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4.26.흙날. 바람 불고 추웠으나 / 네 돌잔치

조회 수 3608 추천 수 0 2008.05.15 01:54:00

2008. 4.26.흙날. 바람 불고 추웠으나 / 네 돌잔치


상설학교로 다섯 해째를 맞습니다.

“자유학교 물꼬가 네 돌을 맞아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작은 잔치를 엽니다.
오늘 저녁 6시... 늘 고맙습니다.”
이른 아침 류옥하다 선수의 마을 방송으로 시작하는 잔칫날입니다.

밤 사이 비가 다녀갔습니다.
아침까지도 눅진하더니 해 뜨자 말짱해졌지요.
하늘 덕을 또 이리 봅니다.

미리 들어온 이들이 있었지요.
논두렁 김은숙님과 김혜숙님,
김해의 김혜원님네(새끼일꾼 다옴이가 동생 다우랑 아빠랑).
그래서 아침모임에 함께 하여 전체 일에 대한 그림을 같이 잡았습니다.
김은숙님과 김혜숙님이 안인경님을 도와 부엌에 붙고
젊은 할아버지가 불을 관장하시고
종대샘이 바깥 움직임 전체 진두지휘를 하고
교무실에선 아이들 공연, 녹음, 행사안내장과 벽보를 준비키로 했지요.
해마다 잔치며 계절학교에 큰 힘을 보태는 김은숙님이
올해도 멀리서 걸음 했습니다.
사람이 변함없기 쉽지 않을진대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런데 뭔가 빈 것만 같더니
함께 오는 성빈이와 현빈이가 못 왔네요.
그리 움직임이 많지 않은 아이들도
이곳에선 다 자기 색깔들이 잘 드러나 존재감도 그만큼 크지요.

밥을 낼 천막이 쳐지고
고래방과 학교 큰대문, 그리고 물한계곡에서 대해리로 갈라져 들어오는 곳에
‘꽃은 꽃대로 피고’ 라고 쓴 잔치 현수막이 걸립니다.
상촌면사무소에서 공연용 의자들도 실려 왔지요.
잔치 다음날 묵어가는 이들을 위해 떡국으로 상에 오를
가래떡도 찾아왔습니다.
숨꼬방과 간장집과 곶감집 굴뚝에 연기가 오르고 있었지요.

품앗이 성일샘과 희중샘이 트럭을 끌고 일찍부터 와 주었습니다.
큰 품앗이 태석샘도 움직입니다.
널려있던 포도나무 가지들을 모아 곶감집으로 올리고
창고로 쓰이는 컨테이너 앞 쌓였던 연탄재들이 비로소 옮겨지고
손님들이 묵을 방에 수건과 물과 걸레가 놓이고...
오랫동안 물꼬의 여러 큰일들을 진행해왔던 상범샘도
오늘만큼은 와서 손을 보탭니다.
전체를 주관하지 않더라도 마음이 든든합니다.
혹여 진행에서 비어있는 자리를 그가 더 잘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점심버스로 열다섯의 영동대 유아교육과 학생들이 들어왔습니다.
저녁차로도 둘이 올 거지요.
해우소에서부터 달골 창고동, 본관, 고래방 따위들로 나뉘어
청소를 합니다.
아무래도 공연을 주 일로 가지고 온 이들이라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음이 없잖았습니다만
그들의 탓이기보다 일을 관장하는 이곳의 서투름 때문이었겠습니다.
‘같은 대학 학생들인데 작년과 다르다’고
대놓고 견주는 어른들도 있었으나
작년에 같이 움직였던 사회복지과와 참사랑봉사단에 대한
고마움, 애정의 의미였겠습니다.
아, 작년에 유아교육과도 있었네요.
어찌되었든 작년에야 자원봉사가 주였고
올해는 공연에 붙으려고 온 이들이라
아무래도 마음가짐이 다른 면이 없기야 했을라구요.
그래도 그들이 있어 청소가 됐는 걸요.

부엌에선 생명사랑채식실천협회에서 채식요리를 위해 사람들이 오고
육개장 맛이 나는 두계장,
그리고 채식불고기와 채식돈까스가 준비되고,
부엌 뒤란에서 가마솥에 불이 지펴지고,

대문 들머리엔 안내대가 놓였습니다.
거기 천연주방세제와 효소 장터도 열렸지요.
밤을 위해 전등불도 이어졌고
전나무 가지 사이로 아이들 천그림이 휘날렸으며
물꼬 이야기가 담긴 비디오가 돌아가는 숨꼬방 앞으로
수정과와 식혜와 여러 차들이 놓인 차방이 마련되었답니다.

