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계자 사흗날, 2008. 1. 1.불날. 햇살 속으로도 눈발 날리다


고래방으로 들어서는 아이들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며
아침을 엽니다.
어른들이 몸을 풀고 나간 자리로
아이들이 해를 건지러 들어왔지요.
그렇게 한 존재 존재를 그 존재의 크기로 맞아봅니다.
귀하지 않은 이가 어딨을라구요.
저 예뿐 것들을 보내주어 고마웠지요.

눈을 치우자는 마을 방송이 나왔습니다.
연례행사로 계자의 한 일정쯤 그렇게 겹치지요.
어느 해 겨울은 2km를 좀 못 미치는
저 흘목까지 눈을 다 치우고 돌아왔댔지요.
그런데 오늘은 바람이 너무 매워 그랬는지
(우리가 좀 더디게 나가기도 했네요)
어르신들이 나와 요 앞만 치우고 들어들 가셨는데,
우리더러는 학교 뒷마을로 이어지는 길,
그러니까 학교 둘레 길을 치우라 권하셨습니다.
야아, 그런데 이 녀석들
정말 지치지도 않고 눈싸움을 하데요.
형길샘과 영환이형님은 연탄재를 깨
곶감집 오르는 길에 뿌렸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그렇게 뜨거워본 적이 있느냐 물었던
한 시를 떠올렸더라지요.
손풀기를 끝내면서
눈 치우느라 힘을 뺀 아이들에게
물꼬에서 만든 곶감을 네댓 개씩 건넸답니다.
“완전무공해 친환경이네요!”
호들갑이 어디 하수민이 뿐었을까요.

‘들불’.
오전엔 들에 있었습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 피난민 행렬처럼
리어카에 고구마며 나뭇가지며 보따리 보따리 실어
뒤에서 밀고 옆에서도 밀며 가고
줄줄줄 따라도 갔지요.
우리 논에다 불을 피웠습니다.
한켠에선 고구마를 굽고
다른 편에선 은행과 떡을 구웠답니다.
아이들은 다랑이 논 위와 아래에 진지를 마련하고
지치지도 않고 눈싸움을 하였습니다,
눈 치우러 나가서 그토록 하고서도.
동하 한슬 승엽이를 주축으로는 희중샘한테 눈을 던지고
성수 재준 동하 민규패들은 민화샘한테로 공격을 합니다.
그 사이 여자 아이들도 만만찮으니
눈이 쉴 새 없이 날았겠지요.
들에 나오자 해놓고는
바람도 거친 데다 해가 구름에 가려
아무래도 애들 지나치게 고생시키겠다 싶어
다시 번복하려 했었습니다.
“이미 늦었어요.”
벌써 준비를 다 끝냈으니 가야한다고들 했습니다.
“그럼 가보지, 뭐.”
좀 더 두터워진 해가 곧 나와 주었어도 그랬겠지만
물꼬는 ‘최고의 상황으로 만들어가는 긍정의 힘’을 지닌 듯합니다.
이미 가진 조건에서 잘 출발하는,
그리고 외려 최선의 즐거움으로 바꿔버리는.
역시 나오길 잘했습니다.
“가자!”
모두 논을 벗어났는데
마지막 불씨를 정리하며 있으려니
아랫다랑이, 찬 겨울 들판에서 해온이는 무릎을 꿇고 앉아
커다란 눈덩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 눈을 움켜쥐어
덧바르듯 눈을 붙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하늘과 눈과 논, 그리고 모닥불...
아름다운 풍경이었지요.

‘구들더께’.
겨울 한 낮 햇살이 온 방으로 들어와
봄날 같습니다.
젊은할아버지가 불을 어찌나 때셨는지,
바닥은 따땃도 하구요,
샘들도 배 깔고 책 보다 졸고
재은이랑 유수민이며는 형길샘 눈 감고 잠시 쉬는 얼굴에 장난을 걸고
여자고 남자고 큰 녀석들이 불가에서 공기를 죽어라 하고
책방에 들어 책을 펼치기도 하고
더러는 또 눈싸움을 나갔습니다.

열린교실.
철순 범순 수현 해온 단아가 다시 연을 만듭니다.
“우리는 셋이 같이 하자.”
수현 해온 단아가 힘을 더해 하나를 만들고
금새 또 하나를 만들고 있었지요.
“우리도 합해서 만들자.”
남자 둘도 그리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희안도 하지요,
그 많던 바람이 연을 들고 나간 그때
쉬고 있는 겁니다.
그래도 소나무와 살구나무 사이 저 위에서
수연의 연은 한참을 떠 있었지요.

