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계실 테지요. 그렇다면 다행할. 저도 평안합니다.


바르셀로나는 썸머타임이 시작되어(3월 마지막 주 해날 자정~10월 마지막 주 해날 자정)

한국보다 8시간 늦던 시간이 7시간으로 당겨졌군요.

며칠 도시가 텅 비었습니다, 평소라고 서울만큼 붐비지야 않지만.

성 금요일인 3월 30일부터 4월 2일 부활절 월요일까지(성 목요일이 있는 지역도 있음) 

늘어진 오후 긴 햇살이 내려앉는 시간처럼 도시가 휑해서 낯설었습니다,

가족들을 만나러 갔거나 가족들과 먼 나들이를 갔거나.

하지만 그런 때에도 남겨진 사람들이 있고, 

밖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길모퉁이 작은 가게들이 문을 열기도 했으며

주인이 비운 자리를 차지하는 객처럼 명소에는 관광객들(주로 타국인)이 여전히 찾아들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말과 말 사이 긴 공백처럼 도로에는 차가 드문드문.

그리고 도시는 오늘 다시 돌아온 사람들로 활기찼습니다.


사람을 만날 일도 일을 보러 가는 것도

이제는 이곳 흐름에 좀 익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상점들은 09:30~13:30, 16:30~20:00 에 열려있습니다.

큰 쇼핑센터나 백화점이야 대략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께까지 하지만.

은행은 낮 2시면 문을 내리지요.

아침은 대개 8시에서 10시 사이 먹고

점심은 주로들 식당에서 낮 1시부터 3시 30분 정도까지,

저녁은 8시 30분에서 11시까지가 흔합니다.

그 사이 가볍게 먹는 것도 있으니 다섯 끼라는 얘기가 맞지요.

따빠스라는 다양한 종류의 작은 접시요리들이 기본적으로 널려있는 것도 그 까닭이지 않을지.

다섯 끼를 다 무겁게 먹을 수야.


외식을 할 일이 드물지만

가끔 올해 100주년이 되는 작은 빵집으로 여러 블록을 걸어갑니다,

좁고 허름하고 간판조차 별 눈에 뜨지 않는, 그렇지만 줄은 늘상 긴.

사실 굳이 그곳이 목적지라기보다 주에 두 차례 일을 보러 가는 길에 있는.

어느 도시를 가나 관광명소보다 그런 곳에 머물 때 비로소 그 도시에 들어선 것 같은.

혼자 이사도 하고 물꼬도 가끔 들여다보는 스무 살 아들이랑 텔레그램으로 주고받는 연락에

어제는 길에서 찍은 사진을 몇 장 보냈더니

뭔가 도시가 다 관광지 같다더군요.

유럽의 도시들이 거개들 그렇지요.

그런데 누구는 그 오래된 건물들을 깊숙하고 두터운 이야기처럼 읽는 반면

또 누구는 사람은 현재인데 건물들이 과거이니 걷고 있으면 좀 이상하다 하기도.

어째도 다르지 않은 건 이곳에서도 사람들이 먹고 자고 당면한 일을 한다는 것.


한국의 미투운동이 사람들과 두어 차례 입에 올려지기도 했고,

한국에서 온 연락 속에 건드려지기도 하였습니다.

미투의 분위기에 우울해진 한 벗에게 몇 자라기에는 긴 문자를 보냈군요.

보내고도 아쉬워 덧붙이고 또 덧붙이면서.

‘미투의 핵심은 우리가 성폭력만이 아니라

얼마나 폭력에 무감각해 있었던가 하는 반성이어야 할 거라 생각함.’

‘미투의 본질은 결국 타자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닐지.

예컨대 남성의 경우 특히 한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에 대해 헤아려 봐라, 뭐 그런.

작금에 미투가 성대결로 가는 양상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음.’

‘결국, 타자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것이 폭력에 대한 감수성도 키워낼 것.

사람이 배운다는 것도 종국에는 타자를 이해하려는 일이 아닐지.

그 “사람의 마음”이 없다면 배우는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일베 사이트 폐쇄 청원이 20만을 넘었다는 소식도

마음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청와대는 불법성 여부를 따져보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할 거라는 정도의 원론을 내놨다고.

지나친 혐오에 대한 기사를 통해 일베를 알지요.

5.18 당시 도청 앞에 쌓인 운구 사진에 ‘홍어택배 포장완료’라고 쓴 문구를 봤고,

단원고 교복을 입고 어묵을 든 사진에 ‘친구 맛있다’라는 제목을 달았다는 기사를 봤고,

세월호 관련 단식투쟁 현장 앞에서 폭식투쟁을 한 사진을 보았습니다.

놀랐고 무서웠던 건 5.18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역사관 때문도 아니었고,

세월호 진상에 대한 다른 주장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는 게 좀 더 솔직한 심정이었군요.)

무엇이든 ‘표현’을 못할 게 뭐있을까요.

제 생각대로 말하는 거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사는 거지요.

문제라면 부당한 방식으로 타인의 자유와 권리가 제약되는가를 따지면 될 테고,

사이트 안에서 자정력이 있다면 다행하지만

안에서 출렁이던 것이 넘쳐 흘러나와 타인을 해하면 법률로 다루면 될 테지요.

그런데,


뭘 몰라서 그렇겠지요, 알고서야 어디 그럴까요.

