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1.달날. 흐림

조회 수 128 추천 수 0 2021.01.27 23:35:09


 

오전 눈소식이 있었다.

아침 7시 잠깐 눈 몇 가닥 날렸다. 그 뿐이었다.

고마웠다. 와도 고마울 것이나.

 

아침뜨락 눈밭에 어제 못다 쓴 눈길을 쓸다.

꽃그늘길 내려오는 길은 열지 못했던 어제,

미궁에서부터 룽따에 이르는 곳을 오솔길로 쓸었다.

옴자 반달 눈썹 쪽과 수선화 동그라미도 쓸어 옴자를 밝혀 놓고.

 

결코 우리를 배반하는 일이 없는 겨울,

엊그제 새로 놓은 양변기 정화조 들고나는 관이 얼었다.

정화조 안으로 양은대야에 연탄을 놓고 녹여보는 중.

이런! 가마솥방에도 문제가 생겼다.

부엌 안에도 영하 15도를 내려가면 싱크대 두 쪽 다 수돗물을 털어놓는데,

설거지 하는 쪽인 남쪽 창 아래 수도가 쫄쫄거린다.

어디가 얼었는가...

참 징한 대해리 겨울이다.

끊임없이 월동을 위해 준비를 하고,

단단히 여기저기 살피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고 만다.

 

167계자 진행 관련 알림글을 누리집에 올리고,

부모님들과 통화.

인화샘의 말이 찡했다.

대학을 다닐 적 물꼬의 계자 품앗이샘이었고,

이제 처음으로 계자 학부모가 된 그니라.

계자가 그냥 캠프가 아니잖아요!”

그렇다. 바로 그것이 코로나19 3차 확산세에도 계자를 해보겠다는 이유가 아니겠는지.

혹 계자가 취소 되더라도 물꼬에 머물려는 구성원들이 꾸려지기도 하였더라.

다음 주는 날씨가 좋다는 일기예보.

계자를 하라는 말이구나 여겨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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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보 2021-01-11] 114일 오후 전화 드리겠습니다

 

먼저, 계자 전날까지 전액 환불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코로나19라는 불가항력 조건이 있는 상황이니까요.

 

1994년 첫 계자 이후 이토록 첨예하게 바깥상황을 살피기는 처음입니다.

계자 관계자 모두가 그렇겠지요.

방역당국은 코로나193차 대유행이 정점을 지났다고 평가하지만

이제 겨우 '감소 초기 단계'

긴장을 늦추기에는 여전히 위험 요인이 많은 것으로 판단한다 전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210110050551530

400명대까지 감소, 불안요인은 여전주말에 거리두기 다시 조정(종합)]

 

현재 계자를 취소하여도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상황임을 잘 압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계자를 열 수 있는 다음 계절도 있지요.

다만 이 겨울도 놓치지 않고 아이들과 이곳에서 보내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으로

끝까지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려보기로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또 목숨 걸고 모일 일은 아니지요.

할 수 있다면 하겠다는 말입니다.

한 아이라도 계자를 기다렸다면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게 물꼬의 존재 이유가 아니겠는지요.

상황이 악화되면 당연히 멈추면 될 것이고,

상황이 좋다면 예정대로 진행하면 되지 않을지요.

취소되어도 큰 상관이 없고, 한다면 하는 대로 좋다, 이리 편하게 여기시면 어떨지요?

114일 나무날() 오후 각 가정마다 최종 통화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계자를 열기로 하고 소요되는 약간의 경비는

그때 가서 또 머리를 맞대고 해결을 하면 될 것입니다.)

 

아래는

자유학교 물꼬에서 하는 계절자유학교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글입니다.

경제적 이점이 별 없는 상황에서도 굳이 계자를 하려했던 까닭을 나누고 싶은 뜻도 있고

이참에 계자의 의미를 같이 새겨보자는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 모다 부디 강건하기로.

 

2020.1.11.달날

자유학교 물꼬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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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자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

 

* 이 글에서 우리라는 말은

어떤 맥락 속에서는 어른들을, 또 다른 문장에서는 아이들을 말하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은 계자에 참가하는 어른과 아이, 모든 구성원을 일컫습니다.

 

 

스스로 살려 섬기고 나누는 소박한 삶, 그리고 저 광활한 우주로 솟구쳐 오르는 나!’.

자유학교 물꼬의 이념입니다.

나를 세워 다른 존재를 살피고 나누고 섬기며 자아실현에 이르고자 함이겠지요.

그것을 향해 일과 예술과 명상을 통한 교육,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끊임없이 일상을 돌아보며 다져 정성껏 하루 하루를 모십니다.

그런 물꼬에서 하는 계절자유학교(계자)는 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1994년 여름부터 2020년 여름까지 백예순여섯 차례 이어져 온 계자는

현재 자본주의 아래서 벌어지는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무엇보다 즐거웠고,

사람이 정녕 무엇으로 사는가 같은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린 소중한 가치들을

집과 도시를 떠나 자연 안에서 새로이 마주했습니다.

