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계자, 5월 27일 쇠날 맑음

조회 수 1409 추천 수 0 2005.05.29 23:18:00

103 계자, 5월 27일 쇠날 맑음

< 저 돌도 초록이 된다 >

초록이 어찌나 짙은지요,
그 사이 사이로 그보다 더 싱그런 아이들이 왔습니다.
2005 봄, 백세 번째 계절자유학교 첫날입니다.
아이 마흔 둘과
오고가는 어른 스물 여섯이 함께 합니다.
청주의 지수와 춘천의 지용이는 엊저녁부터 와있었지요.
오전엔 사택 앞 풀을 뽑으며 다른 아이들을 기다렸습니다.

진만이지요, 틀림없이 젤 먼저 달겨오는 녀석입니다.
동생 윤슬이는 저만치 떨어져서 와요.
영준이 우재가 여전한 표정으로 들어오고,
"동희!"
환한 그 얼굴을 대번에 알아봤습니다.
"형은 잘 있어?"
근우네요.
인사도 없이 하고픈 말들이 먼저 쏟아져나오는 우현빈이 성빈이,
"안다, 알아, 정호준!"
제(자기) 이름자 잊었을까 이름표를 보이도록 돌리며 걸어오는 호준이,
"어, 귀남아! 맞아, 맞아..."
부산에서 오빠 진석이랑 왔네요.
쳐다보면 기분 좋은 의로랑 종화는 대구에서 같이 왔다고 오누이 같습니다.
"어, 김지원, 니네 엄마 성함이 유영숙이지?"
지원이가 오는 줄은 몰랐네요.
"엄마가요, 선생님 선물이래요."
향이 있음 좋겠다던 지나가는 말을 기억하셨다가
지원이네편에 향이, 아주 살림 거덜낼 만큼 보내져온 밑반찬과 함께 들어왔고,
계자 아이들 다 먹을만치 의로네선 직접 구운 쿠키가 오고,
혜수네선 아이들 티셔츠가 왔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는 아이들을 맞으며 새 이름들을 보자 하지만,
아직 뭐 쉬 익혀질리 없지요.
"니네 엄마는 무슨 생각으로 너를 보내셨다니?"
너무 잘아서(작아서) 물어본 녀석이 대여섯은 되고,
수현이가 둘, 현빈이가 둘, 쌍둥이가 두 쌍,
헷갈리겠네 싶은 이름들이 대여섯,
마지막 아이를 들이고 돌아서서 건물을 향해 걸어가는 아이들을 보는데,
또 어떤 날들이 되려나,
저것들이 어떤 표정으로 돌아가려나,
마음 바닥에서 안개같은 벅참이 꽈악 피어오르데요.

점심을 먹고 죄 큰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자전거를 타거나
얼굴 벌개지도록 공을 차는 아이들,
도대체 아이들은 어디 사는 걸까요,
공을 찰 마당조차, 자전거를 탈 길조차 없는 곳에 산단 말인가요...
모래사장이 꽉 차게 들어가 있거나,
흙산을 타고 올라 파고 또 파고도 있습니다.
안에선 두 수현이와 의로, 지현이가 공기놀이에 한창이네요.
공차는 아이들 사이를 열심히 누비고 다니는 이는 현주샘입니다.

