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계자 이튿날, 2006.5.13.흙날. 갬

조회 수 1453 추천 수 0 2006.05.14 15:10:00

110 계자 이튿날, 2006.5.13.흙날. 갬

고래방에서 요가와 명상으로 아침을 엽니다.
불을 잘 지핀 방에서 자서인지 개운해보입니다.

곳곳에서 열린교실을 합니다.
들꽃을 주워와 '들꽃책갈피'를 만드네요.
"꼭 따야한다면 최대한 개체수가 많은 걸 따자."
책을 많이 읽고픈 지원이는 자신에게 정말 필요하다며 많이도 만들었고,
연호는 철쭉꽃잎으로 만든 책갈피를 이웃친구에게 주련다 합니다.
나름대로 모양을 내며 봄꽃들이 앞 다투어 까치발을 하는 책갈피들입니다.
세희도 주고 싶은 이를 생각하며 만들었다 하고
영록이는 부모님께 드리겠다지요.
"나도 받고 싶다."
펼쳐보이기 시간 보여주러 나온 아이들을 향해 상범샘이 소리칩니다.
"나도!"
저도 얼른 받았지요.
그런데 열택샘도 꼬리를 달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나현 류옥하다 효민 재혁이는 '한땀두땀' 중입니다.
주머니를 만들었지요.
복주머니가 되려면 아래 귀퉁이 쪽을 어찌하면 될까,
끈을 당겨 입이 어떤 모양으로 닫히면 예쁠까 궁리도 하는 규방의 수다는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옷감이 너무 예뻐 모양새를 더했지요.

효현 명윤 주애 민 종훈이는 들에 나갔습니다.
'들나물'교실이네요.
일곱 살 민이는 칼을 야무지게도 씁니다.
쑥과 약쑥을 구별하는 법을 익힌 뒤 쑥을 뜯어 돌아오는 길에
민들레도 한 아름, 머위와 미나리까지 한 움큼씩 뜯어왔지요.
쑥개떡도 만들어 나누고,
민들레랑 미나리는 초고추장무침으로 밥상에 냈답니다.

'뚝딱뚝딱'에 들어온 정우 령 수빈 상위 승찬 기태 희수는
톱질과 망치질을 합니다.
지난 겨울부터 생긴 자격증시험이 치러집니다.
작은 나무토막을 반듯하게 자르고 못질을 끝까지 하는 과정이지요.
그 나무토막에 날짜와 이름을 적어 합격통지서로 받았습니다.
모두 시험을 통과하고 앉은뱅이의자를 만들었더이다.

현승 문근 성빈이는 달골에 올랐습니다,
'산나물'이라 이름 붙여진 교실이었지요.
젊은 할아버지로부터 덩굴로 기어오르는 산더덕에 대한 설명을 듣습니다.
"겨울에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던 것이 잎이 여기 저기 올라오고..."
젊은 할아버지는 봄이 사뭇 반가운 겝니다.
"샘, 이거 산더덕 맞죠?"
머잖아 현승이 소리쳤습니다.
처음엔 이것인가 저것인가 갸우뚱대더니
산을 헤매며 나중엔 정확하게 산더덕만을 캐더라지요.
"저ƒ…다!"
해서 돌아보면 저쪽에서 또
"저ƒ…다!"
하더랍니다.
한 사람이 스무여 남은 개씩이나 캤고
집에 가져간다며 종이에 한 뿌리씩 덩굴째 싸기도 했다데요.
구미 팔미산인가 하는 뒷산에 친구들과 올라 캐겠다는 현승이와 문근입니다.
한데모임을 하고 있는데
곁에서 더덕향이 자꾸 숨을 깊게 들이쉬게 했지요.
다섯의 심마니들에겐 참으로 충만한 느낌이 다녀갔더랍니다.

'다좋다'교실은 무엇을 했던 걸까요?
기윤 동희 정민 신기 현빈 창욱이는
날이 좋아 대나무물총을 만들었다합니다.
성능도 좋더라구요.
"추가사항요!"
현빈입니다.
"안마기로도 쓸 수 있어요."

점심을 먹은 아이들은 거의 큰 마당으로 쏟아졌습니다.
태석샘은 여자애들이랑 농구를 하고 있고
승현샘은 남자애들과 한가운데서 축구를 하고 있는 중이었지요.
선진샘은 몇 여자애들과 평상에서 공기놀이를 하고 있데요.
이네들은 어른들의 수다 자리에 잘 없습니다.
그게 사람으로서 흠집이 있어 그런 지 어떤지 알길 없지만
계자를 하는 동안 아이들 속으로 늘 열심히 들어가 있는 것은
샘으로서 참 훌륭한 부분이다 싶습디다.