유수민 진석 민상 정식이가 단추로
놀잇감도 만들고 인형도 만들고 목걸이 팔찌를 만들었지요.
한땀두땀에는
자누 윤준 한슬 현정 상헌 재은 태오 슬찬이가 들어가
작은 쿠션을 만들었습니다.
현정이는 한지에 바느질을 시작했네요.
그런데 솜을 넣을 적 그만 터져버렸는데,
오빠 상헌이 열심히 수습해주고 있었습니다.

살아있는그림책에서는
현규 혼자서 입체책을 만들었습니다.
다량생산이었지요,
크기가 다양한.
자꾸 하니 난이도도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다좋다’에는 재준 현진 재현 민규 용하가 들어갔습니다.
“물꼬에서 의견이 하나 들어왔는데...”
마늘을 좀 까달라는 것이었지요.
“빨리 하고 놀자.”
현진의 제안에 민규도 찬성하고,
그리하여 네 시까지 마늘을 까고
나머지 한 시간은 놀기로 하였다는데,
네 시까지 못다 했지요.
“5분만 더하자.”
그래도 남은 마늘을 또 까느라 5분, 또 5분,
그러면서 시간은 자꾸 길어지고 있었습니다.
“20분 까고 30분 놀지, 뭐.”
“이거를 곰은 어떻게 먹었을까?”
“이거 백 개 까면 사람이 돼.”
그래서 모두 사람이 되기도 하였더라나요.
마늘 부업집의 수다는 끝이 없고
그러다 그만 열린교실 시간이 다 가버리고 말았답니다.
헌데 어느 누구도 까던 것 그만두고 나가자 하지 않았더라지요,
하고 싶은데 못 놀았다 슬쩍 아쉬움만 얘기할 뿐.
민규는 서로 보낸 시간을 보여주는 ‘펼쳐보이기’시간까지
마늘 그릇을 붙잡고 앉아
결국 통바늘을 죄 까고야 말았더랍니다.

다시 쓰기.
세현 세원 우재 채현 영범 하수민이 함께 합니다.
찢어진 이름표를 다시 주문 받아 해결해 주고,
자유학교 물꼬를 주제로 하고픈 걸 만들었다지요.
자기한테 관심 있는 것에 눈이 가기 마련이고
그래서 같은 집을 만들어도 다 다릅니다.
영범이는 현관 처마에 걸린 징이 퍽이나 인상깊었던 모양이지요.
수민이는 연못을,
세연 축구하는 애들을 단추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아, 우재는 경찰서를 만들었는데,
유켄도(맞나요? 만화캐릭터쯤 될 테지요)가 지키고 있었답니다.

유 세인 세빈 지인 승엽 형식 양현지 유나는
‘한코두코’ 뜨개질을 하였지요.
처음에 조금 어려워하던 승엽이는
기를 쓰고 하더니 곧잘 하게 되었고
형식이는 여전히 어려워하는 속에 코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으며
세빈 세인 코를 자꾸 빠뜨려서 풀었다 다시 하기도 하며
조용히 잘 따라가고 있었지요.

뚝딱뚝딱.
“우리는 고정이에요. 신청 더 안 받아요.”
상훈 용범 성수 동하 김현지 온이
어제 만든 돛대 아래 모였습니다.
배에다 이제 단다지요.
돛대를 펼쳐 세운 뒤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저 의기양양함이라니...
“팽이는 언제 줘요?”
동하가 잊지 않고 물었습니다.
형길샘은 아이들 하나 하나에게
팽이를 깎아 선물로 주며 마음 푹했다 합니다.
“뭔가 하나 더 얹어주는 기분!”

