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18.불날. 갬

조회 수 454 추천 수 0 2020.03.18 23:59:46


 

살짝 또 눈 쌓인 새벽이었네.

달골 주차장 깔끄막을 쓸다.

아침햇살에 길에 있는 눈은 금세 사라지고.

 

아침 8시 달골에 굴착기 소리가 컸다.

햇살 퍼졌어야 습이네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데,

사람들이 예닐곱 모여 일을 하는 게 달골 길 저쪽 가로 건너다 보였다.

그랬구나, 어제 달골 길을 쓸던 이들이 그래서였구나,

산판을 시작하려나 싶었더니 저 작업을 하려...

10시 운구차가 올라왔다.

저쪽 언덕배기 묵정밭에 그의 아내를 묻고 몇 해,

엊그제 할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내를 보살피고 십 수년,

외려 그때 더 정정했던 그니는 혼자 살며 급속도로 늙어갔다.

친절했던 그니가 퉁명스러워진 것도 그때.

늙어가며 그리 변하는 한 까닭은

안 보이고 안 들려서 더 그럴 수도 있었을 것.

멧골에서 또 한 사람이 강 건너 저승으로 갔네...

 

눈으로 아주 길이 막힌 것까지는 아닌데,

25일까지 보내야 할 새 원고 초안을 물고 한 주 동안 한 발짝도 나가지 않겠다 했더니

보급투쟁한다고, 마침 물꼬랑 멀지 않은 곳에 출장을 가던 논두렁 한 분 다녀가시다.

운구 행렬로 길이 막혀 계곡에 차를 세우고 걸어올라 왔다지.

나가는 차로 잠시 마을을 빠져나갔다 오다.

며칠 떠나지 않았던 책상 앞, 어깨깨나 긴장했다.

이런 날은 따순 물에 몸을 담그면 얼마나 좋은가.

산 너머 읍내 목욕탕을 들렀는데,

거의 다 저녁이어서 그런 줄 알았더니 요새 통 사람이 없다고.

문을 닫는다는 저녁 8시가 한 시간 남은 때였다.

이제 안에 아무도 없어요? 무서운데...”

한 사람 있어요.”

코로나19는 벌써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나 보다,

해가지자마자 일찍 문을 닫은 가게들이 많았고,

이 읍내의 가장 번화한 길에도 사람이 없었다.

이단이라 알려진 대구의 한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왔고,

그가 수퍼전파자가 되어 집단감염이 현실화 되는 것 아닌가 우려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혼자 등을 밀고 있는데,

머리가 짧은 자그마한 할머니 한 분이 내 등을 대란다.

, 서로 밀어주자는 말씀인 가보다,

시골이라도 요새 이런 거 잘 없다던데...

아니요, 아니요, 고만요. 딱 손이 안 닿는 부분만요.”

그런데도 여기저기 시원하게 밀어주시더니,

어라, 돌아서서 해드리려는데 당신은 날마다 오니 안 해도 된다나.

억지로 비누칠 해드리고 마사지 조금.

그때 중국인 여자 둘이 들어와 청소를 하는데

(여기 주인이 중국인이라지일하는 여자 둘도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이들.

 지역상권들에도 이렇게 중국인들이 는다.)

그 할머니, “여긴 내가 할게.” 하시며

거울을 비눗물로 닦고, 여기저기 벽도 닦으시네.

! 감동이더라. 어른이 달래 어른인가 싶은.

내가 다 고마웠네.

'너에게 다가가는 일'이란 게 이런 거 아니겠는지.

물꼬에서, 교육에서, 구현하려는 마음도 그런 거 아니겠는지.

 

곧 나올 책의 추천사 셋 가운데 한 분은 유명인인데

요 며칠새 언론에 오르내릴 만큼 복잡한 일에 연루되었다.

사실이야 모른다.

그나저나 인쇄를 다 한 뒤라면 얼마나 난감했을 것인가.

출판사(아, 이 인연들도 아침뜨락 측백을 분양하셨네!)와 의논하여 추천사 부탁을 거두게 되었다.

그간 들인 힘을 생각하자면 사는 일이 억울할 때가 얼마나 잦을까.

다른 분께 부탁하거나 추천사 둘로 마무리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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