교무실에선 벽보를 쓰느라 한창이었습니다.
공연 시간을 끌어갈 진행자에게도 공연들에 대해 설명을 해줍니다.
아이들 연습과 녹음이 있었고,
그래서 이번에 함께 무대에 서는 채민네가 왔다가
저녁 공연을 위해 의상(너무 깜찍했던 한복)을 챙기러 다시 갔지요.
저녁엔 할어니 할아버지까지 여섯이 올 거랍니다.
점심을 먹을 무렵 이정이네 할머니가 친구분과 함께
절편에 송편에 시루떡까지 실어오고
새콤달콤이라 불리는 야채무침이 오고
어마어마한 겉절이가 오고
거기에 가래떡까지 이고 지고 오셨지요.

“어, 웬일이셔요?”
대해리 도로 공사 현장 소장님이 오셨습니다.
다른 데 나갈 일이 있어 잔치 벌어지기 전이지만 인사 하고 간다며
후원봉투를 주고 가셨지요.
“아니 앞으로도 흙이며 돌이며 얻을 게 많은데,
어찌 다 갚으라고...”
흙이며 돌이며 실어다 주신다 하기 포도즙 한 상자로 한 인사가
이렇게 새끼를 무지 쳐서 돌아온 것입니다.
한 때 물꼬공동체식구였다가
결혼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나타난 윤희샘에 이어
화장지 다섯 꾸러미에 추억의 종합선물세트 두 상자까지 실어온,
(어쩜 차에 들어가는 최대치였을)
시낭송모임의 보헤미안 이영준님도 이른 걸음을 하셨지요.

저녁.
아니, 왜 패러글라이더는 또 날지 않는답니까?
바람이 없어 못 날더니
오늘은 또 너무 많아 못 날았습니다.
벌써 세 해를 했던 시도이지요.
패러글라이드가 작은 마당에 내려앉을 수 있으려나 걱정이더니
걱정을 덜어줄라 그런 모양이지요.
언제쯤엔 우리 머리 위에서 패러글라딩 쇼를 보려나요.

심하던 바람이
그래도 밥 먹으라고 좀 잦아듭니다.
아무래도 마을 어르신들은 방으로 뫼셔얄 것 같습니다,
공연 준비하는 이들도 먼저 멕여얄 것 같고.
그런데 좀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전체 부엌 일을 알고 있던 이가 갑자기 오지 못할 상황이 생겼는데,
일이란 게 꼭 손이 없어서가 아니고
일머리를 몰라 허둥댈 때가 더 많지요.
설거지도 뒷배가 될 사람들은 미리 먹여두면 좋았을 걸,
놓쳤습니다.

바람이 스산하여 처질 수도 있는 저녁 밥 때,
칭하이무상사국제협회가 준비한 야니(John Yanni Christopher) 공연이
책방 앞 스크린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쌀쌀한 날씨를 데워주기에 충분했지요.
어둑해지며 다소 쓸쓸해질 듯도 한 저녁 한 때를
후끈 달궈주었던 것입니다.
현대음악을 고전과 무리 없이 결합하는데 성공했다 일컬어지는
우리 시대 뉴에이지의 대가이고,
삶에 대한 도전과 모험을 펼쳐 보이는
금세기 최고의 뉴에이지 키보디스트라 불리기도 합니다.
오늘 그는 산골 마당에서
97년의 인도 타지마할과 중국의 자금성 라이브 공연의 감동을
재연하고 있었답니다.

