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렸다. 봄비처럼 내렸다.

어제 산을 내려오던 무렵부터 내리던 비다.

아침에도 내리는 보슬비.

아이들이 따순 밤에서 고단을 풀라는 말인 갑다.

이불을 터는 걸로 대신 하기로 한 마지막 해건지기였는데,

일정을 조금 바꾸기로 한다.

 

조용조용 샘들부터 깨워 샘들 반짝 한데모임’.

오늘 흐름을 다시 살피고,

이불을 살짝(탈탈 아니고) 털어 개기로.

베개에서 나온 혀(베갯잇이 밖으로 나온 것을 우린 그리 불렀다)를 잘 집어넣고.

 

시와 노래가 있는 한솥엣밥’.

오늘은 밥상머리 공연이 있다.

엊저녁 때건지기 때 현준이들(대체로 왁자하다)에 둘러싸여 밥을 먹으며

공연팀을 섭외하였더랬네.

윤수가 피아노까지 잘 친다는 소문을 들었지.

공연 한 번 해보자 했고,

곁에 있던 동우도 현준이도 좀 도와봐라 하였네.

나서서 하는 건 좀들 싫어라 하는 이들이었지만,

또 그냥 하면 되는 것, 가볍게 하면 되는 것.

그러니 또 한다더라고.

무대에 오른 셋,

동우가 무대에 먼저 서서 멋진 몸짓으로 공연을 알리고,

현준이가 오프닝무대로 짧은 피아노 연주를 했다.

그리고 짠 하나고 본무대에 오른 윤수라.

판을 까니 또 하더란 말이지.

소박하나 꽉 찬 공연이었네.

무대에 오른 그것만으로도 대단했던.

 

아침 밥상을 물리고 먼지풀풀 안내모임’.

사람은 누구나 성장에 대한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만 어른이 되어가는 게 아니라

모두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고픈 바램을 모두 마음에 품고 살지요.”

마음을 넓히는 일을 말한다.

우리 내 것 챙기는 걸 넘어 다른 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지녀보자 한다.

청소란 게 우리 지냈으므로 그것에 책임을 지는 행위를 넘어

처음 우리가 왔을 때 우리를 맞기 위해 누군가 준비를 하였듯

우리 역시 다음에 이 공간을 쓸 이들을 위해 맞이 청소를 해보자 했다.

너무 열심히 말을 했던 걸까,

아이들이 어찌나 열심히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있던지.

그동안 익어진 손발이기도 했겠지만.

사람이 적어 공간을 다 나누기보다 두어 패로 여기 하고 옮겨가서 저기 하고.

다 한쪽에선 다른 편에 가 더 할 게 있는가 물어봐 주고.

 

물꼬장터’.

옛적에는 기념으로 제 물건들을 바꾸기도 했더라만

요새는 제 옷이며 반찬통을 찾는 의미로 바뀐.

가방을 싸서 복도에 내놓고,

빨래방에서 들어온 빨래들 주인을 찾고, 반찬통도 찾고.

 

갈무리모임 전 마지막 반짝 한데모임이 있었다.

밥바라지샘까지 들어온, 167계자 구성원 모두가 앉았다.

여기서 벗은 마스크를 나가면 다시 써야 한다.

아이들이 그 혼란을 어떻게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며칠 동안의 큰 고민은, 아이들이 나가는 날의 () 최대 고민은, 그것이었다.

만약 확진자가 생기더라도

우리가 그저 무슨 대단한 선민인 사람들인 양 괜찮을 거라는 무모함에서가 아니라

왜 일이 그리 되었는가를 공유하는 게 중요했다.

대략 이런 이야기들을 전하였다.

코로나19 3차 확산세에 5인이상 집합모임 금지,

그것은 사적모임에 한한 거다.

학원이며는 9인까지 가능했다.그래서 이번계자는 9인으로 마감했다. 다만 한 아이가 못 와서 8.

첫날 우리는 밥 먹을 때 가마솥방에서는 뚝뚝 떨어져 앉고

방에 있는 상으로 가서는 둘러앉되 바깥을 보고 먹었다.

세 차례에 걸쳐 논의를 이어가며 우리는 마스크를 벗기로 결정했다.

그건 다수결 원칙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미 우리가 밥을 먹으며 호흡이 섞였다고 판단했고,

계자 일정이 시작되기 전 2주간 건강을 체크하고 모였으며,

외부에서 들어올 일이 없어 대문을 걸어 사람이 오가지도 않는다는 전제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돌아가면 우리는 마스크를 다시 써야 한다.

우리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지냈노라 자랑할 문제가 아니다.

돌아가면 자가격리에 가까운 2주가 지난 뒤 글과 사진도 알리겠다는 건

미리 부모님들께 전하였더랬지.

부디 안전하길, 아무쪼록 별일이 없길.’

 

샘들이 다시 자신의 삶터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모둠방에 배를 깔고 갈무리글을 썼다.

이어 책방 앞 복도에서 길게 늘어서 마친보람을 했다.

글집 마지막 장에 마침보람서에 도장을 받고,

그간 애썼음에 대해 샘들의 축하를 받으며 가마솥방으로 들어가 마지막 밥을 먹다.

비가 멎어있었다. 세상에! 정말 그러했다. 물꼬 날씨의 기적!

그리고 한사람씩 떠나갔네.

, 인서가 가기 전 선물을 내밀고 갔다.

샘들을 위해 용돈을 모아 계자 오기 전부터 준비했던 거였다.