연극놀이 하였지요.
몸으로 숱한 말들을 했답니다.
지수, 온몸을 내밀며 어찌나 열심히 손을 들던지요.
그런데 서른은 족히 넘었을 걸요, 그렇게 하고 싶어한 아이들이.
골고루 시켜주느라 애깨나 먹었다지요.
문규는 아주 배를 더 밀고 손을 들고
종화 석우 석인이도 못지 않았지요.
(석우는 그리 팔팔하다 달고온 감기로 저녁답에 잠시 열이 오르더니
한숨 자고는 나아졌습니다)
유진이는 암 것도 안할 것 같은 표정이더만 쥐로 등장을 했고,
동희는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혜린이는 잠시 속이 상한 일이 있어 울기도 하였는데
얼굴이 다 펴져버렸더라지요.
김수현 호준이 현진이 용빈이도 바지런히 손을 듭니다.
날은 무지 더웠지요.
그래서 우리 몸은 겨울 언 강으로 가기도 했더이다.
살얼음 위를 지나며 더러 빠지기도 했는데,
지용이는 정말 너무도 진지하게 움직이며
우리에게 연극적 긴장에 대해 가르쳐주었지요.
몸을 계속 쓰며 강당을 이 끝에서 저 끝으로 구르고 또 구르니
여간 목이 마르지 않았을 겝니다.
힘이 든데도 너무 하고파서 가서 쉬지는 못하고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는 승찬입니다.
(그 승찬이 언제 내가 울었더냐,
가마솥방에서 물을 마시고 나오니 치맛자락 붙잡데요.
"선생님, 축구해요.")
두 패로 나눠 놀이처럼 몸을 쓰다가
마지막엔 모두 한 덩어리로 하늘을 표현했는데,
이미 저 아이들이 별입디다...
마무리를 하고 고래방을 나설 때 우혁이가 다가왔습니다.
"모자가 없어요."
쓰고 다니던 까만 모자 말입니다.
"여긴 우리만 있으니까..."
예, 물건을 잃어버려도, 시간은 걸릴망정 찾아지지요.
꼭 챙겨서 찾아주마 하고 나왔는데
지나다보니 돌탑 곁에서 눈물이 글썽글썽합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요..."
사실은 문제가 모자란 것 다 알지요.
"찾았어요."
한참 뒤 가마솥방까지 절 찾아 걱정이 사라졌노라 보고하데요.
켕기는 문제 하나,
그것이 아이들 마음의 온통이지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그 문제 하나를 해결해줄 수 있다면
세상 행복을 다 줄 수 있는 겝니다.

아이들이 고래방에서 움직이는 동안
어른들은 죄 달골 포도밭에 올라 포도 순 자르고 곁가지를 치는 일을 하다가
4시 30분에 하는 마당춤극을 보러 내려오셨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동네 어르신들도 나오고
상촌면에서, 군청에서, 영동읍내에서 몇 어른들도 챙겨서 오셨지요.
지나던 사람들도 더러 오구요.
민족 춤패의 마당춤극 <공해강산 좋을씨고>.
모든 생명들이 건강하게 살아가던 세상을
사람의 욕심으로 무너뜨린 과정을 춤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마구 쓰레기를 버리는 대목에서
우리 아이들 대여섯이 좇아나갑디다.
"아줌마, 쓰레기 버리지 마요."
종이를 주우며 무대에 선 이들을 막 야단치는 겁니다.
푸른 생명들이 다시 움트는 세상을 일궈내자는 마지막의 대동마당은
관객이던 우리 아이들도 덩달아 나가
마른 나무에 새파란 잎사귀가 붙은 가지들을 꽂으며 함께 꿈을 꾸었지요.
몇 어린 녀석들이 흙산에서 밍기적대기는 하였으나
40여분 신명난 가락에 덩실덩실 어깨춤도 추고,
극이 연극교실에 이어져 있던 참이라
무대에서 실제 몸이 어떻게 쓰이나 좋은 배움이 되었네요.

저녁밥 때까지 아이들은 또 큰 마당으로 쏟아졌습니다,
정말 쏟아졌더라니까요.
평소에 물꼬 상설 열 둘 아이만 있던 운동장을 가득 메운 아이들,
세상에 그것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저는 아지 못합니다.

