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12.나무날. 맑음 / 구미 야은초등 6학년 154명

조회 수 1386 추천 수 0 2006.10.13 11:58:00

2006.10.12.나무날. 맑음 / 구미 야은초등 6학년 154명


< 굴러 굴러 햇살 묻혀 >


오늘은 산골 마을이 한 번 들렸다 놓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돌아간 지가 한참인데
여운이 이리도 기네요.
백 하고도 쉰넷의 아이들이 대해리를 찾았고
거기에 기효샘과 성철샘과 남희샘과 재선샘과 정자샘이 함께 들어왔댔지요.
얼마나, 얼마나 예뿐 아이들이던지요,
자꾸 그 표정들이 생각납니다.
앞에서 안내자가 한참 얘기중인데도
손바닥치기에, 또 저들끼리 키득거리느라 정신없던 녀석들이며
어찌나 싱그러운 녀석들이던지요.
그 정도로 학교를 벗어난 나들이의 설렘들이 어디 가셔지기나 하려나요.
많은 아이들 틈에 지내는 일도 참말 즐겁겠습디다.
적지 않은 아이들이어 다 담을 수는 없었지만
같이 걷고 같이 일하고 같이 도란거리던 아이들은
산모롱이 돌아서는 길처럼 마음에 오래 남을 듯합니다.
이름표를 달아줘 이름 한 번씩 다 불러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늘 무언가를 주어야한다(혹은 가르치려 드는)고 생각하는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 눈엔 이미 이 산골의 ‘가을길 비단길’이 담긴 것만으로도,
굴러 굴러 가을 햇살 묻힌 것만으로도 복되었으리라 짐작합니다.

백열네 번째 계자 ‘굴러 굴러 햇살 묻혀’를
구미의 야은초등학교 6학년들의 하루나들이로 대신하게 되었더랍니다.
전국에서 마흔 남짓 모이는 계자(계절자유학교)라면
스물 안팎의 자원봉사자 품앗이샘들이 붙지만
주중에 있는 데다 나절가웃 놀다 가는 일이라
식구들끼리 조촐하게 자리를 마련하자 하였습니다.
의논도 겨우 어제 ‘두레상’에서야 하게 되었네요.

1. 만남

관광버스 다섯 대가
구부구부한 해발 500미터의 산마을을 들어서느라 꽤나 진땀을 빼서
10시가 한참 넘어서야 들어섰지요.
물꼬 전교생이 다 나가, 그래야 겨우 아홉,
손을 흔드는 걸로 반가움을 대신했습니다.
차 안에 든 아이들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거나
내내 손을 흔들며 답해주었답니다.
“아홉 명 맞아?”
“진짜네.”
운동장에서 돌아나가는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이
평상에 앉은 물꼬 아이들을 신기해라 들여다봅니다.
정말 겨우 이 숫자가 전교생이냐 묻는 거지요.
“길재 야은선생이 뜻을 이어받아 세운 학교에서
잘 키운 아이들이 온다고 해서 기대가 컸습니다.”
간단한 학교안내를 하는데 뭐 왁자합니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네는 이미 알테니까,
이곳이 느슨한 곳이란 것도, 그래서 좀 덜래덜래해도 된단 걸
저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마저도 그저 유쾌해보였지요.
그렇더라도 안내를 열심히 듣는 무리들이 더 많기 마련이니까요.
모아놓으면 그리 잘하기가 힘들지요,
그런데도 이 녀석들 잘 듣데요.
아이들이란 게 꼭 숨죽여있다고만 듣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안되겠다, 교가나 좀 불러봐요.”
맨날 하는 거니 어려울 것도 없었겠지요.
“그런데 무슨 돌림노래인가 봐.”
툭툭 불거지던 그들의 노래가 끝나고
물꼬아이들도 평상 위에서 손말로 자유학교노래 첫 번째를 불렀습니다.
객석에서 박수가 나왔지요.
“예의도 바르시군요.”
소란한 무데기 속으로 스며
아이들을 조금 가라앉혀주는 역할을 하는 품앗이가 없어 좀 아쉬웠네요.
담임샘들이야 전체적으로 아이들을 관망하며 앞 또는 뒤에 서 계시게 되니
그렇게 움직여주기 어려웠을 테구요.
그렇더라도 미리 말씀을 드렸다면 되었을 텐데,
연락을 드리지 못한 진행의 모자람도 컸습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이 좋은 가을날
그저 타들어가기 시작하는 가을산이 그저 흥겨웁지요.