모내기를 하러 갑니다.
고래방에서 소리 연습을 하고
모두 풍물악기를 들고 큰 마당에서 잠시 가락을 익힌 뒤 길놀이를 나섭니다.
"자, 나갑니다, 우리 모내기 하러 가는 길입니다요!"
하고 외치는 거지요.
그리고 마을 주차장(그래봐야 차를 다섯 대나 세우려나)에서 한바탕 치고 놀았습니다.
이제 악기를 내려놓고 무논으로 들어갔지요.
물은 마치 미지근하게 데운 것처럼 다사로왔습니다,
한 때 흐린 하늘이기도 했는데.
"논에 흙이 왜 이렇게 부드러워요?"
"그게 다 써래질 덕분이지."
일노래부터 불러보았습니다.
"여어 여어 여허 여허루우 상사뒤여"
"여보시오 농부님네!"
"예이."
"이네 말 좀 들어보소!"
그래요, 오뉴월이 당도하면 우리 농부 시절이라
우리는 산이 놀라 돌아볼 만치 소리들을 질러댔습니다.
계곡을 찾았다 돌아가던 이들이
차를 세우고 물꼬 논을 들여다보고 사진도 찍어가더라지요.
주애랑 종훈이는 무섭다며 한참을 망설이다 논으로 들어옵니다.
재혁이는 규모 없이 모를 사방팔방 꽂고,
현빈이는 못줄의 빨간 표시에 모를 끼우려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표시가 있는 곳에 모를 심으라 했으니
제 깐에 그 말로 알아들었던 게지요.
곁에 있던 농사꾼의 아들 신기는 진도가 안 나가니
현빈이가 못내 마뜩찮아라 하고 있었지요.
"여기서부터 해나가야지, 나중에 어찌 나갈라 그래?"
인숙이네 엄마랑 앞집 이모님네랑 여러 어르신들이 나와
모내기의 여러 지혜를 나눠주십니다.
그래서 모밥(못밥/모내기를 하다 들에서 먹는 밥)을 내와
자연스레 동네잔치가 되던 게 이런 이치였나 봅니다.
한 집안의 행사만이 아니었던 거지요.

어떤 일을 하는데 한껏 즐거울 수 있는 적정규모란 게 있지요.
게으름이 일기도 할 무렵
다랑이가 좁아지면서 아이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못줄 잡은 젊은 할아버지와 김점곤아빠,
상범샘 승현샘 이은영엄마 선진샘이랑 저
그리고 나현 수빈 현승 령 영록 신기가 남았습니다.
못줄을 잡기 위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대해리로 귀농하신 김점곤아빠,
모 내는 논에 오직 노래 하나 대기 위해 대해리로 이사를 결정한 이은영엄마,
학교를 마칠 때까지 음악시간이라면 치를 떨다 그 콤플렉스를 무논에서 이겨내
대해리판 오늘자 신문에 톱뉴스가 된 승현샘,
계자를 오는 동안 구제되어 형편없었던 노래가 이제 노래가 되는 선진샘,...
우리는 대해리가 떠나갈 듯 흥을 돋우는 노래들로 신명이 났더랍니다.
"무지개연못의 독재자 투투와 싸운 우리의 민주투사 개구리왕눈이!"
만화영화주제가들로 단골메뉴였지요.
우리 뒤에선 들의 아이들이 흔히 그리 놀듯
남은 배미에서 댐도 만들고 써래질도 한다며 류옥하다가 휘젓고 다녔습니다.

모밥을 내서 지나는 동네 어르신들도 뫼셔서는 막걸리도 돌리자 하였는데,
준비했던 모가 모자라 일시간이 생각보다 짧았지요.
그래서 그냥 학교 마당 감나무 아래 평상에서 밥을 먹기로 했답니다.
그때 정운오아빠가 15년지기 유기농 농사꾼으로
나름대로 오늘의 모내기에 의미를 더 더하고 싶어 말을 꺼내셨습니다.
"요새는 다 기계로 해. 이렇게 손으로 하는 데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했어요?"
뭔가 의미를 일깨우려던 말이 그만 말려 버렸다나요.

오늘은 아이들이 설거지를 합니다.
저녁엔 샘들이 챙기기전 희수랑 효현이가 먼저 설거지통 앞에 서 있었지요.
"효현이의 속도를 따를 수가 없더라구요."
잘 키운 아이라고 모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이 자자합디다.

'한데모임'이 있었습니다.
낮에 보낸 시간들을 서로 나누고
손말도 배웠지요.
고래방으로 건너가서는 물꼬이야기를 담은 짧은 방송을 하나 보았습니다.
이 상설학교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이해가 좀 되더라데요.
최근 한 시간을 넘는 대동놀이를 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물꼬축구'로 원 없이 놀았습니다.
와, 우리의 상위선수, 힘 셉디다.
세희 효현 명윤 수빈...
핏대를 안 세우는 녀석이 없더라니까요.
선진샘은 이곳에서 흥에 겨워 절로 춤이 춰지는 자신의 모습에 놀랐답니다.
"어린이집 교사들끼리 교사회를 가서 게임을 하다..."
벌칙으로 춤을 추게 되었는데
불쾌할 정도로 요구 받고 어색해하고 하기 어려워하고 그랬던가 보데요.
강강술래도 하였지요.
배워가며 놀았습니다.
기와밟기에서 연호랑 효민이 창욱이 민이가 올라 다리를 걸었지요.

깊어가는 봄밤,
큰 마당에선 젊은 할아버지가 장작불을 피워 감자를 굽고 계셨습니다.
기대만큼 정말 재밌었다,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여기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참 신난다,
지금 다니는 학교보다 더 유익한 곳인 것 같다,
조용하고, 재밌는 것이 정말 많다,
가을에 추수하러 꼭 올 거다,...
아이들이 여기서 보낸 시간을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구운 감자가 나오자
아이들은 서로 서로 얼굴에 재를 묻히고
산골의 밤을 휘저으며 아쉬움들을 달랬지요.

늦은 밤 가마솥방에선 어른들 하루재기가 한창이었습니다.
계자를 함께 해본 부모들은
정말 재밌겠다고, 애들로 보면 정말이지 짧겠다고들 했습니다.
그래요, 산골살이의 불편함이 그 즐거움을 잘라내지 않은 것도
함께 하는 어른들이 그만큼 몸을 써서 그 자리를 채웠던 까닭 아닐 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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