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1.쇠날. 맑음

조회 수 501 추천 수 0 2019.11.27 10:23:29


이웃 하나 건너와 아침밥상에 앉았다.

시래기죽을 끓여냈다.

뜨끈한 밥이 힘을 내게 할 계절이 시작되었다.


재작년부터 이 시월까지 쌓인 빈병들이 바깥해우소 뒤란 창고를 차지하고 있었다.

소주병 300개, 맥주병 120개.

하얀샘과 학교아저씨가 실어나가서 식료품으로 바꿔왔다.


오늘은 수업도 없고 별다른 일정도 없다.

부엌을 좀 치워낸다.

양념통을 채우고, 양념선반과 양념바구니도 털고 닦고,

가마솥방 곳간도 나가서 찬장을 정리한다.

묵은 것들을 내서 개밥냄비에 넣고 끓이고.

싱크대 아래와 그 너머 구석진 곳까지 막대기를 쥐고 길게 손을 뻗어 닦아낸다.

허리가 삐긋, 손목도 시큰.

표도 안 나는 이 일들이라니...

그런데, 나는 안다, 청소하는 나는 안다. 적어도 자신은 자기가 한 일을 알지 않는가.

그래서 표 나는 일이 된다. 그러니 헛일이 아닌 거다!


달골 사이집에서는,

여기 일이란 게 인부가 들어와 일을 맡아 집중적으로 그 일을 하는 일이 드무니,

짬짬이 하는 일이라,

사이집 정화조 일이 이어진다.

흙을 다시 파내고 관을 재배치하고 다시 흙을 덮고 시멘트로 마감하고,

그 자리를 정리하는 것으로 끝인데 또 무슨 일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또 일이 있더라.

뭔가가 또 삐걱거린 거다.

비로소 뚜껑을 중심으로 콘크리트를 치고 손 털다.

오늘도 날이 어두워서야 달골을 나왔네.


(노동으로) 사람 같이 살 수 있어 고맙다,

내 복이라, (다른 존재에 대한) 연민이 있어, 손발(노동할)이 있어!

노동으로 존재가 풍요롭다.

물꼬의 삶은 밀도가 높다.

단순히 열심히가 아니라 어떤 열심인가,

그저 행복한 게 아니라 어떤 행복인가,

그 열심과 그 행복이 어떤 가치를 낳는가 물을 수 있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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