2. 계곡타기

달골수영장에서부터 계곡을 탔습니다.
바쁜 농사철이니 식구들은 여느 날처럼 들일이며를 하고
물꼬 아이들이 도움꾼이 되어주었습니다.
안내지를 나눠주는 일에서부터 앞뒤 연락망이 되기도 하겠지요.
뭐 그냥 잘 타는 것만 보여도 도움일 테지요.
가물어 ‘거인폭포’의 위력이나 ‘서해바다’의 웅장함,
그리고 ‘아마존’의 우거진 품새를 보여주진 못했지만
아이들이 오르기 수월한 점도 있었지요.
그래도 거인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일이 만만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넘어지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하고
그러다 그만 미끄러져 물에 발을 적시기도 했지요.
나중에는 기효샘과 상범샘이 거의 안아 올리다시피 하기도 했다 합니다.
땀을 삘삘 흘리며 더디기는 해도 잘도 오릅디다.
아이들 다칠세라 노심초사들 하시는 담임샘들이
더 걱정스러워보였지요.
(이 녀석들 정말이지 샘들을 잘 만났다 싶게
아이들을 정성껏 대하시는 분들이셨지요.
착한 분들, 이라고 말한다면 이 말의 질감을 잘 아실지...)
아이들은 곧잘 하는데 말입니다.
도시에서 사는 아이들이니 거친 길에 익숙할 리가 없을 테고
뭐 아주 큰 상처가 아니라면 그리 우려할 길도 아니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곳에 계자를 오는 아이들은 정말이지 대단합니다.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아이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강하기 마련이고
사실 더한 길이래도 잘 갔을 겝니다.
버젓이 너른 운동장에서도 다치는 게 아이들이고
길도 없는 험악한 겨울산에서도 아무 일 없이 내려오는 게 또 아이들이지요.
담임샘들의 걱정이 되려 마음이 쓰이데요.
물꼬에선(계자) 늘 ‘안내’에 집중하고
그 뒤엔 많은 것을 아이들이 한껏 수행토록하니까요.
뭘 ‘안한들’ 어떻습니까, 평소 우린 너무 많이 ‘하니’까요.

그런데 정자샘네반 상익이던가요,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삐었습니다.
흐르는 계곡물에 담가 찜질을 하라 일렀고
나중에 돌아와 압박붕대를 감아주었는데,
그래도 틈이 좀 있었으면 간단한 침이라도 놔주었을 걸,
그냥 보내 마음에 걸립니다.
아토피를 앓는 아이가 스친 풀들로 목이 벌겋게 달기도 했지요.
마침 가져왔던 얼음통으로 비비라 주었더니
곧 가라앉았습디다.

정신없이 오르다 문득 고개를 들면
가을이 익고 또 익고 있는 산자락이 둘러치고 있었지요.
“아...”
들여다보면 버들치가 노닐고
가을 잎이 둥둥 떠내려 오기도 했습니다.
민달팽이가 발을 멈추게도 했지요.
“인삼이예요.”
나무뿌리를 안간힘을 쓰며 캐내는 녀석도 있었지요.
그 모든 걸 못 본다 한들 또 대수일까요,
그저 계곡을 타고 오르기만 해도 온 몸에 가을날의 맑음이 묻었을 겝니다.
아이들도 디지털카메라로 연방 사진을 찍어대던데
서로서로 나누면 두고두고 좋은 추억에 되겠습디다.

‘너럭바위서당’에 닿아 먼저 오는 아이들을 위로 올리고
뒤에 오는 아이들을 맞는데,
아이들은 반갑게 인사를 하고 또 합니다.
반가움과 신뢰의 눈빛 같은 것을 발견하기도 했지요.
거기서 점심 때건지기를 하였습니다.
물꼬식이지요.
누군가 먹기 시작하면 먹는 겁니다.
그냥 어데고 앉아서 먹는 겁니다.
처음엔 아이들이 이런 방식이 좀 낯선 듯하더니 곧들 먹데요,
물 곁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물빛을 보며 물이 비친 것 같은 하늘을 보며,
그리고 그 계곡을 둘러친 산도 올려다보며...