어떤 큰 상보다 기쁜 선물이었다.

계자는 그저 이곳에 머무는 엿새의 시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계자 아닌 다른 일상에서도 우리는 계자를 보내고 있었나니.

아이들 떠나고야 알았네.

아이는 기억하고 어른은 잊기 쉬워라.

세월호 기억 기념품들을 나눠주려 했는데...

 

여느 해 계자 같으면 아이들과 같이 영동역을 나갔을 것이다.

역에서 아이들을 보내며 샘들은 카페나 식당에서 갈무리 모임을 했을 게고.

지난여름부터(앞으로도) 물꼬까지 아이들이 바로 들어오고

역시 여기서 바로 아이들을 보내고 있다.

자가용이 없는 경우는 등록한 이들이 함께 올 수 있도록 안내를 해주고.

샘들 갈무리를 여기서 하게 되니

아무래도 정리에 손발을 더 보태고 나가게 된다.

샘들이 설거지며 일을 나눠 아이들 나간 자리들을 정리했다.

모둠방을 나가 창고며 교무실로 갔던 물건들이 다시 들어오고

(이번 겨울계자는 얼마 안 되는 아이들이어 치워진 물건들이 많지 않아 더 수월했네),

춤명상에 주로 쓰이는 유리병이며 유리소품들을 물로 닦고,

욕실에서 가방을 빨고,

흙투성이 등산용 접이방석이 씻었다.

기본적인 것들이 그렇게 대충 자리를 잡았고,

나머지는 여기 사는 사람이 찬찬이 물건들의 자리를 바로 잡아줄 것이다.

샘들의 마지막 갈무리모임도 끝났다.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딨는가,

귀한 시간들을 내서 이 거친 삶 속으로 달려와준 사람들이다.

아름다운 청년들이었다.

빛나는 새끼일꾼들이었다.

그들이 있어 가능한 계자다.

두 차례에 걸쳐 물꼬와 흘목 사이 셔틀이 오가다.

14:30 물한리에서 나오는 버스를 타고 샘들이 갔다.

잘한 건 샘들 덕이다.

혹 과오가 있었다면 그건 내 것이리.


계자에서 들어왔던 후원 또는 지원들 가운데

들먹이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간간이 물꼬 세간을 살펴주시는 옥천의 진영샘네서

아이들을 보내며 이번 계자에도 플라스틱 도마랑 설거지받침이며들을 챙겨주셨다.

직접 디자인하고 생산까지 하시는.

혹 알고 계셨던 걸까, 손목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최근 아이들 요리용으로 쓰고 있는 얇은 플라스틱 도마를 쓰고 있다는 걸,

뜨거운 재료를 쓸 때야 나무도마를 꺼내지만.

가벼우니까. 어차피 버리지 않을 것들이니까, 물꼬의 물건들이 대개 그렇듯.

아이들도 얼마나 잘 쓸지, 이번 계자에선 아직 꺼내지 않았지만.

계자는 그렇게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닿고

그 마음이 쌓여 더욱 안전과 안정과 함께한 줄 안다.

"모다 두루 고맙습니다!"

 

계자는 역사와 시대와 물꼬 사정과 가치에 따라 변화를 겪어왔다.

이제 소규모로 꾸려가겠다 선언했을 때

대한민국은 인구절벽을 맞고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시기로 향하고 있었다.

또한 코로나19를 통과하며 역시 자연스레 작은 규모가 되기도.

언제나 고맙게도 물꼬가 가겠다는 길과 잘 맞아떨어지는 시대였다.

이번 역시 다음 기로 이동하는 변환점이었다.

그 실험을 이 사랑스런 아이들과 함께했다.

모다 애쓰셨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아이들을 보내고 들어온 뉴스;

코로나19 확진자가 60일 만에 최소치!

한시름 놓게 된다.

한편 가족생일모임에 참석한 이들 12명이 확진을 받았다 했다.

계자 상황이 끝나고 벌어진 일이어 (확진자를 생각하면 이리 말할 것도 아니나)다행했다.

 

계자가 끝난 뒤에 더러 며칠씩 더 묵어가는 아이들 혹은 어른들이 있기도 했더랬다.

진행자로서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 이제는 말한다.(심지어 신명나서 했는 걸!)

왜냐하면 계자 때는

두어 시간 자면 많이 잔다 할 정도로 잠과 사투를 벌이며 보내는 날들이기에.

아이들(‘넘의 새끼들이라고 애정을 담아 표현하는)을 데리고 있는 일이 그렇다.

부모가 없는 곳에서 그 부모 자리에 선다는 게 그런 거다.

게다 샘들은 샘들대로 저마다 고민을 가지고 모이기 마련.

새끼일꾼도 도움꾼으로 오지만 다른 편으로는 교육대상자이기도 하고.

물꼬가 모두 헤아리고 살펴주어야 할 사람들인.

계자라는 일정이 돌아가면서 동시에 여러 상담이 같이 돌아가기도 한다는 말이다.

대개 늦은 밤, 심지어 새벽에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가능한 한 계자가 진행되는 그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하고.

허니 잠이 쉽지 않은 날들이지.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이제는,

계자는 계자 일정으로 마무리를 하고 일단 사람들을 다 보내는 걸로 하자 했는데,

아직 넷의 아이들이 남아있고(계자를 한 여덟 가운데 절반이다!)

또 한 아이가 들어왔다.

무슨 일일까...?

다음 이야기는 다음 걸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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