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17.나무날. 가끔 구름

조회 수 364 추천 수 0 2020.10.10 01:10:35


 

화창하지는 않으나 비는 멎었다.

날씨 예보를 보니 비가 없단다.

바람이 찬찬히 불었다.

여름을 지난 이불을 빨아 널기도 좋겠다.

두터운 이불은 진즉 꺼내졌으나 들어가야 할 이불들이 빨래를 기다리고 있은 지 한참.

빨랫줄을 감당할 만큼만 빤다.

 

빨래를 널고 너는 사이, 그러니까 빨래가 돌아갈 동안

지난주, 더러는 더 먼, 들어온 문자들에 답을 한다.

마음이 더 머물거나 말이 길어서 바로 답이 되지 못하고 늦어진 문자.

지난 학기 같이 일했던 동료들 몇이 비와 바람 거칠었던 이곳의 여러 날들을 걱정해주었는데,

그 역시.

이제야 잠깐 답문해요. 이 멧골에 들어와 사는 일이 그래요. 세상과 속도가 다른.

(...)

세상이 어째도 우리는 늘 자신의 하루를 모셔야 하지요.

여긴 조용하게, 그러나 꾸준히 여러 일정들이 이어지고 있답니다.

수행을 하거나 쉬어가거나 상담을 오거나 ,어른이고 아이고 교육일정에 함께하거나.

고마웠고, 또 오래 고마울 거여요, 샘이!’

 

볕 아래 틈틈이 풀을 뽑는다.

어차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다 못하는 일,

걸어가는 길에서는 보이는, 손에 닿는 씨앗 빼기.

그 씨앗 하나가 수천 수백 풀로 되살아날 것이므로.

우선해야 할 곳, 먼저 눈에 드는 곳부터.

사이집에서는 3,4,5번 편백나무 앞 무더기 풀,

햇발동 앞에서는 현관 앞 민트와 바위솔 사이의 풀들.

하얀샘이 들어와 아침뜨락의 광나무 가지를 손질하고

갸우뚱하던 한 그루를 다시 바로 세우는 동안

밥못에 올라가 부유물을 쳤네.

긴 장대로는 퍽 힘이 들었던 일이었는데,

낚싯대 끝에 양파망을 달아놓으니 수월하였다.

이런 순간마다 하는 생각; 도구가 일의 다라.

미궁에 멧돼지 뒤집어놓은 자리들 밟아주고

역시 씨 맺힌 풀들을 뽑았더라.

늦게 나온 것들도 서둘러 씨부터 맺느라 땅바닥에 붙어서 알처럼 바글바글 나온 씨앗들.

삼태기에 한가득 담아 언덕 저 너머로 휘 보낸다.

 

아쿠, 고장 난 가스온수기를 빼내고 얼마 전 전기온수기를 간 된장집에 들렀다가

욕실이며 거실을 보고 지저분함에 깜짝 놀라서는

대야며 바가지며 칫솔 통이며 솔로 박박 문질렀는데

너무 오래 낀 때라 쉬 벗겨지질 않아 학교 부엌까지 가지고 내려와

표백제를 좀 쓰기도 하였네.

공간이 넓어 눈과 손이 닿지 않은 곳이 그리 많은 이곳이라.

먼지 쌓인 욕실 안 선반은...  된장집을 나오며 학교아저씨한테 일렀다.

이런 건 이곳을 쓰는 사람이 좀 하시기로요.”

 

반려견에 대해 쓴, 가볍게 읽던 책 하나를 덮는다.

친절한 말투였다. 글쓴이가 따스한 성품을 지닌 줄도 알겠더라.

반려견을 대하는 일이

아이들을 대하는 일이고 사람을 대하는 일, 종국에는 다른 존재에 대한 예절이었다.

보호자란 말을 유심히 보게 되더라;

한 생명을 보호하고 그들과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이.

책을 읽는 과정이 그들의 본능과 욕구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걷고 냄새 맡고 마킹하고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고,

바깥에서 소변보고 싶어 하고 가족이랑 있고 싶어 하는.

왜 개를 훈련시켜야 하는가, 교육을 시켜야지. 그렇다!

내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건 부모님과 반려견 뿐이라나.

대형견에 대한 편견을 다루는 대목에서였을 텐데,

주변의 시선이야 쉽게 바꿀 수 없지만 자신의 강아지를 믿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문장 앞에서 아이들을 또 생각했네.

함부로 대하는 것도 문제지만 왕으로 대접할 것도 아니다. 가족으로 대하라는 말에 공감이 컸다.

새로운 것이 두려움이 아니라 설렘이라는 것도 건강한 관계 안에서 알아가는 일.

결국 안정적인 마음가짐과 다정함이 반려견교육에서의 리더쉽이라는.

언제든 반려견이 제 스스로 선택해서 드나들 수 있는 주거환경이어야 했네.

복종훈련이 아니라 예절교육이어야 할 것.

그들의 생태와 본능을 존중하면 그들이 자존감도 높아진다고;

강한 자존감은 외부 자극으로부터 저항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사람인들!

 

10월 셋째 주에 있는 제도학교 지원수업은

장애이해교육과 인권교육이 주제.

각 학년마다 들어가야 하니 모두 12시간이 필요한데,

어찌 구성할까, 재료를 무엇으로 할까를 그 학교의 맡은 이와 논의 중.

 

9월과 10월 전체 일정을 이제야 누리집에 안내하며 마지막에 덧붙였나니;

늘 그러했듯 우리 모두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을 겝니다.

언제나 지금이 존재의 최선이지 않았는지.

부디 우리 강건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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