그런데 놀라운 일을 발견했습니다.
세상에 그 많은 쓰레기라니...
“이런 걸 버리면 죄의식 같은 게 안 드나?”
물꼬 식구 하나가 그럽디다.
이건 비단 이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온통 이 시대 우리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된 걸 겝니다.
잘 가르쳐야겠습니다.
쥬시후레쉬라는 껌을 내내 버리는 아이가 있어
상범샘이 뒤에서 좇아와 기어이 그 여자 아이를 찾아내기까지 했지요.
끽해야 그러지 마라, 하는 한 마디를 던졌겠지만.

3. 가을길 비단길

새마을 쪽으로 계곡을 빠져나옵니다.
금방이라도 뚝뚝 쪽빛물이 떨어질 것 같은 하늘을 배경으로
거기 잎을 다 떨군, 크기도 한 감나무 한 그루 있습니다.
“저기 좀 보렴!”
“아, 예뿌다!”
“하나 따도 돼요?”
“멋있다!”
“야생이예요, 심은 거예요?”
그래놓고 제 말이 스스로 웃기던지 곧 고쳐 말하데요.
“야생이란 말은 그렇고 자연적이라고 그래야 되나...”
곁에 선 녀석들과 나누는 정담이 어찌나 훈훈하던지요.
큰 길로 나오니 장씨 할머니가 콩대를 널고 계셨습니다.
곧 터실 모양입니다.
뒤에 오던 이들은 도리깨질을 보았다지요.
차라고는 거의 없는 길이니
온 길을 차지하고 느리작느리작 걷습니다.
가을길이 비단길입니다요.
“저기가 학교 기숙사야.”
“기숙사가 있어요?”
“아이들은 집이 없어요?”
“부모 없는 아이들예요?”
“거기서 아이들이랑 같이 자고 일어나 요가도 하고 명상도 하지.
그리고 학교로 내려와.”
“가르치기도 하고 잠도 같이 자요?”
말수가 적겠다 싶은 녀석들까지 어느새 곁에서 이것저것 물어오고 있었습니다.
“진짜 월급 안받아요?”
“그럼 왜 공무원을 해요?”
“뭘로 먹고 살아요?”
아이들은 학교에 대해서도 궁금한 게 많았지요.
“저건 마을을 지키는 느티나무야.”
“큰형님 느티나무!”
“어떻게 알았어?”
“아까 (리플렛에서) 봤어요.”
“형님!”
무슨 조직의 ‘어깨’들처럼 굽신거리기도 합니다.
그리 크게 웃어본 게 언제 적인가 싶게
신명나게 웃어대며 어깨 겯고 걸었습니다.
길가로 이제는 말라붙어가는 포도밭이, 파낸 인삼밭이,
그리고 한참 익어가는 벼들이 있었습니다.
이재영할아버지내외분은 콩대를 모으고 계셨지요.
오랜반에 뵈어 어찌나 반기시던지요.
아이들도 잘도 인사를 합니다.
정토와 천국은 늘 여기 있답니다.
사는 일도 또 고마워지는 겁니다.

4. 들일 밭일

먼지를 풀풀 일으키던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한 반씩 떼놓으니 정말 몇 되지 않습니다.
학급인원수가 줄었다는 게 정말 실감나데요.
아이들이 자꾸만 모자라는 것만 같아 세어보게 되더라니까요.
교실 안에서 그만한 숫자의 지내는 일이라면
요새 학교는 정말 오붓하겠습디다.

벼베기, 은행털기, 밀(콩, 깨)타작, 쪽파심기, 포도나무가지치기(감따기)로 나뉘었지요.
한 반씩 한 가지 일에 들어가기로 했고
물꼬 식구들이 한가지 씩 안내자가 되고
물꼬 아이들은 저 잘하고 좋아하는 일에 붙어 도움꾼 노릇을 계속했습니다.
“국민은행을 털러 갈 거야.”
아이들이 신한은행도 털라고 하데요.
마당가 은행나무 아래 김점곤아빠가
천막을 깔아놓고 장대를 휘두르셨습니다.
“우리 아빠가 어떻게 (그리 높이) 올라가셨을까 궁금했어요.”
1학년 종훈이가 나중에 그랬지요.
냄새나는 걸 줍고 까고
싫다고 하면서 또 까고...

학교 큰 마당 한 켠에는 다른 천막이 놓이고
발로 구르는 탈곡기가 놓였지요.
밀타작을 하였습니다.
그렁그렁 소리가 더 신난 아이들입니다.
그 옆으로 깨도 털고 콩도 털었다나 말았다나요.
괜히 화장실 가던 아이들도 기웃거리다 갔지요.
곽보원엄마가 애를 쓰셨답니다.