마을어르신들이 서른 남짓 오고,
오늘은 면내 곳곳에서 행사가 많댔는데,
그만큼 걸음하실 곳도 많을 텐데
면장님도 와주셨습니다.
계절학교 아이들도 여럿 보였지요.
재희 채현네 여섯 식구들, 가야네 두 식구,
오진석네 세 식구, 세빈 세인네 네 식구,
진주에서 잔치에 개근하는 하수민네 네 식구,
윤준이네 세 식구, 승호네 세 식구...
처음 온 이진현님네 세 식구,
장성 한마음공동체에서 손동식님네 네 식구,
정토회 식구들 가운데 서울서 온 일화연님과 친구분,
울산서 온 사건님과 공주에서 온 진달래님, 그리고 그 친구분,
그리고 흙집 짓는 이들도 자리 함께 했지요.
금산서 풍경님 내외분, 서울서 토담님 세 식구,
순천에서 황토님, 상주에서 무이님,
그리고 품앗이 선진샘, ...
유기농사 짓는 마고농원과 광평농장 내외분들도 오셨습니다,
대전 평화의마을 관장 권술용샘과 요한이까지.
정신없어 일일이 다 눈에 채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채식관련 식구들 일곱,
원불교 식구들 여섯,
와우, 웬 사람들이 그리 많았답니까.
거기에 공연자들, 부산 추임새에서 여섯,
대구 달성다사농악과 울림에서 아홉,
영동대 유아교육과에서 열아홉,
감골소리에서 여덟,
대전 장연숙 무용에서 둘,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일곱,
패러글라이딩교실 다빈치에서 둘,
칭하이무상사국제협회와 생명사랑채식실천협회에서 일곱,
sbs 촬영팀이 둘...
“공연팀이 더 많네.”
늘 그렇지만 서로가 서로의 관람객이 되는 거지요.

사람들을 맞고 인사하며 걸음을 재고 다니는데,
채식요리사 이윤옥샘이 곁에 왔습니다.
“날이 추워서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불을 피우지?”
아, 그러게 말입니다. 그걸 또 왜 생각 못했을까요?
모닥불을 피우고 이제 좀 앉으려나 싶더니,
밥이 모자란답니다.
하면 되지요.
맛나다니 고마울 일입니다.
넉넉하게 준비했는데도 모자란다니
잘 먹어 고마울 일입니다.
“좀 기다리려주실래요?”
그러면 또 누가 뭐라 그러나요.
그런데 사람 많은 일을 치르다 보면 그렇기도 하지,
서로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닐 텐데
부엌에서들 지레 마음이 바빴나 봅니다.
하기야 지났으니, 혹은 멀리 있었으니 이래 말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늘 당사자는 발이 동동거려지게 마련이지요.
“잔칫날 음식 동나는 거야 좋은 일이지.”
누군가 그리 덕담을 했습니다.
툴툴거림은 여럿을 불편케 하지요.
몇 해 왔던 이들이 부엌을 지나며 조금 아쉬워라 하셨더이다.
에이, 잔칫날 그러기도 또 예사지요.
이리 쿵 저리 쿵, 그게 또 잔치 아닐는지요.
늘 그렇기야 하겠는지요.
보는 분이 더 너그러우시길...

지신밟기로 공연이 시작됩니다.
큰대문 밖에서 비나리를 하며 악을 울리고
마당을 밟아준 뒤 고래방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지요.
자연스레 사람들이 따라 들어갑니다.

훑어보기
1. 강강술래 노래 익히기
2. 누가 누가 왔나(덕담 나누기)
3. 식사준비 이야기(영상물)
4. 아이들 작은 공연:
손말(학교노래)/ 단소/ 판소리/ 그림자극/ 영어로 하는 옛 얘기
5. 감골소리국악관현악단
6. 실상사 작은학교 밴드부
7. 영동대 유아교육과 인형극동아리
8. 춤
9. 국악타악연주(농악, 설장구, 사물)
10. 강강술래
11. 대동굿

나중에 같이 한바탕 잘 놀자고 강강술래 노래부터 익혀둔 뒤
덕담을 듣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멋있는 축사현장을 보았지요.
몇 주년 기념식 하면
줄줄이 이름 붙은 이들이 나와
길디 긴 그리고 낡은 이야기로 채우던,
그래서 뙤약볕 아래 아이들 쓰러질 것만 같았던 그 축사들,
아, 그런데 오늘 살아 펄펄 뛰어오르는 송어 같은 축사를 들었습니다.
처음엔 진행자가 바람을 잡아
미리 짠듯한(짜고 치는 고스톱?) 유아교육과 학생이 덕담을 시작하더니
불려나온 정토회 진달래님이 한 마디를 하자
할아버지도 한 마디 하라고
진행자 최혜미 선수에게 지적당한 조중조 할아버지의 축가가 이어지고
자리는 슬슬 흥을 내더니
사람들이 마치 준비라도 한 듯 일어서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영동생산자모임 회장이신 조정환샘,
지역에 이런 학교가 있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고
우리는 그 학교가 잘 살아가도록 도와야 한다셨지요.

