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16.달날. 맑음

조회 수 1038 추천 수 0 2006.10.18 17:21:00

2006.10.16.달날. 맑음


"한 줄 쫘악!"
아이들을 하나 하나 안으며 한 주를 시작합니다.
먼지를 털고 마음을 잡는 ‘첫만남’을 끝내고
차를 마십니다.
“오늘은 무슨 차예요?”
“현미녹차.”
“나는 이 소리가 참 좋아.”
“나도.”
아이들은 차를 따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도란도란 주말에 있었던 얘기들을 나누었지요.

손풀기를 큰 마당에서 하고 있던 아이들이 소란해졌습니다.
“야아!”
신기가 항아리를 깼다 하고
신기를 책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교무실을 들렀다 중앙통로로 나가니
반깁스를 한 다리 때문에 마룻바닥에 배를 붙이고 그림을 그리던 류옥하다가
우는 신기를 달래고 있었지요.
“형들이 뭐라 그랬어?”
신기는 그저 울고만 섰네요.
“신기야, 무슨 일이야?”
항아리를 깬 난감함으로 말이 되지를 않겠지요.
“다쳤어? 형들이 뭐라 그랬구나?”
아니랍니다.
“항아리가 깨져서 다행이야. 네가 깨졌음 어쩔 뻔 했어?”
그래도 앞으로는 조심하자는 말도 잊지 않고 해주었지요.

아이들에게 ‘아침에 듣는 동화’로 동화 한 편 들려줍니다.
원래는 어른을 위한 동화인데
귀가 깊은 아이들이니 들을 만하겠다 싶었지요.
나중에야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쓴 동화라고.
몇 해 전 두어 해 동안
작은 잡지에 격월로 동화 이어쓰기를 했던 글 가운데 하나랍니다.
문득 이 아이들에게 읽힐 동화를 직접 써야겠다 싶데요.
최근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던 일인데,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주 즐거워졌다지요.

날마다 아침을 여는 노래 다음으로 읽어주던 장편을
지난 쇠날에 끝냈습니다.
오늘 ‘우리말우리글’의 재료는 이브 가넷의 바로 그 책이었지요.
원 앤드 스트리트 1번지에 사는
러글스부부와 일곱 아이들이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시 훑습니다.
우량아대회에 나간 윌리엄, 검은손 갱단에 가입한 쌍둥이 짐과 존,
케이트의 모자와 릴리로즈의 페티코트 사건,
공원의 꽃을 꺾어 경찰 품에 안겼던 페그,
극장에 숨어들어간 영화광 조,
꼭 저들 같은 아이들이니 더 가까이 느껴졌던 책이었겠지요.
“너무 빨리 끝나서 아쉬웠어요.”
찬찬히 다시 책을 짚으며 감동을 나누었습니다.
물론 느낌글로 갈무리를 하였지요.

아차, 아이들을 무릎베개에서 귀를 닦아주는 것도
같이 손발톱을 깎는 것도 그만 늦었습니다.
‘우리말우리글’시간마다 아이들이 개인작업을 할 적
한 사람씩 나와서 하는 일입니다.
아이들 하나 하나에게 더 다가가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책 이야기가 길었던가 봅니다.
서두르게 되니 점심도 급하게 먹게 되었지요.
버스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읍내 나갑니다, 물론 춤추러 갑니다.
승찬이는 곧잘 동작을 따라합니다.
몸으로 익히는 것(일은 좀 다른 영역인 것 같고)에 참 빠른 그입니다.
다들 참 열심입니다.
여전히 땀은 나지만 날이 선선해서 더 그렇겠다 싶습니다.
하다 보면 잘 하게 되고 잘하게 되면 자연스러워지고
그러면 자유로워지지요.
하면서 재미가 나기도 하구요.
그러니 당장 아이가 별 흥미가 없다 해서
네 좋은 일을 하라고만 할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어른이 안내자가 되어 어떤 걸 권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종훈이는 여전히 더디고 움직임이 작네요.
그것도 성격입니다요.

