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 2.물날. 해 / 그대에게

조회 수 326 추천 수 0 2021.01.08 23:32:38


 

해건지기를 끝내고 드릴을 들고 나서다.

창고동 북쪽 문 처마에 만든 도기 풍경을 하나 달았다.

풍경을 셋 만들어 놓고 매달 곳을 재보고 있었더랬다.

작업실로 옮겨가다.

작은 문짝을 하나 만드는데, 재단하고 칠도 했는데,

문 크기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리다.

기둥까지 가리도록 앞쪽 전체를 다 문으로 하리라 생각했더랬는데,

그러고 나니 문짝 두께가 상판 면으로 삐져나오게 되었더란 말이지.

아쿠! 이제 와서라도 알아서 다행. 고치면 되지.

기둥 안쪽으로, 그리고 선반 높이만큼만 여닫이 둘을 달려니

일이 좀 늘어나긴 했지만 문도 가벼워지고 산뜻해지겠다.

다시 자르고, 사포질에, 페인트칠도 또.

얼지 않도록 햇발동 보일러실로 옮겨 신문지를 깔고 긴 막대에 걸쳐 말려두다.

 

, 소름 돋을 만했다!

오랫동안 물꼬의 논두렁인 선배를 여러 해 얼굴 보지 못하고 있었으나

요양병원에 계신 당신 어머니는 가끔 뵈러 갔다.

어머니는 코로나19를 지나며 선배의 누이네로 거처를 옮기셨다 했고,

오늘 그 누님이랑 소식이 닿았네.

마침 오는 해날에 여동생과 영동 어디께 땅을 보러 어머니도 동행해서 오신다했다.

조동리 휴양림 어디라 하길래 물꼬 주소를 보냈다.

-조동리 휴양림 쪽 오시면 산 너머에 저희 학교가 있어요.

그런데 해날 오후면, 김장을 끝낸 뒤 남도의 어르신을 모셔다 드려야 하는.

하여 꼭 다른 날에라도 뵈었으면 한다 전하였네.

문자는 그렇게 끝나는가 했는데,

- 우리가 갈 곳도 상촌면 대해리로 가네요.

  만나볼 수 있으면 엄~청 좋겠지만... 다음 기회에 만나요.

- 아니! 대해리요?

  여기까지 오시는데 어떻게든 상황을 좀 조율해봐야지요! 오시는 곳 주소가?

세상에! 세상천지에 대해리, 그것도 물꼬에서 겨우 400m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땅이었다.

소름이 다 돋았더라니.

어떻게든 여기서 보기로.

어르신을 일찍 모셔다 드리고 선걸음에 돌아오면 낮 2시 안짝으로 돌아오겄다.

그때 뵙자 하였네.

물꼬는 늪지대 같다고들 하지, 모든 인연들이 모이게 된다고!

 

겨울계자 공지가 나가자마자 품앗이 샘 둘이 바로 신청을 하다.

요 몇 해는 샘들이 먼저 자리를 채운 뒤 아이들이 신청하는 양상.

지난여름에 일찍 마감되었던 계자 샘들 자리,

하여 이번겨울에는 날마다 물꼬 누리집을 드나들고 있었더라지.

고맙다. 계절을 건너 여전히 식지 않은 마음으로 오시었기.

청계도 신청이 들어오기 시작.

한 품앗이샘의 긴 글월도 받는다.

때로 우리는 달팽이가 된다.

안으로 안으로 침잠하는 시간이 필요한.

나쁘게는 잠수라고도 표현하는.

그런데도 그저 홀로 말없이 문을 닫아거는 게 아니라

1년만 그리 지내보겠노라 소식 주었다. 고맙다.

늘 물꼬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힘들고 지칠 때면 물꼬 사진첩이며 글이며 계자 후기며 다시 보고,

돌아가는 길에 먼저 보내준 고생했다 애쓰셨다 보내준 동료들의 글을 보며

그런 시간을 이겼다지.

물꼬는 제게 있어서 생명과도 같은 존재라서 지속적인 후원도 잊지 않겠다는 말로 맺은 글이었다.

그의 글은 늘 찡하다.

깊은 사랑을 담아 그대에게 몇 자.

 

(...)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가장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적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제일 먼저 한 일이

새벽마다 마당을 쓰는 일이었다지.

지옥은 일상이 무너지고 희미해질 때 오는 것.

한 번 자신을 세운 승리는 그 다음 승리를 불러오고

스스로를 이겨내는 시간이 그렇게 쌓이면 전진할 수 있을 것임.

물꼬에서 아침에 싹 하고 일어나 수행하고 노동하는 일상을 견지하는 것도

바로 그와 같은 게 아니던지.

단단한 일상이 결국 삶을 세워낸다는.

내일 아침도 나는 스미는 게으름을 밀고 싹 하고 일어나 수행으로 시작할 것이라.

더구나 내일은 수능, 윤호며 물꼬 인연들도 그 시험 앞에 있을 것이니

기도하는 아침이기도 하리.

나는... 내가 좋은 가치관으로 날마다 노동하며 하루 하루를 건강하게 모시는 일이

다른 이들을 또한 돕는 거라고 믿음.

그리 살아가고 있겠네.

내가 잘 사는 것이 그대에게 힘일,

그대가 잘 살아주는 것이 내게 힘일!


(...)

자신을 위한 상자를 하나 만드시게나.

거기 기분 좋아지는 것들을 넣어두고 꺼내시게.

물꼬 사진첩도 그런 하나일.

일단 기분을 좋게 하고

한 가지를 어떻게든 이겨내고

그런 승리들이 쌓이면 우린 보다 괜찮아질 것임.

안 괜찮으면 또 어떠리.

이미 여기까지 걸어온 나, 우리 자신, 기특하고 고맙잖아.

조금 더 걸어보세.

그대를 사랑하는 이가 있지 않은지.

내가 그대에게 쓰일 일이 있다면 천리를 마다않고 달려가리다.

 

그저 건강함을, 무사함을 종종 알려주시라.

보는 날이 가깝길.

 

마감 하나 할 글을 이리 미루고 있다.

오늘도 글은 안 되고,

학교를 내려가지도 않고 달골 책상 앞에서 보냈건만.

김장 준비도 해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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