해 멀리서 오신...”
지나는 길에 하룻밤 신세라셨으나
마치 당신들을 환영하기 위해 모인 것처럼 둘러앉았더랍니다.
오랜 논두렁 정인철(박성현)님과 황해룡님이셨지요.
“승렬이와 무열이 우리 아이들의 정서를 키운 게 이 물꼬였다.”
치하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중학 1년 때 본 승렬이는 군대를 갔고
초등 3년이던 무열이는 이제 고교생입니다.
새끼일꾼으로 품앗이로 열심히 손발을 보태는 그들이지요.
“우리 아이들도 무열이 승렬이처럼 잘 키우고 싶습니다.”

두 패로 뭉뚱거려 부르던 노래들을
각자가 돌아가며 앞소리를 내보니
평소에 묻혀 지내던 작은 아이들 신기 종훈 창욱이가
큰 아이들보다 음감이 훨씬 낫다는 걸 알게도 되고,
달골의 기운 덕이었는지 노래가 어찌 제 소리를 갖추던지
아이들의 목소리는 얼마나 자신감으로 사랑으로 넘치던지
벅차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별이 없어도 환했던 밤이었더이다.
어른들도 고운 동요로 답가를 불러주셨지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하나씩 준비하자고 했습니다.
“저도 무슨 얘기들을 준비했는지 모르는데...”
그냥 저들 손으로 한 일이라
잘 안되면 안 되는대로 의미 있겠기에
준비가 어찌 되었나 아무것도 모른 채 아이들을 바라보았지요.
령이가 젤 먼저 손을 번쩍 들고 시작했습니다.
모두를 대표해서 마치 준비나 한 듯이 환영인사부터 하데요.
아이들은 배움방에서 들은 이야기,
혹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그들의 성격이며 경향을 그대로 반영해주데요.
실제 말이란 게
그 사람의 생각을 드러내주는데 한계가 있다 싶은 아쉬움이 드는 이도 있었고,
이야기의 줄거리보다 구연동화하듯 동화 한 줄 한 줄을 그대로 하는 이,
적당히 쉬운 책으로 조금 게으름을 드러내 보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저 녀석은 참 세상 편케 살어, 그리 늘 말하듯 여실히 편하게 제 식으로 말하는 이,
언론의 바람직하지 못한 역할에 대해 분노에 넘쳐 한심하다는 듯 말하는 이가 있고...
“신기도 준비했니?”
종훈이랑 같이 노래를 부른답디다.
뒤에 물었지요.
혹 형님들이 그들에게 그렇게 준비하라 했냐고.
아니랍니다.
그러니까 1학년 저들 둘이서 할 수 있는 걸 의논했던 게지요.
들은 이야기가 있으니 어른들도 주고픈 말을 주었답니다.
골짝과 개울물 소리와 아이들 목소리, 칠흙의 하늘빛,
아랫마을에서 들려오는 개짖는 소리, 마을의 가로등 빛,
그리고 따뜻한 어른들의 한마디가
얼마나 조화로운 밤이던지요.

창고동에서 어른들은 곡주를 한 잔씩 하고
아이들은 밤참을 먹고 놀고 또 놀았습니다.
이 불편한 곳에서 삶을 올차게 살아내려 애쓰는 마을식구들을 위해
와인을 준비하기도 했지요.
바쁜 시절이라 얼굴도 잘 못 보고 사는 요사이였습니다.

열 시가 다가오고
아이들은 잠자리로, 마을 식구들도 마을로 내려가고
정인철님과 황해룡님, 젊은 할아버지와 상범샘과
늦도록 우리 삶의 등불에 대해 유쾌하게 얘기 나눈 밤이었답니다,
오래 같이 살아온 사람들처럼.
마치 머잖아 이곳에서 같은 해를 맞이하며 살 것만 같은 생각이 다 들었지요.
반듯한 승렬이와 무열이가 아무렴 근원 없이 나왔을까요.
훌륭하게 자식을 키워낸 아버지로부터 새길 얘기가
어디 한 둘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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