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거친 들녘에 피어난/ 고운 나리꽃의 향기를

나이 서른에 우린/ 기억할 수 있을까

(노래 ‘나이 서른에 우린’ 가운데서)


예당호가 내려다보이는 조각공원 앞 찻집,

줄 선 꽃들 가운데 나리꽃이 높았다.

젊은 날의 꿈을 우리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을까...


예산군청에서 출발, 비 뿌리는 내포를 걸었다; 홍성 당진 서산 예산에 걸쳐 있는.

예산은 가진 게 많다. 수덕사 하나만해도.

극락전 아니어도 거기 얽힌 근현대사 인물전의 유별난 이야깃거리도 큰 매력.

그런데 재미난 사실,

그간 수덕사는 수덕사로만 알았지 그것이 예산 일부라는 생각을 못했다, 추사고택 또한.

수덕사며 추사고택이며 벌써 여러 차례 다녀오고도 말이다.

부분이 강렬하면 전체를 그리 놓치기도 하는.


오랜 가뭄 끝이었다.

남한에서 가장 큰 규모라는 예당호도 바닥을 다 드러낼 만치 말랐는데,

그래서 풀들이 물대신 호수를 채우고 있었는데,

낚시를 위한 배도 좌대도 물이 아니라 땅에 출렁이고 있었는데,

하여 걷는 이를 가로막아도 반가운 비였다.


봉수산 수목원. 조금씩 준비해나가고 있는.

예당호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휴양림을 만들면서 그 일부로 만들어진 공간.

아직 수목원이라는 이름보다 휴양림의 정원에 가깝다는 느낌.

꿩이 좋아하는 덜꿩나무, 잎이 박쥐를 닮은 박쥐나무, 꽃이 병아리 같은 병아리 나무,

막연히 알겠는 계수나무와 회화나무도 가까이 보며 낯을 익히고.

그런데 ‘느린 꼬부랑길’을 걷다가 수목원을 다시 갔더라.

거기 보고 싶다던 미로, 말한 이는 잊었는데 안내를 맡은 이가 기억하고서.

달골 아침뜨樂의 미궁자리랑 견주어도 보고 싶었던.

이곳은 나무로 둘러쳐서 아침뜨樂의 트인 공간과는 다른.


수덕사 아래서 점심을 먹은 뒤엔 내포문화숲길 가운데 한 탐방센터를 들렀다.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벗이 거기 있다.

“11월 동학행사 함께 해요.”

승전목 전투를 되새기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진군 면천면 사기소리와 당진읍 구룡리 사이 좁고 가파른 계곡,

동학군은 그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유일하게 승리했다.

보은이며 정읍이며들의 동학 공부하는 몇 벗도 동행키로 하자.


봉수산.

태풍 난마돌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예보되고 있었지만 비바람은 이미 우리를 에워쌌다.

사는 날에 비와 바람과 햇볕이 함께 하듯 산이라고 다를까.

그 속에도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간다.

장마에도 볕은 뜨고 비바람에도 개는 날이 있으니까, 모진 추위 끝에 기어이 봄 오고 말듯.

짙은 안개 속에서도 산은 틈틈이 길을 열어주었고,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서는 한껏 뿌렸으며,

움직이면 아는 양 비를 멈췄다. 하늘 고마운 줄 이런 순간 사무치게 안다.

안개가 시야를 가려 전체 전경을 보기는 어려웠지만

가끔씩 보여주는 산이 책장을 넘기는 듯한 즐거움을 안겼다.

다 보지 않아도 좋다. 눈을 감고 그려보는 산도 좋다. 산에서는 사실 무엇이건 좋다.

그래서 산길은 굳이 어떤 프로그램을 꾸리지 않아도 그저 걷는 것으로 충분하다.


칠갑산이 가깝다 했다. 봉수산 임존산성 안개 속에서 리사이틀이 있었다,

‘울어 예는 산새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우’는 칠갑산 산마루를 향해 목청껏.

산에서는 뭐든지 허용되는 것만 같다, 누구를 해치지만 않는다면.

산의 품에서 노는 시간은 언제나처럼 위로와 위안으로 걸어가더라.


아, 백제의 미소 길도 어슬렁거렸네.


길을 걸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그곳에 이르기까지 혹은 다시 돌아오기까지 만나는 건

결국 사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왜 아니겠는가.

정성스런 안내가 산이었고, 숲이었다. “한선생님, 고맙습니다!”

지역에 사는 후배가 나와 해미읍성 건너 오래된 집에서 칼국수도 샀다.

“(여기 주인 분들) 부모님 지인들이세요.”

지역이란 그런 거두만.

그래서 뉘 집 아들이면 재채기도 조심스러울.


밤, 열심히 달렸다. 여기는 서울.

네팔에서 손님이 왔다. 커피 관련 문의도 있다하기 선배의 커피상점에서 만났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의 블렌딩이 화제가 되었다던 이 곳.

곧 대엿새 이어질 지리산 숲길 걷기 전 몇 가지 챙길 일이 바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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