저간의 사정이 어떻고 맥락이 어째도

그래도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을 테고,

듣는 마음이란 게 주관적일 테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객관 뭐 그런 게 있지 않을지.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우리는 인간 일반으로 통일 되어 있고,

사람으로 해서는 안 될 짓이란 건 분명 있을 겝니다.

그래요, 아무렴 몰라서 그랬겠지요, 우리도 모르고 하는 잘못이 또한 얼마나 많을지.


그러니 공부해야지 싶데요, 이왕이면 같이. 그리고 나눠야지요. 성찰 없는 책읽기 같은 거 말고.

배움의 첫 기능(機能)도 결국 사람노릇하자는 것 아닌지.

다른 가지 다 잘라내고 퍽 높인 목소리로 말하자면,

그런 것에 기여하지 않는 공부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요.

그것이 배움의 아주 '소극적인' 이유일지도 모르지만.

공부해야 한다는 말은 결국 사유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일 것.

뭐 늘 하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로 자주 끝나던 어릴 적 일기를 생각하는 밤이었더랍니다.


4월 9일 달날 저녁부터 주에 한 차례 명상수행 모임에 합류합니다.

봄이 왔다, 로 쓰기로 하지요.

이곳에도 요가센터며 명상센터들이 간혹 있기는 한데,

이건 그냥 알음알음 얼마쯤의 현지인들이 모이는 자리입니다,

시각장애인인 올가라는 젊은 여성이 안내를 하는데,

함께 하자고 그가 먼저 제안해주었고

명상이란 것이 굳이 말의 영역 안에 있는 건 아니라는 데 서로 동의한 바

언어의 불편함을 털고 가기로 하였지요.

앓던 몸이 뻣뻣하다 못해 자꾸 고체와 되어가는 것만 같은 징조에도 도움일.

올라가는 기온과 함께 말이지요.

국어 구사능력이 초등생 수준으로 떨어지는 거야 한국어로 말할 기회가 늘면 나아질 테고,

들고 온 집필 건도 갚아야 할 빚이니 어떻게든 해낼 테지만,

털어지지 않는 손가락 통증과 자주 온몸으로 앓는 근육통에서 좀 벗어날 수도 있을.


아, 영화 이야기도 하나. 뒤늦게야 봤지만.

2016 한국영화 걸작으로 꼽기로 했습니다; 윤가은의 <우리들>.

그 긴 시간을 내내 눈을 붙드는 연출과 각본이라니.

잘 만든 예술작품은 적당한 온도의 물에서 유영하는 것 같은 위안과 안도를 줍니다,

설혹 그 내용이 참담할 때조차도.

가해자로든 피해자로든 어린 날의 일부였을 우리들의 시절을 불러내주고,

잔인한 패거리 문화와 우리 사회 계급(계층이 아니라!)을 투영한 아이들의 삶이 안타깝지만

그런 속에서도 빛나는 주인공과 남동생의 대화가 햇볕마냥 다사롭게 쏟아집니다.

카메라 앵글이 낮은데 아이들 높이에서 맞춰져 있기 때문.

그토록 자연스런 아이들의 연기(즉흥극을 통해 대사를 만들고 찍었다는)는

그런 연기가 가능하게 아이들과 소통했을 감독을 신뢰하게 만들지요.

피구시합을 하기 전 패를 나누면서 아이들이 이 편으로 저 편으로 하나둘 불려 가는데,

마지막까지 이름이 불리지 못하는 초등생 선이 주인공.(이름도 ‘선’입니다.)

방학동안 이사 온 한 친구와 행복한 여름을 보내지만

개학 뒤 여러 친구들 속에서 관계가 비틀리는데...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요, 둘이 있을 때야 좋지만 넓혀진 관계는 또 다른. 결혼처럼.

피해자와 피해자의 대결이라는 전선이

마치 약자들이 약자들을 향한 가해자가 되도록 만들고야 마는 이 시대를 읽게도 합니다.

그 속에서도 주인공 선이 건강함을 견지하는 것은,

그 뒤 건강한 엄마가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겝니다.

이 영화 최고 백미는 유치원생 남동생의 대사.

맨날 친구 연우한테 꼬집히면서도 그 친구랑 노는 동생에게 선이 묻지요,

왜 만날 맞으면서도 같이 노냐고.

“너 바보야? 왜 연우랑 놀아? 너도 때렸어야지?”

“오늘은 나도 연우 때렸어.” “그래서?”

“그래서? 놀았어!” “뭐어?”

“연우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연우가 때리고, 그럼 언제 놀아? 나 놀고 싶은데!”

우리 어른들이 서로 끝까지 때리고 있을 때

돌아보면 아이들은 어느새 같이 놀고 있는 풍경을 자주  마주하지요.

믿음이 가는 감독을 만난 큰 기쁨!


한국에는 봄 비 내리고 있다는 군요.

학교아저씨 편에 아래 학교에서는 흙집 벽면 터진 수도를 고쳤다는 소식이 닿았고,

위 달골을 돌보는 무열샘은

터진 수도계량기며 이번 주말에 들러 손을 보겠다 하고,

측면 지원팀(?) 장순샘은 주말 내 이웃 초등에서 실어오기로 한 매트들을 수령한다는 전갈입니다.

5월에는 ‘어른의 학교’가 있을 것이니

4월 중순께는 알림글도 누리집에 오를 테지요.


마음에도 봄꽃 흐드러지시기로.

안녕.


* 물꼬를 한결같이 지켜주시는 논두렁 분들, 샘들, 아이들, 이웃들, 모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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