젤 신경쓰이는 일에는 기효샘이 붙어주셨더이다.
물꼬엔 쉼터논과 삼거리논이 여섯 다랑 있습니다.
농약 한 번 치지 않고 우렁이로 잘 키운 벼들이랍니다.
우렁이들이 잡초를 다 먹어주어
올해는 풀뽑으로 들어갈 일이 없었지요.
그런데 시간이 그리 여유롭지 않아 가까이서 한다고
아쉽게도 젤 덜 익은 논 두 다랑이를 골랐습니다.
윗다랑이에선 벼를 베고
아랫다랑에선 남은 우렁이를 찾고.
안 드는 낫으로 억지로 베다 다치는 경우가 더 많아서
마침 필요하기도 하여 낫을 새로 사들였지요.
잘 갈아진 날이었겠구요.
“아이구, 낫이 위험하지 않을까...”
어느 담임샘이 그리 물어왔을 때 그리 대답을 드렸더랍니다.
“아니, 어른한테 낫을 줘보세요, 안 위험한가.”
문제는 어떻게 그것을 쓰느냐겠지요.
더더구나 6학년이라면 못쓸 것도 없겠다 했습니다.
물꼬에선 이미 1학년부터 낫을 쓰고 있구요.

그런데 논에 들자마자 물꼬 도움꾼 녀석 하나 발가락을 찍었습니다.
잘한다는 걸 보이고픈 마음이 앞섰던가 봅니다.
게다, 아차, 으레 논밭에 들 땐 운동화나 장화를 신는데,
오늘 어수선한 아침에 따로 챙기지 않았더니
이곳에선 일도 아닌 계곡타기를 끝낸,
그러니까 놀이 뒤라 저들도 챙기지 못했던 듯합니다.
맨발로 들었으니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지요.
아이들이 못 챙겼으면 어른이라도 챙겨야 했는데
제 잘못이 컸습니다.
얼른 들춰 업고 학교식구한테 보냈지요.
참말 위급상황에 잘 움직이는 식구들이지요,
상처가 좀 깊다 싶어 큰엄마가 김천 큰 병원으로 데려갔답니다.

류옥하다는 꿰매고는,
혹여 인대가 상할까 못 움직이게 반깁스를 해서 금새 돌아왔지요.
우리 새끼가 다쳐서 다행이었습니다.
이것도 늘처럼 하늘이 도왔다 여겨졌지요
(남이 말한다면 ‘외람된 말이오나’ 이렇게 시작하겠지요?).
물론 다치지 않으면야 더할 나위 없이 다행한 일이겠으나
아이들이랑 하는 일이란 게 사고가 끼기도 하고...
다른 새끼들이 다쳐보세요,
마음이 얼마나 탔을까요.
류옥하다가 다쳐주어, 씩씩한 그가 다쳐주어, 병원 신세진 일 없던 그가 다쳐주어...
무슨 일이나 잘 해야 하는 강박을 가진 그 아이에게도 좋은 공부가 되었을 것입니다.
천지를 저 알아 돌아다녀 늘 곁에 있는지 없는지 존재를 모르고 지내다
문득 ‘그래, 하다가 있었지...’ 하고 생각도 하게 되었네요.

그런데 하얀 셔츠에 선명하게도 묻은 핏자국이
논에 드는 아이들을 긴장케 했지요.
네 패로 나뉘어 벼를 벴던 아이들이 위기감을 갖고 낫을 들 수가 있었지요.
“더 하면 안돼요?”
뒤에 온 남희샘네 반 아이들은 아주 전문가가 되었더랍니다.
아마도 그들은 달골에 올라 그 기운을 타고 내려와서
어느새 듣는 일에 귀를 잘 기울이게 된 건지도 모르겠데요.

밭을 고르고 한 쪽에선 쪽파를 좀 심었답니다.
이 산골에선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겨울 들머리에 못 먹으면 해 넘기고 먹을 수 있지요.
땅이 좀 팍팍했습니다, 가뭄이 긴 요맘때이니까요.
이금제엄마와 이은영엄마가 진행하셨지요.
멀리서 보니 땅을 다지는 건지 파는 건지 의심스럽더니만
잘들 고르고 무사히 심었다데요.