폐교됐던 학교에 아이들이 들어와 죽어있던 산골이 살아났다,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앞으로는 뭐라도 도와줄 수 있도록 애쓰겠다,
대해리 경로회장 신동훈할아버지,
얼마나 멋있게 말씀하시던지요.
“연습하고 오셨나 봐.”
실상사 작은학교의 한형민샘도 손 번쩍 들고 나와 한 마디 하셨고,
그리고 보헤미안님이 섹스폰 연주로 덕담을 대신하였습니다.
소리가 좀 빽빽거리긴 했지요만, 하하.

육식으로 지구가 어떻게 병드는가를 보여줄
3분짜리 영상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야니의 음반이,
또 오늘 준비한 음식으로 얘기를 대신하였다 싶어,
더하여, 전체 공연흐름의 원활함을 위하여
빔프로젝트 스크린을 내리다 말았지요.
차례에 없었던 춤 공연도 오늘 끼워졌듯
볼 것도 이미 넘치고 있었으니까요.

감골소리 국악관현악단의 잔잔한 무대가 있었고
(산골 저녁풍경이랑 잘 어울리는 자리였습니다),
실상사 작은학교의 밴드부가 무대를 준비하고 있을 즈음이던가요,
논두렁 대표직을 연임하고 있는(그런 게 있냐구요?) 박주훈님이 들어섰는데
진행자가 또 그를 불러세우네요.
“우리 다 들었거든요, 늦게 오신 분들 노래요.”
노래 부르라니까 또 부르십니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직녀에게’,
우리(?)들의 80년대가 생각나데요.
모든 건 흘러가버렸고 세상은 변했습니다.

밴드부의 공연은 고래방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밴브부의 역동성도 역동성이었지만
그들에게 열광하는 상큼한 대학생 누나들 좀 보셔요.
꺄악, 꺄악, 어찌나 소리를 질러대던지요.
그들을 보는 게 더 공연 같았다니까요.
마이크가 말썽을 부렸는데,
외려 잘 안 들려서 더 멋져진 공연은 아니었는가 모르겠습니다, 하하.
영동대 유교과의 인형극과 블랙라이트 공연은
아, 정말이지 대단한 박수를 받았습니다.
물고기 이야기와 월드컵.
작은 물고기들이 모두 모여 만들어낸 큰 물고기 한 마리,
아름다웠지요.
그리고 월드컵, 우와, 그런 신바람이 없었답니다.

마지막으로 모두 하나 되어 논 강강술래에는
타악 공연자들이 눈치 있게 미리 약속이나 한 듯 나와서
악을 넣었습니다.
사람들을 모이는 곳에서 꼭 풀어보는 강강술래는
옛적 대동놀이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흥을 되짚어보게 하지요.
참 좋데요.
그리고 대동굿 한 판.
밤이 그리 깊었습니다.

먼 길 오면서도 이것저것 챙겨와 나눠주신 분들이 많습니다.
이정이네 할머니께서 마련해오셨던 것들,
대해리 도로공사 현장 소장님이 건네고 가신 봉투,
무명으로 후원하신 분도 계시고,
마고농원에서 막걸리가 한 말이나,
같이 왔던 광평농장 조정환샘이 내주신 포도주와 사과와인 각 반말, ...
대상샘과 관호샘은 또 봉투를 놓고 가셨네요.
해마다 이렇게 부르기만 해서 못내 죄송한데
역시 해마다 차비조차 거절하십니다.
“어차피 가면 도로 송금할 텐데 미리 여서 안 받을란다.”
“우리가 공연료를 드리지는 못할망정...”

이지현님이 귤쨈을 나눠주셨고
권술용샘이 재미난 것들로 ‘다시 쓰기 가게’를 열어주셨으며
아, 태영인쇄 전영화님이 잔치안내장도 인쇄해주셨더랬지요.
이름 없이 어디서 꽃바구니도 닿았습니다.
젊은 할아버지도 화환을 마련해주셨지요.
민들레화원에서 화분이 오기도 하였습니다.
수민네는 파스 한 상자랑 ‘경옥고’ 한 단지를 내밀었는데
덕분에 경옥고(瓊玉膏) 자료도 한 번 찾아보았네요.

