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가르고,

5인 이상 집합금지라는 행정명령이 있지만 사적모임이 아니라는 까닭을 앞세워

이 겨울에도 지난여름처럼 일정이 이어진다.

청계 여는 날.

서울에서 사람들이 온다고, 한 주 자가격리도 했던 한 가정의 걱정이 커

한 명은 결국 오지 않기로.

어제 바삐 문자 몇 줄 보냈던 터이기도 하다.

혹 내일 일정 직전에 취소하셔도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다마다요.

그런 경우 환불도 바로 처리할 거구요.

5인 이상 집합금지 행정명령에 준해 9학년 3명과 진행자 1,

그리하여 모두 4인으로 진행한다던 일정은

9학년 둘에 품앗이샘 하나, 그리고 안내자로 정리가 되었다.

 

혼자 살아도 한 살림, 두 사람만 와도 행사는 행사,

일정을 시작하기 전 해야 할 일들 목록을 본다.

아이들을 맞자면 오는 걸음이 수월하길 바라는 절부터.

햇발동에 남았던 청소를 마저하고, 난방을 다시 확인하고,

아침뜨락을 걸으며 아이들과 걸을 길에 걸리는 게 없는지 찬찬히 돌아보았다.

정오를 지나며 버스가 들어왔다.

아이들이 내리자

제습이와 가습이들이 우리 식구인 줄 먼저 알고 벌써 꼬리를 흔들기 시작하며 짖더라.

기특한 것들, 장한 것들.

 

손 소독부터. 체온을 재고,

그리고 약사인 사미자샘이 여원이 편에 보내온(때때마다 그러시는)

면역력 증진 약들부터 먹었네.

그런 거 하나라도 보다 더 우리의 안전에 기여할까 하고 보내주셨을.

마치 코로나 면역제라도 되는 양 든든해졌던.

 

밥상을 물리고 물꼬 한 바퀴.

류옥하다 어릴 적처럼 새끼일꾼이 물꼬 투어를 진행해도 좋으리.

그 아이 여덟 살 아홉 살 때부터 물꼬에 방문자가 있으면 그들을 안내했더랬다.

처음엔 엄마가 밥을 준비할 때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시작한 일이

나중에는 정례화 된.

아이가 자라 대처로 나간 이후 이제 내 일로 여겨왔던.

미리 밥상 준비를 해두고 사람들과 한 바퀴를 도는.

하여 건호와 여원이는 이제 듣는 자로서보다 말하는 자로

공간들을 걸으며 내가 안내자가 전하는 물꼬 이야기를 그렇게 듣고 있었다.

이제 그대들이 사람들이 오면 안내하시라.”

뭔가 한 세대가 또 지나는 느낌이었네.

일고여덟 살 무렵부터 물꼬를 드나들던 아이들이다.

처음 왔던 이후로 계절마다 거의 빠진 적이 없던.

심지어 건호는 계자 앞뒤로도 물꼬에 여러 날을 몇 차례 머물기도 했던.

그러니까 물꼬 세례를 담뿍 받았던 아이들.

게다 얼마나 잘 자랐는지 표본이 되어주는 그들이라 할 만한.

저리 건강한 사람으로 살아주는 데 물꼬도 한 귀퉁이 거들었다 싶으면

내가 한 일이 그리 있는 것도 아니건만 뿌듯해지는.

 

차를 달여 마시고 일을 시작했다.

안에 면장갑을, 이어 고무장갑을 끼고

난로 위 주전자며 대야며 수세미며 들고 나가다.

나무 그네를 닦는다.

지난여름의 긴 장마는 곳곳에 흔적을 남겼던.

하얀 그네는 더 선명하게 멀리서도 거기 곰팡이 있노라 말하고 있었더랬다.

얼마 전 대문 앞 철판 안내판의 곰팡이를 닦으며

이어서 하자 하고 여러 날이 또 그냥 흘렀던.

마음에 두었던 일을 그리 사람이 모이면 하게도 되는.

겨울 청계는 쌓인 연탄을 깨는 게 오랫동안 일 하나이기도 하였는데,

학교아저씨한테 그것 만큼은 제발 쌓아두지 말라 단단히 이르고

나부터 틈만 나면 깨고 있는 연탄이었더라.

같이 일을 한다는 건 서로의 관계거리도 짧게 만든다.

오고 가는 숱한 이야기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를 확장케 하는.

설렁설렁하지 않고 구성원들이 다 마음을 내서 움직이면

근육처럼 마음이 두터워지기도.

무엇보다 일은 일이 되게 해야지.

일이 되고 있었다. 고마웠다.

내 일을 또 이리 하나 덜어들 주시네!”

여원이는 먼저 신청했던 한 그룹여행으로 오지 못했던 계자를 말하며

그 여행이 남긴 것 하나가 물꼬에 뼈를 묻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던가.

가끔 나가보면 집 귀한 줄 아는 그런 거.

떠나보면 그렇게 물꼬 좋다 말하는 아이들이 자주 있었다. 고마웠다.

 

김치가 시원하네요!”

넉살 좋은 건호.

시원한 맛을 안단 말이지.

밥상을 물리고 달골을 걸어 오르다.

사람이라야 달랑 넷.

멧골 어둔 밤길을 조용히, 즐거이 걸을만한 숫자였네.

걷기가 또 중요한 물꼬 일정 하나라. 밤길도, 새벽길도, 아침뜨락도.

눈은 어둠에 익어져 대낮같이들 걷고 있었네.

 

달골 햇발동 앞을 지나며 기숙사를 지키는 은동이 금동이 끝동이에게 인사하고,

주목 나무 하나에서 빛나는 안개등을 지나다.

거실에 들어서자 하다샘이 마련해둔 성탄 장식이 맞았네.

이런 작은 거 하나도 우리를 퍽 풍요롭게 하는 물꼬라.

생이 그렇게 소소하게 기쁨들로 채워지는 줄 아는.

 

실타래. 우리들이 숙제검사라고도 부르는.

준비해 온 자기 이야기이건 책이건 나누는.

애나 어른이나 삶의 공통된 고민들이 있고,

남자나 여자나 또한 공유하는 생각들이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닿고 세계가 넓혀지고,

위로를 건네고 위안을 얻는.

따뜻했다.


달빛명상.

딱 달이 떠 준.

한밤 숲에 있는 우리들의 스웨트 로지로 가다.

수우 족이나 나바호 족을 비롯한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알래스카 이뉴잇에겐

자신의 영혼과 만나고 싶은 이들이 산을 방황하는 전통이 있었다.

비전 퀘스트의 종착지는 스웨트 로지(버드나무로 이은 오두막)였고

방랑자는 이곳에서 자신을 정화시켰다.

침묵의 동그라미로 섰을 때

머리 위로 아주 아주 커다랗고 하얀 달무리가 우리를 포함시키며 떠 있었다.

만트라를 읊조렸네.

차지 않은 날도 우리를 도왔다.

 

시험을 끝내고 온 하다샘이 먼저 건너가고

하하, 셋만 남아 노래를 불렀더라, 물꼬 노래집 <메아리>를 안고.

세상에! 셋으로도 그리 신명나게 꽉 차게 불러지는 노래라니.

계절학교인 계자에서 주말학교인 빈들에서 얼마나들 같이 불렀던 노래더냐.

우리가 보낸 세월이 있었으니

뭘 같이 해도 자연스럽고 충만한 시간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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