버스를 타러 가기 전 그늘진 잔디밭에 둘러앉았습니다.
마치 대학교정에 나와 놀던 한 시절처럼 말입니다.
“왠지 옥샘 옷 같지가 않더라.”
제가 얻어 입은 바지를 두고들 그럽니다.
“이건 딱 옥샘 취향이다.”
뻘건 줄이 있어 너무 젊은 사람 것 같다며 어머니께서
선물 받았던 운동화를 주셨더랬는데
그건 또 제 것 같아 보이나 봅니다.
언젠가는 갤로퍼(전에 타던 차)가 샘한테는 더 잘 어울렸다고도 하던 아이들이지요.
여튼 참말 웃기지도 않는 놈들입니다.
물꼬에 오기 전 다닌 학원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다음 학기 어떤 예술활동을 할까 의견을 들어보는 시간이었지요.
“네가 영어를 1년이나 했어?
그런데 그렇게 아무것도 몰라?”
저들끼리 핀잔을 주기도 하며
까르르 까르르 넘어가는 재미난 시간이었네요.
아이들 이전 생활에 대해 많이 알게도 되었습니다.

류옥하다는 다른 아이들이 읍내 나가 있는 동안 학교에 머물렀습니다.
그 아이에게 참 좋은 시간들이지요.
주변 사람들이 고맙다고 날적이(일기)에 쓰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다친 까닭에 대한 생각도 해보고.
마음이 또 성큼 크겠습니다.
흔히 액땜했다지요, 더 위험할 수 있는 것을 그만만 다쳐.
다행입니다, 참 다행입니다.

학교도 보고 예까지 포도즙도 사러 왔다는 한 가족이 있었고,
김천에서 내일 저녁에 하는 오페라공연이
중학생만 입장할 수 있어 결국 포기해야했고,
풍물 큰 사부 배관호샘으로부터 지난 번 영남사물놀이 전수를 왔던 녀석들이
학생국악경연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소식도 넘어왔지요.
우리 일만 같아 기뻤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1036 2006.10.18.물날. 맑음 옥영경 2006-10-20 1056
1035 2006.10.17.불날. 맑음 옥영경 2006-10-18 1210
» 2006.10.16.달날. 맑음 옥영경 2006-10-18 1038
1033 2006.10.16.달날. 맑음 옥영경 2006-10-18 916
1032 2006.10.14-5.흙-해날 옥영경 2006-10-16 1221
1031 2006.10.13.쇠날.맑음 옥영경 2006-10-16 1162
1030 2006.10.12.나무날. 맑음 / 구미 야은초등 6학년 154명 옥영경 2006-10-13 1385
1029 2006.10.11.물날. 낮은 하늘 옥영경 2006-10-13 1126
1028 2006.10.10.불날. 맑음 옥영경 2006-10-12 1230
1027 2006.10. 9.달날. 뿌연 하늘에 걸린 해 옥영경 2006-10-11 1181
1026 2006.10. 8.해날. 맑음 옥영경 2006-10-11 1096
1025 2006.10. 7.흙날. 맑음 옥영경 2006-10-11 1061
1024 2006.10. 6.쇠날. 맑음 / 한가위 옥영경 2006-10-10 1172
1023 2006.10. 5.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6-10-10 1048
1022 2006.10. 4.물날. 맑음 / 이동철샘이 보내오신 상자 옥영경 2006-10-10 1249
1021 2006.10. 3.불날. 맑음 옥영경 2006-10-10 1176
1020 2006.10. 2.달날. 맑음 옥영경 2006-10-10 1154
1019 2006.10. 1.해날. 맑음 옥영경 2006-10-02 1380
1018 2006. 9.30.흙날. 참 좋은 가을날 옥영경 2006-10-02 1174
1017 2006. 9.29.쇠날. 맑음 옥영경 2006-10-02 1218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