포도나무가지치기는 달골포도밭에서 했습니다.
달도 머물다 가는 아름다운 곳이니 보여주고도 싶었고
물꼬의 생각을 듣지 않아도 어쩜 막연한 느낌이라도 가져줄 수 있을 것 같아.
곁에는 아주 커다란 감나무도 한그루 섰지요.
트럭에 엉덩이 붙이고 오르내렸답니다.
날이 더워 이제 사라진 포도 잎그늘이 아쉽더라지만
둘러친 풍경 덕이었는지
재밌었다고들 하데요.

5. 물꼬축구

물꼬축구를 하겠다는 아이들이 마당 한가운데로 모였습니다.
쉰 명 남짓 되었을 라나요.
하겠다고 와서도 저들 얘기하느라 바쁘길래
말 안 듣는 놈 등짝도 후려쳐줬습니다.
고새 친해졌나 봅니다.
때리는 저도 웃고 맞는 지들도 웃고.
“이눔의 자슥이!”
애들 데려온 샘들이야 조금 밀리는 시간이 신경쓰이겠지만
저들이야 갈 길 멀 일이 뭐가 걱정일까요.

물꼬축구를 이렇게 재미없게 하기는 또 처음이나 싶었습니다.
멀쩡하던 엠프가 좀 지직거리기도 했고,
규칙에 대한 안내가 뭔가 제대로 가지 않았는지
음악이 나올 때 공을 놓고 춤을 추는 것도 잘 안되었지요.
농구하드끼 공을 핑핑 던지고 받으니
공을 안고 한 무데기로 엉키고 설키는 장면이 드물어서도
보는 재미가 덜했겠습니다.
그런들 또 어떻습니까,
정말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자샘(보긴 그렇지 않으나 중년일 것이 틀림없는),
경기장에 들어서 아이들로부터 공을 빼앗았습니다.
심판일을 보던 저는 달려갔지요.
“정자샘, 나가요!”
음악이 나오는데 춤을 추지 않아 밖으로 내보낸 것인데
이런, 어른은 나가는 거라 들으셨는지 다시는 뛰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아, 그만 그 소중한 선수를 잃고 말았지요.
어른이 함께 뛰어주면 더 재미난 축구인데
담임샘들은 끌어들이는 걸 잊은 일도 큰 실수였습니다.
춤추는 샘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눈요기였을 걸,
그리고 직접 경기에서 뛰면 ‘보는 이’가 아니라 ‘하는 이’가 되어 느낌도 달랐을 걸...

헌데 지용이와 창익이가 좀 부딪쳐 서로 감정이 상했고
급기야 주먹이 날기도 했습니다.
그만 코피가 나기도 했지요.
화가 많이 났겠구나, 위로도 하고 어깨를 다독이기도 하였지만
그만 우울한 나들이가 돼버리진 않았나 마음 쓰였답니다.
얼굴은 괜찮으려나...

그때 마당가에선
‘아이들놀이집’ 앞에서 은행을 굽고 있었고
아이들은 은행을 까거나 평상에 앉아 경기를 구경하거나
더러 괜스레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왔다 갔다도 하였지요.
성철샘도 자유로이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아이들 속에 있데요.
꼭 뭘 해야만 하나요,
이 좋은 가을볕이 모두에게 내려앉았더랬지요.
보기 참 좋았습니다.

6. 떠남

가기 전 쓰레기도 다 줍고 가는 그들이었습니다.
재선샘은 야문 성격대로 쓰레기통을 들고 기어이 정리를 다 하게 하데요.
남은 이들에게 남겨주어도 흉일 게 없었는데 말입니다,
버려진 것들이 많았다 해도 손님맞이의 마음으로 즐거이 했을 텐데 말입니다.
마을 엄마들은 참을 준비해주셨지요.
물꼬의 소문난 무농약 포도즙에
온 동네 고구마밭이 절단 나는 속에 살아남은 물꼬고구마가 쪄져서 나왔습니다.
“잘가, 잘가!”
“안녕히 계세요.”
“고맙습니다.”

아,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음 좋았겠습디다.
저녁만 되어도 아이들은 어느새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일 테니까요.
사람들일 없는 산골에 아이들이 찾아주어
물꼬 아이들이 더 신이 났더랍니다.

