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5.24.물날.맑음 / 봄밤의 밤낚시

조회 수 1575 추천 수 0 2006.05.25 21:25:00
2006.5.24.물날.맑음 / 봄밤의 밤낚시

수영을 가고 오며
가는 길엔 아는 노래를 죄 찾아 불러보고
오는 길엔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이야기도 벌입니다.
이제 아이들을 태우고 운전을 하고 얘기도 한껏 하게 되었지요.
시간은 얼마나 큰 힘인지요.
사고의 순간으로부터 이렇게 벗어나나 봅니다.

오는 길엔 너출봉으로 길을 잡았지요.
학기 마지막 밤낚시를 가기로 했습니다.
한 해 두어 차례 하는 연례행사지요.
마을식구들과 공동체식구들은 학교에서 출발을 하기로 했습니다.
"야아!"
멀리서 너럭바위 길을 타고 시내를 거스르는데
기다랗게 늘어선 작은 댐으로 물이 넘쳐 장관을 이루고 있었지요.
아직 해 중천인데
전세라도 내주듯 너출봉은 우리를 위해 자리를 널찍이 펴주고 있었지요.
아이들이 수영복을 꺼내 한 바탕 댐 위로 달음박질을 치고 나올 무렵
식구들도 닿았습니다.
"이래 좋은 데를... 진즉에 좀 뎃고 오지."
정운오아빠는 툴툴거리기까지 합니다.
둑방길을 내려와 한켠에 텐트도 치고 실어온 짐들을 부릴 때
한 편에선 낚싯대를 드리우고 족대도 끕니다.
"있어?"
"없어요."
"해가 질 무렵부터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하면..."
빠가사리를 두 마리 낚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아직 고기를 낚을 때는 아닌가 봅니다.
족대를 든 이들도 겨우 미꾸라지 한 마리 기어든 게 전부라지요.
웬 미꾸라지가 다 있더라니까요.
자신의 존재들을 알린 유일한 이 밤의 미꾸라지였습니다.

해가 꼴딱 넘고 서서히 어스름이 듭니다.
저녁으로 별미인 라면을 먹고 나서 슬슬 움직였겠지요.
엄마들은 모여 앉아 도란거리며 물소리에 잠기고
다시 족대와 들통을 들고 훑거나 낚싯줄을 던집니다.
아니나 다를까,
입질이 시작되고, 족대를 휘두르고 있는 패들에서도 함성이 터져 나왔지요.
빠가사리에 모래무지, 은어로 보이는 가리(이 동네선 그리 부르데요),
게다 꺽지도 한 마리 나왔습니다.
낚싯대쪽에선 동희도 한 마리,
승찬이도 한 마리를 낚아올렸지요.
족대나 투망으로 와르르 잡는 것보다
이렇게 한 마리 한 마리 낚는 즐거움은
저수지로 강으로 그 많은 낚시꾼들을 불러들이는 까닭일 테지요.
어쩜 늘 쉬운 길보다 거친 길을 택해서 갖는 즐거움처럼 말입니다.
매운탕을 끓이고 있을 적 한 켠에서 썬 감자도 맛나게 익혀지고 있었고,
아이들에게 텐트로 불려 들어가 무서운이야기 14탄도 쏟았습니다.
정말 이 밤이 서늘해질까,
어릴 적 동네에서 만난 낚시 잘하던 인술이 아저씨 얘기를 들려주었지요.
무서운 것보다는 흥미로운 옛이야기쯤 되겠습니다.
우리 생의 다 가늠할 수 없는 부분들이 이야기에는 등장하기 마련이고
그러면서 우리는 삶에 대한 지평을 넓혀보는 거지요.

둑방에 오르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널찍이 판을 번 대신
계곡바람이 고스란히 넘어와 기온이 푹 떨어졌습니다.
박진숙엄마랑 이금제엄마는 감자를 굽고
홍정희엄마는 열심히 매운탕을 퍼고
이은영엄마는 높은 데서 조명을 밝혀줍니다.
노래가 돌았지요.
바람소리도 높고 물소리는 더 높은데
그 가락을 타고 어둔 밤하늘로 노래가 퍼져갑니다.
"태풍 루사와 매미도 뚫고 나온,
떠내려 온 닭을 잡아먹으며 견딘 가정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
신청도 않고 매운탕만 열심히 온 가족이 먹고 있는 신기네 좀 보셔요.
"노래 부르고 났는데 박수도 안치고 얘기하느라 정신없고..."
분위기를 못 받쳐준 식구들이 좀 아쉬웠던지
나현이도 령이도 류옥하다도 한마디씩 합니다.
아마도 예전 시간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무성한 말만이 흥겨움이겠는지요.
"그래도 좋았잖아?"
나현이가 확인시켜주었지요.
네, 이 밤은 이 밤대로 좋았지요,
서로 나서지 않고 소란하지도 않았던
그저 작은 작은 움직임을 만들던 밤, 마치 너출봉의 한 부분처럼.
어느 때같이 달도 없고 미리내도 뵈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물이 넘쳐요!"
바람이 거칠어져 물을 건드리자
우리 쪽으로 조금씩 혀를 내밀듯 물이 넘어왔습니다.
불어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엉덩이가 젖고 말지 싶었지요.
때맞춰 일어나야겠다던 즈음이었더이다.

다음 낚시가 벌써부터 기대된다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봄밤이었습니다.


* 덧붙임:
이 글을 읽고 낚시 좋아하는 구미의 선배가 전화를 했습니다.
"별 재미 못 봤나부데?"
무슨요, 그날 제 낚싯줄에 걸린 것만도 스무 마리가 넘었는 걸요.
이래 저래 낚싯대를 드리운 이들이 잡아올린 것도 꽤 될 걸요.
게다 내 건너 투망을 던지던 이들이 물꼬에서 왔다고 나눠준 것까지,
그날 우리들의 매운탕 냄비는 차고 넘쳤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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