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4.해날. 비

조회 수 911 추천 수 0 2018.01.23 07:04:39


밤 10:30 현장의 불을 끄고 나왔다.


흐린 하늘로 연 이른 아침.

어제 들어온 민수샘은 아침 밥상에 간밤에 그린 책장 도면을 놓았다.

16일 시공자를 보낸 뒤로도 물꼬 식구들 중심으로 건축현장은 계속되고 있다.

오늘 우리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작업과정과 동선을 설명하고 각자 일을 나누었다.

이런 모임 한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우리가 작전회의라 부르는) 지난 집짓기 시간,

아무리 현장이 작아도 그렇지,

도면 하나 걸지 않고 일이 진행되었으니,

그 도면 보며 누구라도 제 일을 가늠했더라면 일이 더 순조로왔을 걸,

심지어 그 도면 하나 없음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끼리 갈등도 여러 번이었는 걸,

아쉬웠다.

“그런데, 비 온다는데...”

어제 실내 바닥에 에폭시를 칠한 상태라 안으로 들어가기가 불안했다.

“일단 하다가... 좀 있으면 (굳기가)낫지 싶은데...”

그게 더 번거로울 테지.

“창고동에서 할까?”

막상 창고동으로 들어가니, 공간이야 널찍해서 작업은 가능하겠으나

나중에 목공먼지를 어떻게 다 치워내려고!

조심조심 willing house로 들어가 바닥을 점검하니 굳어있다.

합판을 깔고 서둘러 어제 사온 목재들을 내렸다.

아침 6시부터 내린다던 비이더니

작업 준비가 되자 그제야 내리기 시작했다.

무슨 겨울비가 소낙비처럼 내렸네.


낮밥을 먹을 녘 기락샘과 류옥하다도 들어오다.

오늘 이웃 매곡초에서 어린이놀이터를 파내면서 바닥에서 나온 멀쩡한 깔개를

물꼬에서 실어오기로 한.

운동장에 말고 본관 뒤란으로 깔아 풀도 잡고 깔꿈하게 하고팠던.

그러나 비가 너무 많았고,

오늘 아니면 우리에게 더는 시간이 없다.

1월 1일 바르셀로나행 탑승을 앞두고 걸음이 재고,

그 학교에서도 폐기물처리를 해얄 테고.

기락샘과 류옥하다가 아무래도 오늘 일 아니라며 돌아가면서 그곳을 들여다보니

물 많이 먹어 너무 무겁더라고.

그리고, 정말 유용할지, 외려 짐 되지는 않을지 다시 잘 생각해보라는.

결국 포기하기로 했다.

(저간의 사정을 매곡초에 알렸더니,

5월까지만 처리하면 되니 물꼬 사정 봐서 실어갈 수 있음 그리하란다.

무산샘이 이후를 맡기로.)


책장을 짰다.

북쪽 벽면에 전면, 서쪽 벽면에도 창을 빼고 거의 전면.

무산샘이 재단하고, 내가 본드 붙이고 피스 박아 조립하면, 셋이서 같이 세우고,

그러는 중에 민수샘은 앞서서 다음 작업을 준비하고.

품삯을 받고 일하러 들어온 사람들이라면 낮 5시 칼 같이 끝날 일,

이곳에선 저녁을 먹고 다시 모여 작업을 이어간다.


서울에서는 품앗이샘들이 모였다. 아리샘이 문자로 소식을 전해왔다.

‘...

이야기 나누는 내내, 차 마시고 저녁 먹는 내내 선생님 생각했어요.

많이 그립고

추운 날씨에 혼자서 공사한다고 정신없고 피곤하실 것 같아

많이 미안합니다.

항상 말 뿐이어서 더 미안하고요.

나한테는 너무나 소중한 옥샘... 사랑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말 뿐이라니. 물꼬의 적잖은 살림은 일부 그의 힘으로 꾸려지고 있다, 아주 긴 시간을.

자주 미안하다, 손발도 모자라 고생해서 번 돈까지 보태는, 그것도 많이.

게다 급하면 만만하니, 든든하니 그에게 연락한다.

오죽했으면 아리샘 결혼 하지 마라고까지.

“부주(부조)를 어떻게 해, 얼마를 하겠어? 그냥 주욱 결혼 안 하는 걸로!”

고단한 날들을 지날 때도 내 뒤에 당신들 있다 하며 그 시간을 건너나니.


비 내려 질퍽였던 땅이 밤이 되자 단단해졌다.

밤 10:30 현장에서 햇발동으로 돌아오면서,

마음을 내고 기꺼이 시간을 내고 손발을 내고,

사람들을 이리 움직이게 하는 힘이 뭘까를 칠흑 앞에서 또 생각했다.

2천년이나 전에 예수가 전한 복음(이게 기쁜 소식이란 뜻이잖아)이

아직 세상에 닿지 않았는 줄 알았는데,

물꼬에는 퍼지고 퍼지고 퍼져 살고 있었더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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