펼쳐보이기.
열린교실 뒤 저마다 보낸 시간을 나눕니다.
솜이 비어져 나오고 실은 엉겼으며
단추가 고르지 않고 삐죽거리거나
톱 자리는 엉성하고
땟구정물 줄줄 흐르는 것만 같은,
냉정하게 작품이라 부르기 힘든 것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생을 채우는 것들도
커다란 어떤 게 아니라 소소한 기쁨들인 것처럼
그게 무엇인건 아이들이 만든 것에 박수쳐주고
그가 애쓴 걸 감탄해 주는 교사를 비롯한 아이들의 반응과
또 자신들의 것을 자랑스럽게 내미는 속에
비로소 작품은 작품이 되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값진 것이 됩니다.
‘볼품없는 것들이 빛나는 자리’,
이런 시간을 그리 불러도 무리가 없지 싶습니다.
한편 순간 순간의 기지가 한껏 드러난
놀랄만한 작품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성과에 내몰리지 않을 때 한껏 자신들을 뿜어내는 게
아이들이라고 어디 다를까요.

‘구들더께’.
구들을 지고 사는 노인네를, 또 병석에 오래 있는 이를,
한편 게으른 이를 그리 부르던가요.
말 그대로 구들의 더께 같다 그 말이겠지요.
방바닥을 등지고 노닥거리거나
못 다한 열린교실을 더 하러도 가고
하고픈 걸 저마다 찾아 하고 있을 적
우리의 민규 선수, 어제 한데모임에서 손을 번쩍 든 대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녁 풍경도 구들더께에 다름 아니었지요.
이번 계자는 공기 열풍입니다.
희중샘은 아주 놀이기구이지요.
지인 세원 우재 해온 하수민 현정 재은 용하가
목마를 타고 놀거나 철봉에 매달리거나(물론 다 희중샘입니다요)
그네를 탑니다.
새끼일꾼 영환이도 못잖았지요.
채현 현정 세원 해온이가 아주 샌드백 다루 듯했답니다.
하기야 그게 새끼일꾼의 본분입니다만...

한데모임에서의 책방 얘기는 감초입니다.
열심히 얘기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남 얘기처럼 심드렁한 아이들도 있었는데
한 샘이 다시 자극을 주며 분위기를 바꾸었지요.
“우리 이야기잖아요.”
그래요, 함께 사는 공간을 같이 꾸려나가야지요.
“왜 책은 정리되지 않는 걸까요?”
귀찮아서 안한다고들 고백합니다.
얘기를 함께 하지 않는 것도 다르지 않은 까닭이겠지요.
그래요, 귀찮습니다.
아암요, 귀찮구말구요.
“좀 귀찮지만 마음을 내서 선한 일에 함께 하자.”
얘기는 그렇게 모아졌습니다.
어쩌면 이번 계자의 주제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귀찮지요,
하지만 힘을 내고 마음을 내서
선한 세상을 만드는 게 같이 하자고들 다짐해보았습니다,
귀찮다고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바에야.

좋은 동화도 슬라이드로 봅니다.
<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동생이 있습니다>.
겨울밤 흑백으로만 채워진 그림이
아이들을 훈훈하게 했지요.
음악도 따듯했네요.
마침 손말도 배우고 있던 터라
감동을 더한 동화가 되었습니다.

대동놀이도 빼놀 수 없지요.
고래방으로 건너가 물꼬축구를
짧으나 진하게 하고 돌아옵니다.
춤추고 던지고 안고 뛰고...
샘들은 아예 작은 아이들을 안고 달려가기도 하고,
골문을 지키는 아이들은 모든 틈을 다 메워 빈틈을 없애고,
한편 그 애들을 앞으로 끌고 그 사이를 비집어 공을 던지기도 하고...
언제 해도 신납니다.

슬슬 오줌을 싸고 똥을 지리는 아이들이 생겨납니다.
그걸 또 샘들이 잘 치워주고
씻기고 옷을 빨아주지요.
그게 또 작은 일이 아닙니다.
가끔 그저 아이들 앞에서
가르치는 것만 하겠다고 봉사를 오는 이들이 있지요.
이곳에서는 이런 것도 해야 합니다.
그 공간이 필요한 걸 하는 게 봉사이지요.
공동체도 그러합니다.
내 계획을 이미 그리고 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오래 견디지 못하지요.
공동체도 공동체의 계획이 있으니까요.
공동체에 자신을 맞춰야지요.
그러는 속에 차츰 자신이 옳다는 게 있다면
모두를 잘 설득해서 나아가면 될 겝니다.

이번엔 아이들이 참 안 싸웁니다.
평화롭기 그지없지요.
대신 좀 밋밋한 듯은 합니다만...
샘들의 분위기도 거기 몫을 더하고 있지 싶습니다.
참 순한 어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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