塡精補髓調眞養性, 返老還童補百損, 除百病萬神俱足,
(경옥고는) 정을 채우고 수를 보하며 진기를 고르게 조절하고 양성하여, 노인을 어린 아이처럼 다시 젊어지게 하는가 하면 손상된 모든 것을 보하고, 여러 병증을 제거하여 신(神 정신)이 충족하게 되며,
...
生地黃十六斤搗絞取汁人參細末二十四兩白茯巔細末四十八兩白蜜煉去滓十斤
재료는 생지황16근(짓찧어 즙을 낸 것), 인삼 24냥(곱게 가루로 만든 것), 백복령48냥(곱게 가루로 만든 것), 백밀10근(白蜜 졸여서 찌꺼기를 버린 것)

잔치 하려면 뭐라도 필요한 게 많을 거라고
손동식님이 미리 보내주신 후원금이 있었고,
순천의 노형이네가 오지 못한 아쉬움을 후원금으로 대신 하기도 하였으며,
우리 아이들의 국화샘인 미죽샘도 봉투를 주셨습니다.
“아니,...”
강사료 한 번을 못 드리는 우린데...

밤이 길었습니다,
참말 길었습니다.
아침 5시 30분까지 곡주에 절었지요,
노래도 넘쳤고.
교육에 대한 의견들이 더러 충돌을 일으켰으며,
젊은 날의 높고 아름다웠던 이상이
앉아있던 사람들 사이를 다시 꿈틀거리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방명록에 남겨진 글들 가운데.

정은지: 너무 재미있어요. 물꼬 다섯 돌 때도 꼭 오고 싶어요.

오진석: 축하합니다. 이제 다섯 살입니다. 이제 옥샘도 나이가 드시고 깊은 산속에서 이렇게 모집에 인터넷에 홈페이지에 학교마저 다 만드시니 자랑스럽습니다.
별명: 오진어 오건돌 오미자 오된장 오간장

자유학교 물꼬 개교 4주년
세상의 막힌 물꼬를 트는 열쇠
- 대전 평화의 마을 늙은 전사 권술용 손자 권요한

산 넘고 물 건너 드디어 자유학교물꼬에 왔네
새로운 세게, 동심의 세게
- 최상근 최윤준

이튿날,
몇 차례의 떡국이 끓여져 나왔고
일어나는 대로 먹고들 떠났습니다, 물론 다시 보자 하며.
일일이 인사를 못하였으나
물꼬는 여기 여전히 있을 테고
관심이 끊이지 않는다면 또 걸음들 하실 겝니다,
아니 오시면 또 아니 오시나 부다 할 테고.
상설학교 문연날잔치의 의미가 지금에 와서 그리 클 것도 없어
내년부터는 ‘물꼬인의 날’쯤으로 대신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1989년 한 씨앗을 품고
1993년 몇 사람이 같이 뜻을 더하다가
1994년 여름 처음으로 계자를 떠났더랬습니다.
그 계자가 올 여름이면 일백스물다섯 번째가 되던가요.
짧지 않은 시간, 물꼬의 큰 그늘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상주하는 사람이야 얼마 안 돼도
결국 품앗이일꾼에서부터 그들이 이곳을 지켜냈던 것입니다.
한 해 한차례쯤은 밤을 지새며 같이 놀아볼 만한 까닭 아니겠는지요?

늘 뒷배들이 힘이 들지요.
먹는 것이 다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밥을 내는 행사를 해보면
정말 그 말이 맞다 싶지요.
부엌손들이 고생했습니다.
공동체식구들 역시 큰 일했습니다.
내부인력 몇,
그리고 행사를 치러본 이들 몇으로 잘 치렀습니다.
잔치라는 게 그런 소란스러움이지 뭐,
좀 매끄럽지 않은들 또 어떻겠는가,
늘 모이는 사람들의 너그러움이 잔치 분위기를 만들더라,
그리 위로도 합니다.
(그런데, 역시, 한꺼번에 한 단체에서 많은 수가 결합하는 건
늘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우리’라는 게 강해서 중앙으로 집중하는 건 덜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같은 곳에서 오는 자원봉사활동가들에게 나누어서 오라 하는 거지요.)

누구라도 객이었고 누구라도 주인이었던 잔치였습니다.
사는 일이 늘 고맙다마다요.
“어디서라도 잘 사시라,
우리도 잘 살지니...”


* 김수진님이 다녀가신 뒤 큰 후원을 하셨습니다.
잘 묵어가셨다는 인사이겠습니다.
어디 가서 식구들이 하룻밤 묵어도 그만큼은 든다며
꼭 그렇게 맘을 보태는 분들이 계십니다.
고맙습니다.
가야도 잘 갔지요?
* 아, sbs ‘생방송 출발모닝와이드’ 촬영분은 5월 15일 스승의 날 특집으로 방영될 거라나요. 15분쯤 되는 꼭지랍니다.
* 경찰 추산 ‘200여 명’ 물꼬 추산 300여 명이 함께 했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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