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상설학교 첫돌잔치에 모십니다

조회 수 1232 추천 수 0 2005.04.24 13:20:00

4월 21일 상설학교 첫돌잔치에 모십니다

< 복사꽃같이 아이들이 피었습니다! >

"출항 준비를 마쳤습니다."
비옷을 입은 아이들이 곶감집(아이들집)에 간다며
저녁인사를 하러 들어와 익살을 떱니다.
먼 길을 떠나는 이에게 큰 어르신이 술 한 잔을 내밀듯
곁에 있던 주스를 한 컵씩 내밉니다.
"꼭 살아서 돌아오겠습니다."
오늘은 안는 게 아니라 멋있게 악수를 하는 걸로 밤 인사를 대신했지요.
그만 온 하루의 피로가 다 날아가 버립니다.
교무실을 나가는 아이들의 여운이 오래더이다.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이 내 가슴에 쿵쿵거리고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던가요.
새로운 학교와 공동체에 대한 긴 꿈으로
2004년 삼월삼짇날(음력) 상설학교로 문을 열고
한 해를 오롯이 살아냈습니다.
1989년부터 한 방과후공부가 17년째,
1994년부터 한 계절학교가 12년째인 세월에
역사 한 줄을 보탠 게지요.

역시 옳았습니다.
배움은 얼마나 즐거운 길이던가요.
교과서가 따로 없고 진도표도 없지만
아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진리탐구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무엇을 가르친단 말입니까.
오후면 들로 나가지요.
입이 무서운 것만큼 아이들 손도 무섭습디다.
포도농사에 벼농사, 푸성귀들...
그 많은 농사 아이들이 없음 어찌 해냈을라나요.
끊임없이 서로를 살피며 얘기를 통해 조율하고
깊이 자기를 바라보는 시간을 통해 사유의 땅도 넓혀갑니다.
평화롭습니다.
내가 그러하듯 그 평화가 물결처럼 번져 모두가 보다 평화로워지겠지요.
이 아이들이 자라 그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어, 그런데 굳이 증명해야 하나요,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걸로 우리를 증명하고 있는 걸...

아파서 쑥을 발랐는데 나아서,
진달래를 봐서 예뻤고 살만해서,
시냇가에서 크리스탈 원석을 발견해서,
포도밭을 한 고랑 다 매서,
대나무 화살이 멀리 가서,
배움방(공부시간)이 너무 재미나서,
먼 나라에 머물고 있는 공동체 식구가 5월에 온다는 소식으로
기뻤다는 어느 하루입니다.
나는 오늘 무엇으로 행복하였나, 날마다 꺼냅니다.
화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내려놓은 경험을 날마다 나누듯.
그대는 그대 삶의 자리에서 행복하십니까...

아이들이 꿈을 꿉니다.
공동체 식구들을 위해 농사를 짓겠다는 령입니다.
농사를 돕기 위해 환경농업을 연구해서 령이에게 주겠다는 도형,
혜린이와 정근이는 수확물을 가지고 공동체 식구들을 위한 밥상을 차린다지요.
나현이랑 채은이는 공동체 아이들을 가르치겠답니다.
버스운전기사가 된다지요, 류옥하다는.
공동체 아이들 나들이 갈 때도 태우고
우리 공동체가 궁금해서 찾아오는 이들도 실어 나르겠다데요.
만화가가 꿈인 혜연이는 공동체 아이들 교과서도 재밌게 만들고
우리들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거랍니다.
예린이는 더 가난한 나라로 가서 밥 먹이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지요.
채규는 살아보며 결정하겠다나요.
2005학년도 새로 들어온 하늘이와 지용이는 앞으로 어떤 꿈을 꿀까요?
그대는 희망적인지요, 이 세상에...

"뭘 먹고 사세요?"
"음... 산에서 난 것, 들에서 난 것, 그리고 우리 아이들과 키운 것들 먹고 살지요."
곁에서 보면 너무나 많은 일을 하고 사는 물꼬 사람들의 에너지가
도대체 어디로부터 오느냐는, 찾아오는 사람들의 물음입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만이 이 일을 하고 있는 건지요, 어디.
끊이지 않는 발길들이 닿을 때마다
우주의 신비로운 기운을 느끼기까지 한답니다.
논두렁의 힘은 얼마나 큰지요.
한 사람이 내는 도움 값의 크기야 대수롭잖을지 모르나
(이 산골 가난한 살림엔 어마어마하다마다요)
무엇을 기억하고 꾸준히 챙기기는 얼마나 쉽잖은 일이더이까.
누구보다 마을 어르신들 그늘이 또한 컸습니다.
짚풀 선생님, 농사 선생님, 역사 선생님, 윤리 선생님으로 다녀들 가시지요.
밥알식구들(학부모모임)은 또 어떻구요.
햇살과 바람과 이슬 말고도 이렇게 숱한 손발들이 어깨 겯고 있습니다.
무엇으로도 인사드릴 말을 찾지 못하겠니이다.

목젖 보이도록 한껏 웃으며 흐른 시간이
다시 4월 21일을 맞았네요,
늘 좋기만 하였겠습니까만.
기쁨,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운동장 솔과 살구나무 사이를 걸어오소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536 4월 25일 달날 맑음 옥영경 2005-04-29 1339
535 4월 24일 해날 부옇게 맑은 옥영경 2005-04-29 1355
534 4월 23일 흙날 맑음 옥영경 2005-04-24 1569
533 4월 22일 쇠날 맑되 지치지 않는 바람 옥영경 2005-04-24 1345
532 4월 21일 나무날 오달지게도 부네요, 바람 옥영경 2005-04-24 1402
» 4월 21일 상설학교 첫돌잔치에 모십니다 옥영경 2005-04-24 1232
530 4월 20일 물날 지독한 황사 옥영경 2005-04-23 1200
529 4월 19일 불날 일어나니 젖어있는 땅 옥영경 2005-04-23 1101
528 4월 18일 달날 여름날 마른번개 천둥 치듯 옥영경 2005-04-23 1334
527 4월 17일 해날 꽃 지네, 꽃이 지네 옥영경 2005-04-23 1348
526 4월 16일 흙날 텁텁해 뵈는 하늘 옥영경 2005-04-19 1361
525 4월 15일 쇠날 그만 눈이 부시는 봄꽃들 옥영경 2005-04-19 1347
524 4월 14일 나무날 봄바람이 예전에도 이리 거칠었나요 옥영경 2005-04-19 1129
523 4월 13일 물날 마알간 날 옥영경 2005-04-17 1314
522 4월 12일 불날 물먹은 하늘 옥영경 2005-04-17 1235
521 4월 11일 달날 마르는 마당 옥영경 2005-04-17 1159
520 4월 10일 해날 축축한 날 옥영경 2005-04-17 1367
519 4월 9일 흙날 빗방울도 다녀가고 옥영경 2005-04-16 1318
518 4월 8일 쇠날 뿌옇게 밝네요 옥영경 2005-04-15 1432
517 4월 7일 나무날 햇무리 아래 단 바람 옥영경 2005-04-15 1476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