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진 또 하루다.

작년에 이어진 새해다.

코로나19로 시작해서 코로나19로 채웠던 2020(12.31. 새 확진자 1,029),

그리고 2021년도 새해 첫날 확진자는 824명으로 시작했다.

새해가 어느 해보다 새해스럽지 않게 왔다.

개인적으로 비행기를 타지 않은 드문 해였고

그래서 멧골에 깊이 들어와서 나가지 않는다는 소망에는 가까웠지만

너무 많은 이들이 힘들었고

취약계층은 더욱 어두웠다.

한국은 비정규직 36%,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했다.

안정적인 그 무엇도 없는 지금의 삶을 박노자 교수는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 후기 근대성의 성격을 분석한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라 하더라.

법무부 장관후보 조국 관련 기사가 넘쳐날 때

빈곤 혹은 아사 기사, 산재 기사는 찾기 힘들었다.

어려운 이들이 어려운 이들을 찾고, 그 어려움을 같이 외치고, 어렵지 않을 방법을 같이 찾는,

연대는 더욱 중요해졌다!

나는 그대의 손을 잡고 어깨를 겯으리.

 

책상 앞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여유로운 아침밥상 앞에 앉았다.

다들 나가 눈을 쓸고 아침뜨락을 걸었다.

낮밥도 달골에서 간단하게 먹었다.

멸장으로 간한 김치국밥이었다.

남쪽 현관 볕을 기대고, 빈백(콩주머니소파)에 묻혀서도 책을 읽었다.

새해 연휴다웠다.

식구들이 모여 앉아 책을 읽다가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마음>이 화제에 올랐다.

부제 나의 옮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처럼

사람들이 각자 옳은데 그것이 서로 왜 다른지를 살펴보는.

엄마가 옳다고 믿는 도덕적 신념이 진보의 협소함보다 훨씬 좁을 수 있음을 살펴보라고

아들이 권한 책이었고,

기락샘도 같이 읽고 책을 덮은 지 얼마 안 되었더랬다.

세상에는 다양한 정치적 이념, 종교적 믿음, 사회적 가치들이 존재하고

사람들은 각자 가장 옳다고 믿는 것을 따르고

그것을 위해 무리를 이루고, 목숨을 버리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 도덕은 이성이 아니라 직관에 의하고,

먼저 움직인 뒤 그것에 합리성을 부여하는 작동원리를 갖는단다.

진보 쪽에서 도덕적이라 믿는 신념이 얼마나 협소한지도 보여준다.

사람들을 이해하는 도덕적 기준이

실제 진보 쪽에서는 세 개 (배려/피해, 자유/압제, 공평성/부정)정도 밖에 안 되는.

저자의 연구에 의하면 보수 쪽에서는

예닐곱 개(충성심/배신, 권위/전복, 고귀함/추함)는 되는 매트릭스를 가지고 있더라고.

인간을, 혹은 인간 집단을 훨씬 많이 이해하게 하는 자료가 되는.

결국 상대를 이해하는 자료가 된다.

읽다가 밀쳐둔 책이 갑자기 다음 장이 궁금해 밤을 새며 읽고 마는 퍽 재미난 소설처럼

서둘러 펼쳐야겠다 싶어지더라.

가족들이 둘러앉아 자주 우리 사회며 세상을 둘러보는 이런 이야기들이 고마웠네.

아이들마냥 깔깔대며 즐거웠네.

사는 일이 무에 별 거랴. ‘오순도순사는 거라.

 

엊그제 저녁에 내린 눈이 멧골을 덮고,

그 위에 다시 눈 날린 어제.

낮에도 영하의 날씨였고,

오늘 해가 난 사이에도 간간이 눈이 날렸다.

해질 무렵 눈을 쓸며 마을로 내려갔다.

학교에 이르자 기다렸다는 듯 눈은 함박눈으로 변했다.

눈 내리는 운동장을 습이들 데리고 산책하고,

운동장에서 이제는 스물도 한참 넘은 하다샘이

해마다의 겨울처럼 눈을 쓸어 모으고 어제에 이어 이글루를 만들었다.

이야, 우리 엄마는 나 어릴 때부터...”

진흙 밭을 뒹굴어도 뭘 하면 하지 마라 한 적이 없고,

뭘 한다고 필요한 것들을 찾으면 귀찮다고 안 하고 꺼내준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한껏 한 경험들이 자신감을 주고 보다 생각을 확장하게 해주었다는.

그래, 네가 그렇게 컸어!”

내가 너를 그렇게 키웠노라 생색 한 번 내주었네.

, 저녁상을 물리고 학교아저씨며 죄 나가서

이글루에 불도 밝히고 사진도 한 장.

물을 긷고 먹을거리를 챙겨 다시 눈을 쓸며 달골 오르다.

 

불 꺼진 한 이웃집 앞에서 한참 멈춰 섰다.

아내를 잃고, 비 많은 긴 장마에 과수농사가 절단 나고,

그 속에도 자식 혼례를 치렀다.

한 가정의 쇠락이 연기가 오른 지 오랜 아궁이처럼 쓸쓸했다.

전화를 넣었다, 저녁을 같이 먹으려고.

윽! 이 겨울 도시의 한 병원에서 항암치료 중이셨다.

야속도 하지. 두어 달 흘렀는데 이제야 소식을 물었더란 말이지.

이곳으로 들어오는 전화도 있었다.

누이들과 보육원에 맡겨졌던 다섯 살 아이가 자라 서른에 다 이르는.

그 아이가 커가는 세월을 물꼬가 지켜보았다.

누이 둘과 이제는 세상 속으로 나와 견실하게 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고맙다. 그대여서 더욱 반가웠다."

생이 그를 배반하지 않아 고맙다.

새해, 삶이 우리를 팽개칠 때조차 함께 걷기로!


아들이 고교 때 양방도 한방도 치료가 안 되던 허리와 목 통증을

집에서 사혈로 풀어가며 대입을 준비했더랬다.

그 아이 커서 이제 그가 내 몸을 돌봐주고는 한다.

간밤에도 등에 통증이 좀 있었더라니

그가 사혈을 해주었고,

몸은 새해를 맞기에 가뿐하였더라.

내 몸도 곁의 마음들도 두루 잘 살펴가며 여럿에게 힘을 실을 수 있는 새해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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