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 9.달날. 뿌연 하늘에 걸린 해

조회 수 1182 추천 수 0 2006.10.11 18:13:00
2006.10. 9.달날. 뿌연 하늘에 걸린 해


하루 가운데 언제가 가장 좋으냐 물으면
이른 아침 창고동에서 아이들과 하는 ‘해건지기’라 하겠습니다.
너른 마루에 뚝뚝 떨어져 앉아 몸을 풀고 명상에 듭니다.
저 아래 마을이 그제야 잠을 텁니다.
고요가 고맙고 복된 아침입니다.

한 주를 시작하는 준비모임인 ‘첫만남’ 뒤
아이들과 차를 마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달날에 일과삼아 하기로 했지요.
아무래도 얘기소리 또한 차의 향내처럼 자분자분하게 되데요.

읍내 갔습니다, 춤추러.
그러고 보니 지난달엔 겨우 한 차례 나갔네요.
샘도 아이들을 기다렸다며 힘이 넘쳐있었지요.
“정말 운동한 것 같네.”
모두 땀을 삐질삐질 흘렸답니다.
신나게 몸을 흔들고 돌아왔지요.


서울 계시는 분으로부터 한가위 선물을 하나 받았습니다.
산골에 사는 단순한 삶이니 그저 매서운 추위에 내복이나 아쉬울까
그리 필요한 것도 없는 생활인데
멀리서 구해다 써야할 것을 잘 챙겨주셨지요.
가까이 사는 분이 아니니 제 생활을 둘러보고 주셨을 리도 없는데,
혹 은연중에 제 입으로 그거 좀 보내 달라 한 건 아닌가
지난 만남을 잘 짚어보기까지 하였답니다.
힘내라는 말씀이겠다 여깁니다.
그런 관심으로 즐거워도지는 생이니 말입니다.
타인에 대한 ‘섬김’을 되새기게 하여주셨습니다.

교사모임 하나에 나가고 있습니다.
선생 알기를 우습게 알고 살다가
현장에서 너무나 애쓰는 이들을 보고는 생각이 바뀐 게 겨우 한 두해전이던가요.
사정이 저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이곳에선 교사의 고뇌를 들을 수 있고,
그들이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하는지에 자극을 받습니다.
요새 세상 소식을 듣는 창구이기도 하였지요.
모임이 끝자락에 늦은 밥을 같이들 먹었습니다.
“3,4,5,6학년 사회는 어떻게들 공부해요?”
마침 이번학기의 중점교과가 그것이라 궁금한 것도 물어보았지요.
‘학교’라는 곳에서는 수업을 어떻게 해나가는지가 자못 궁금해지기도 한 요즘이거든요.
제도학교 교과서를 들여다보면서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도 젤 어려워하고 재미없어하며
샘들도 가르치기 싫어하는 과목이라 합니다.
그런 공부가 되지 않게 준비를 많이 해야겠습니다.
또, 아이들에 대한 많은 칭찬들도 있지만
그게 또 다는 아니었지요.
“아이들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정말, 무식해요.”
엄청나게 학원을 보내는데도 정작 아이들이 ‘모른다’ 합니다.
이 산골의 우리 아이들은 너무 많이 알아 병은 아닌가 걱정 아닌 걱정도 있었는데,
아마도 그건 공부라는 것에 대한 요구 수위가 낮아서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했네요.
“그래도 애들 때문에 좌절하진 않잖아요.”
기껏 제가 할 수 있는 맞장구를 그리 쳐놓고
부모들에 대해 물어봅니다,
이 시대 학부모들은 어떤가 하고.
그리고 부모하고 교사가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은 어떻게 넘어가는가 물었습니다.
“우리야 부모들하고 만날 일이야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결국 아이들을 통해 드러나는 부모들을 본다지요.
“우리 교육을 바꾸려면 부모들이 바뀌어야 합니다.”
맞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대안학교라면 다르겠지요?”
이미 입학 때부터 공유점을 찾고 시작하니까 가치관의 차이야 덜하겠지만
그 가치관이란 것도 결국 구현하는 건 일상의 문제니까
다른 지점들이 있겠습니다.
가령 아이에게 화장실에서부터 거친 산골 삶을 차차 익혀가도록 하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아이의 생활방식은 고스란히 도회적 삶이 유지되도록 하는 이도 있지요.
단순하게 살아가는 생태적 삶이 아니라 전원생활을 하려는 목적이라면
엄밀하게 말해 가치관이 다른 걸 겝니다.
“저는 아이들을 좀 더 어른스럽게 대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른이 아니던가요,
산골에 사니 거친 삶을 거친 삶대로 살아냈으면 좋겠더라구요.”
“다들 그래요.”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다 아이의 ‘편리’를 따른다는 겁니다.
이런!
이렇게 대답하면 제가 얻고픈 답은 물 건너 가버리잖아요.
한 샘은 어느 순간
뭐 하러 고생고생 하며 노력을 쏟나(그것도 욕먹어가며) 싶다는 고백도 합니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은 다 바른 줄 알고 다 잘하는 줄 알아.
애가 뭘 못한다 그러면 학원선생은 안 그러던데, 그리 말해요.”
부모들이 제 아이를 너무 몰라 답답하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하기야 어디 그런 부모만 있을까요,
교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좋은 지지자들도 많다지요.
“여자교사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흔히 엄마들이 남자교사한테 보내는 신뢰가 크다는데
예제 동의가 있었답니다.
어려움을 내놓으며 툴툴거려도 보지만
교사로서의 ‘부름’을 위해 이 늦은 밤에도 모여 앉은 이들이 참말 아름다웠지요.

같이 앉아만 있어도 위로가 되는 어른 같은 친구가 있지요.
모임을 하고 나오다 낼 꼭두새벽에 출장을 간다는 그를 붙들고
횡설수설 구구절절 어리광부리며 고자질하는 아이처럼
맘 구석구석의 보자기들을 풉니다.
산골살이가 문득 외롭기라도 했던 모양입니다.
우리 학교에 관심이 많은 그이고보니
별 전한 말도 없는데 그가 이곳에서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을 보여 왔지요.
“최선이라고 갔겠지만 부모들도(대부분의 대안학교들 또한) 매순간 얼마나 고뇌하겠어?”
그렇겠구나,
사는 게 너무 ‘단순’해서, 혹은 배움에 대해 너무 ‘명확’해서
제게는 없는 고민이 다른 이에겐 있기도 하겠습디다.
“뭐 하러 욕먹어가며 애를 쓰냐던 어느 샘의 말처럼
사실은 요새 그런 마음이 가끔 일기도 해.
그간 아이들이 ‘내 새끼’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젠 ‘다른 부모들의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래서 나름의 고집을 가지고 나아가던 방향에 대해
부모가 다른 생각을 하면 그래, 그래봅시다 하는 마음이 들고.
그런데 내가 하고픈 방향대로 가던 것에 대한 일정한 포기가
과연 옳은 건지 자꾸 돌아봐지고...”
“정답이야 없는 거지만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더 ‘객관’적일 수 있지 않을까...”
탁!
한 대 맞은 거지요.
말이 길지 않은 이 친구의 매력입니다.
‘다른 부모의 자식’이라는 것이 외려 객관적이다, 객관적이다...’
그 지점에서 다시 지금 하는 고민의 뿌리를 잘 바라보아야겠습니다.
교사, 이리 어려운 길인 줄 미처 몰랐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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