7. 물꼬식구들 갈무리

3시 아이들이 돌아갔습니다.
흘목까지 걸어내려 갔지요.
그 길 역시 비단길이지 않았을까요.
임산(상촌)을 지나며 잘 가고 있노라 기효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좋게 좋게 아름답게 얘기하면 안 듣는다.”
언젠가 제도권의 한 샘이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아니요, 우리에게 익어질 시간이 조금 모자랐을 뿐이랍니다.
오늘만 해도 그 짧은 시간에도 얼마나 훌륭한 아이들이었는데요.
지나치게 깍듯하다 싶기까지 했지요.
물꼬식구들도 모여 갈무리모임을 하였습니다.

6년 나현: 사람들이 많아 시끄럽기도 했지만 재밌었어요.
6년 승찬: 친해져서 좋았어요. 또 만나고 싶어요.
5년 령: 형들이 와서 너무너무 좋았고 재밌었어요. 또 만나고 싶어요.
4년 동희: 150여명, 참 많은 사람들, 복잡하기도 했지만 재밌었어요. 그런데 망가진 물건들 이 있어서 아쉽고, 다친 이들이 있어서...
3년 정민: 친해져서 좋았어요.
2년 하다: (나중에 말하길) 제 잘못이었지요, 뭐.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좋 은 도움꾼이 되겠습니다.
1년 종훈: 형들이 와서 좋았고 은행따기 재밌었어요.
1년 신기: 벼베기가 재밌었어요. 형들이 와서 재밌었어요.

어른들도 말을 보탰지요.
“들어올 땐 어리둥절하더니 계곡 다녀와 시간 지나면서 활동적이고...
쪽파 심고 올라오니까 축제처럼 자전거 타고 축구 하고 은행 굽고...
뭘 해주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하는 것 보면서 가을을 즐기고 있구나...
어른 손이 좀 부족했다 싶습니다.
애들이 크니까 움직임이 둔하고 느리고, 이제는 청소년으로 봐야되겠더라구요.”
“명절 끝인데다 갑자기 알아서... 다른 체험도 많은데 미리 준비를 못해서...
즉흥적으로 준비한 것에 비해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준비가 갑작스럽고 어수선했지만 다녀간 이들이 조금이나마 체험이 되지 않았을까...”
“우리 아이들이 아침부터 설레하고 저들이 학교청소며 맡아서 하고, 훌륭했습니다.”
“한 학년이 꼭 다 움직여야 하는 건 아닐 거예요,
다음에는 돌아가며 한 반씩 한 주 동안 다녀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다음엔 아이들 사이에 있을 너댓 품앗이샘을 불러
전체 안내가 순조롭게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처음 이런 규모로 하루일정을 했는데,
잘 할 수 있겠데요.”

아, 흔히 청바지가 바깥활동에 아주 편하다고 생각하지만
산오름에서 가장 피해야할 것이 바로 청바지지요.
젖으면 뻣뻣하고 무거워지는 데다
다리를 벌리거나 할 때 많이 죄거든요.
다음에는 꼭 이 안내를 미리 해주어야겠습디다.

담임샘들이 고생 엄청 하셨습니다.
물꼬식구들이 많지 않아 아이들 건사하느라 말입니다.
볼품없는 곳에 아이들을 기꺼이 데리고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뭐라 뭐라 해도 불편한 곳에서 잘 지내다 가는 아이들이 고마웠지요.
너무나 좋은 샘들과 당신들의 학동들이었습니다.
좋은 연으로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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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2006.10.11.물날. 낮은 하늘 옥영경 2006-10-13 1128
1028 2006.10.10.불날. 맑음 옥영경 2006-10-12 1232
1027 2006.10. 9.달날. 뿌연 하늘에 걸린 해 옥영경 2006-10-11 1181
1026 2006.10. 8.해날. 맑음 옥영경 2006-10-11 1099
1025 2006.10. 7.흙날. 맑음 옥영경 2006-10-11 1062
1024 2006.10. 6.쇠날. 맑음 / 한가위 옥영경 2006-10-10 1173
1023 2006.10. 5.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6-10-10 1050
1022 2006.10. 4.물날. 맑음 / 이동철샘이 보내오신 상자 옥영경 2006-10-10 1250
1021 2006.10. 3.불날. 맑음 옥영경 2006-10-10 1179
1020 2006.10. 2.달날. 맑음 옥영경 2006-10-10 1154
1019 2006.10. 1.해날. 맑음 옥영경 2006-10-02 1382
1018 2006. 9.30.흙날. 참 좋은 가을날 옥영경 2006-10-02 1175
1017 2006. 9.29.쇠날. 맑음 옥영경 2006-10-02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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