"놀아두 돼요?"
끊임없이 묻는 종훈입니다.
"너는 왜 모자를 안벗어?"
상혁이는 모자를 내내 끼고 살고,
"선생님은 왜 앞에 앉아요?"
내내 진지한 얼굴로 시비 걸 듯 묻는 찬영이,
"선생님, 쟤가요..."
정작 저도 만만찮으면서 남이 자신을 괴롭혔다는 진만이,
양 날개 쪽에 앉아 시끄러움의 균형을 맞춰주는 우성빈과 현빈,
"선생님!"
지나면 창문으로 꼭 불러주는 휘연,
"놀아줘요."
따라 다니는 건 윤슬입니다.
뭐나 잘 먹고 뭐나 열심히 하는 씩씩한 지원이,
우성빈 현빈이가 하도 사촌이라고 노래 불러서 기억이 먼저 됐던 주연이,
아저씨 같은 얼굴로 말하는 정근이,
뭐 변함없이 심드렁한 반응의 진석이,
왔던 적이 있는데도 아직 좀은 낯설어하는 귀남이,
언 듯 언 듯 우울한 표정이 담겨 자꾸 눈이 가는 인경이,
한쪽 팔이 다쳐서 온 상현이,
작고 작아서 더 예뻤던 권윤이랑 정현이,
누구랑 부딪혀서 속이 상해 울다가도 금새 헤헤거리던 건우,
지수랑 죽이 잘 맞아 실뜨기를 열심히 하던 영준이,
무표정하더만 솔솔찮게 재밌어하던 전현빈이,
의젓하던 범진이,
이곳의 느낌들을 화악 받으며 자신을 풀어가는 지용이,
곁에 있는 이들과 잘 어울리면서도 조용하던 혜수,
모두 둘러앉아 한데모임을 했지요.
"연습했나봐!"
어른들이 다 감탄했더랍니다.
어려서들 소란키만 할 줄 알았더니
웬걸요, 우리 일곱 살 지원이서부터 어찌나 야물게들 제 생각들을 드러내던지요.
손말과 대동놀이를 하는 틈에도
대해리 개구리들의 환영인사는 아직도 끝나질 않았고
산에서 짐승 우는 소리들이 가끔씩 내려왔더이다.

밤이면 꽤나 내려가는 기온이라
아궁이에 불을 지폈겠지요.
찜질방이 따로 없었네요.
애들은 복도로 나와 자기까지 하고,
물을 마시느라 가마솥방을 들락거리고,
그렇게 잠이 깨 밤새 도란거리기도 하고...

아이들을 재우고 샘들이 모였겠지요.
엊저녁 새벽 1시부터 시작한 미리모임에 함께 한
현주샘, 나윤샘, 선진샘, 용주샘, 경훈샘, 은주샘, 조은희샘,
젊은 할아버지,새끼일꾼 청이형은
곤하기도 곤하셨을 겝니다.
"과연 누가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큰돈을 받아도 그리 할 순 없을 거라며
도우러 온 샘들에 대해 공동체 식구들뿐 아니라 서로 서로가 감탄을 했고,
무슨 생각들을 하며 이곳에 오는가,
스스로들 물어본 시간이기도 했네요.
상도샘과 태석샘은 수업 때문에
처음 시작부터 함께하지 못했음을 못내 미안해합니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내고 와 주시기 얼마나 힘든 지 너무나 잘 압니다.
그리고 그것이 물꼬가 얼마나 큰 힘인지..."
그래요, 모두 그렇게 모인 어른들입니다.
물꼬가 무엇이어서 이들은 그 멀리서 손발을 내밀며 달려온 것일지요.
아이들은 이미 산과 들만으로도 풍성했을 것이나
어른들이 빚어내는 이런 애씀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여겨진 하루였더이다.

덧붙이는 이야기 하나.
나윤샘, 버스 타고 들어오는 길 머리가 무지 찌끈거렸다는데
곁의 승찬이가 끊임없이 시키는 말에 대꾸를 하다
도착 십여분을 남겨놓고는 안되겠더라고,
그래서 미안하다며 잠을 청했다지요.
그런데 다른 애들이 나윤샘을 부르면 승찬이가 그랬답디다.
"선생님이 지금 아프시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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