 

아이들이 모이는 숫자의 많고 적음이 계자 개최여부에 영향을 주지 않았던 것은

상주하는 이에서부터 계자에 함께하는 어른들이 모두 자원봉사였기에 가능하기도 했습니다.

참가자가 하나여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은 물꼬의 꽤 큰 장점 하나였습니다.

경제적수익성에 매이지 않고

계자가 지니는 의미와 가치에만 집중하면 되었지요.

계자에서 얻은 이익은 온전히 자유학교 물꼬가 존립(공간 유지)하는데 쓰여 왔습니다.

 

계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던 걸까요?

 

0.

자유!

자유학교 이름대로 말입니다.

그렇지만 배려가 있는 자유, 사이좋은 자유 속에서 우리 지냈습니다.

아이들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인정받고 자신을 한껏 연, 허용된 경험 속에서

치유와 치료를 경험하고는 했다지요.

 

1.

불편하고 모자란 것 많은 공간에서

그간 우리가 지나치게 많은 걸 가지고 살았음을 알았습니다.

사람이 사는 데 그리 많은 게 필요치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지요.

보다 단순한 삶, 그야말로 미니멀라이프였습니다.

놀랍게도 최소한의 환경에서도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너무나 풍요로웠습니다!

2.

아이들이야말로 대면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아직 성장을 다 거치지 않은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몸은 움직이며 노는 속에 건강하게 자랍니다.

놀이 속에서 우리는

조율하는 법과 약자에 대한 배려와 창의력을 길렀습니다.

 

3.

세상이 우리에게 살아라고 몰아붙이는 길로부터

우리는 자신이 자신으로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광고로부터 게임으로부터 폰으로부터 떨어져

우리는 자신의 감각으로 생활하며 지냈습니다.

살아 숨 쉬는 것에 대한 경이를 배웠습니다.

삶에는 삶이 가지는 신명이 있지요.

우리 이 멧골에서 그렇게 신바람나게 보냈습니다.

 

4.

온전한 사랑 안에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데리고 있어도 아이들이 다치는 일이 있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한 순간 작은 사고를 막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이곳의 어른들(새끼일꾼 포함)이 온 사랑으로 아이들을 향해 있었습니다.

교사들도 전화기를 다 치우고 오직 아이들을 돌보는데 힘을 모았지요.

아이들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려는지 귀기울이고

호밀밭의 파수꾼(샐린저의 소설의 주인공의 꿈처럼)처럼 아이들을 지켰고,

늦은 밤 머리맡에서 읽어주는 동화책을 들으며 아이들이 잠이 들면

그제야 어른들은 모여 아이들과 보냈던 시간을 낱낱이 되짚어보고 다음 날을 준비했지요.

 

5.

무엇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 하지 않는 것도 필요합니다.

아이들도 위로와 위안과 쉼이 필요하지요.

멧골을 둘러친 환경은 우리는 충분히 쉬도록 해줍니다.

아이들도 어른 못지않게 힘들었을 2020년이었습니다.

 

6.

움직임이 많은 이곳에 있으면 밥이 꿀맛입니다.

밥 귀한 줄 압니다.

삼시세 때 충실한 끼니를 단단하게 먹었습니다.

돈으로 사람을 부린 적 없는 물꼬의 부엌입니다.

샘들도 그러했지만 밥바라지 역시 기꺼이 손발을 내 밥상을 준비하였습니다.

 

7.

계자를 마치고 나가는 어른들이 한결같이 하는 결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좋은 세상에서 살고 싶고

그런 세상을 위해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들 합니다.

아이들은 신났던 시간을 뒤로하고 너무나 큰 아쉬움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행복했던 게지요.

빛나는 날들이 우리 삶을 밀어줍니다.

그런 시간이 어두운 삶의 터널을 지날 수 있게 하는 한 가지가 되지요.

생을 채우는 것은 대단히 커다란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소소한 기쁨들 아닐지요.

계자는 그야말로 우리를 고무시켜주었습니다.

그 힘이 다음 걸음을 걷게 하는 힘이 되었다마다요.

계자를 자유학교도들의 부흥회라고까지 하는 농이 생길 만했습니다.

어른들에겐 기꺼이 자신을 쓰며 성장하는 시간이고

아이들에겐 집을 떠나, 또 도시를 떠나

한껏 자신을 자유롭게 고양하는 시간이 되었다 했습니다.

너무 편안하게, 지나치게 많은 걸 누리고 사는 시대에

보다 원시적인 공간에서 우리들은 그렇게 단련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계자의 시간들은 아름다웠습니다!

때로 지나치게 열악하고 고생스러워서 이제 그만할까 하다가도

우리는 다음 계절에 다시 계자를 하고, 하고, 해왔더랬답니다.

이 겨울에도 우리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2021. 1.11.달날

옥영경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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