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힘이 세다.

계자가 끝나면 몰려오는 졸음이 온 몸을 강타해

게슴츠레 뜬 눈으로 영혼을 다른 데 보낸 채 흩어져있는 물건들을 주섬주섬 치워놓고

못다 쓴 계자 기록을 하려 책상에 앉을라치면

컴퓨터 화면에는 같은 글자가 두두두두두두두 이어진다.

두들기던 자판에서 한 음절을 누른 채 졸고 있는 거다.

그러기를 수차례 하다 벌떡 일어나 잠을 걷어보거나

아니면 도저히 안 되겠군 하고 잠시 엎드려 눈을 붙이거나.

그러다 모든 걸 팽개치고 이른 저녁 밥상을 물린 다음

쉬는 상태로 돌입해

괜찮은 영화 하나를 챙겨보거나 읽고 싶었던 책을 몇 페이지라도 들여다보거나.

다음 일은 다음 걸음에, 하며 일단 자고 보는데, ...

 

더러 계자가 끝나도 계자가 끝나지 않았다.

어떤 상황으로 불가피하게 남거나

물꼬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해서 치유의 시간이 더 필요해서 남기거나.

7학년들만 모아 따로 혹은 새끼일꾼들만,

아니면 심리적 거리가 더 가까운 이들이 남기도 하고.

하지만 올해부터는 그렇게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두통이 너무 지독했다.

의심 없는 수면부족이다.

이렇게 하면 오래 못하겠구나,

물꼬 일을 길게 하자면 이렇게 무리할 게 아니란 생각을

몇 해 전부터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특히 계자 끝에는 일단 막을 내리고 적어도 하루는 푹 쉬어가자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계자는 계자가 끝나는 날 막을 내리지 못했다.

쇠날 데리러 올 수 없는 가정이 생겼다.

여기 사정을 알면서도 그리 부탁을 해야만 하는 형편이 또 헤아려졌다.

더구나 물꼬 식구들(논두렁 품앗이 새끼일꾼) 아닌가.

이왕 두 친구가 하루를 더 머물게 되었다면,

더 좋은 상황을 만들면 좋겠지.

그래, 그래, 모두 오시라, 모두 남으시라,

일은 그리 되었다.

하여 어른 넷과 아이 여섯(한 아이는 결국 가야 했지만)더하기 계자를 하게 된 거라.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시골 할미에서 손주들을 맡겨두고 밥벌이 떠나는 자식들,

물꼬가 계속 존재할 수 있게 했던 품앗이들을 보며

그들의 아이들이 내 거두리라 예견하곤 했던, 그리 하고팠던.

 

멀리 전남 신안 안좌도에서부터 예까지 올라와

계자 뒷정리도 돕고 쉬었다 가겠다는 화목샘부터

몇이 들러 손발 보태겠다는 주말이었으나

번잡하겠다고 다음에 걸음해 주십사 하였다.

더하기 계자가 있으니까.

날이 매웠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계자 끝이라 고단까지 몰려.

봄날이었다.

또 마음이 너무 쓰이는 어른이라도 있으면 또 힘이 좀 들었겠지.

윤실샘이며, 아이들도, 식구 같은 우리였으니!

마땅히함께할 수 있었던 윤수와 현준이와 수범이, 그리고 동우와 윤진.

 

첫날.

167계자를 끝낸 샘들을 대해계곡 들머리 흘목까지 배웅할 때

우리를 스치며 들어온 차가 있었다.

4:30 ‘더하기 계자가 시작되다.

167계자의 절반인, 계자에서 가장 움직임이 많았던 아이 넷이 남았고,

우리 오빠가 아는 게 좀 없죠, 라고 말하는 야무진 여섯 살 여아가 동행.

모둠샘은 윤실샘,

20년 전에 함께 계자에서 뒹굴었던 품앗이샘이 아이 둘의 엄마가 되어

다시 이틀의 계자(라고 하기로 한다)를 같이 보낸다.

밥바라지는 옥영경.

6년 남학생도 남고 싶어 하였으나

너무 늦은 우리들의 결정으로 이미 그를 태워갈 차가 물꼬까지 와버려 가야 했고,

학생주임쯤으로 수진샘도 함께하려 했으나 상황이 허락지 않아 오지 못했다.

 

속틀?

뭘 하지 않아도 충분할 시간이라.

이 좋은 자연 안에서 안전하게 어른들 울타리 안에 있는 것으로 훌륭할 것.

엿새의 계자를 끝낸 뒤이니 일단 쉬기부터.

대체로 한껏맘껏’.

아이들은 책방에서부터 복도 끝쪽 옷방까지 온 데를 누비고 다녔다.

무엇이나 만져도 되고 무엇이나 하셔도 됩니다.

 다만 마지막엔 어떻게?”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러자면 처음이 어땠는지 잘 봐 주어야 합니다.

 그런 뒤 쓰고 나서 그 처음처럼 해두시기-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

그렇게 일상을 건사하는 것만 익혀도 얼마나 큰 공부이던가.

그런데, 어라?

어른 공부방도 들어가 그야말로 난장판을 해놓았네.

(학교아저씨의 고자질이 있었던 거다, 하하)

아차! 안내가 부족했던 게지.

거긴 여전히 어른들이 쓰는 자리.

더구나 다른 공간도 얼마든지 너르고 너르니까.

,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처음처럼 같이 공간을 정리하고 나왔고,

아이들은 운동장처럼 본관을 다시 뛰어다니고 있었더라.

 

윤실샘이 고기볶음과 동태찌개를 준비해 와서 밥 준비가 수월하였네.

멧골에서 엿새나 보내고 나면 달콤한 것들이며 바깥음식이 그립지.

동태찌개 한켠에 아이들 먹으라 면 사리를 넣어주기도 하였다.

후식으로 달콤한 딸기도 잔뜩 먹고.

윤실샘이니까 올 수 있었던 거야!”

생색도 냈더랬네.

정말, 그이므로, 긴 세월 함께 보낸 그이므로 편안하였더라,

아무리 편해도 손님이다 했다가.

스무 살 대학 시절에 물꼬에 손발을 보탰고

남자친구도 같이 발길 이어지더니 혼례를 올리고 달마다 때때마다 물꼬 살림을 보태고,

이제 자란 아이 둘이 물꼬를 온다.

그들이(물꼬의 품앗이와 논두렁) 지켜준, 지켜낸 이곳이었다!

 

아이들은 공간들마다 옮겨 다니며 놀 거리를 찾았다.

책방에서는 책을 읽다가, 체스와 오목을 두다가,

수행방으로 가서는 티피에 들어가기도 하고, 몬테소리와 은물 교구들을 꺼내 놀기도.

밤참으로 핫초코며 곶감이며 달콤한 과자들을 내주었다.

여덟 살 수범이는 두 살 차라도 오빠라고 여섯 살 윤진이를 잘 받아주고.

자정이 다 되었다.

이제 좀 잘까?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볼까?

여기저기 쏟아놓거나 흘려놓거나 던져놓거나 했던 것들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일일이 줍게 하고 넣게 하고 정리하게 하고.

그게 또 중요한 공부인 이곳이라.

윤실샘이 아이들 잠자리를 살펴주고, 같이 씻고.

 

우리는 여자방에서 모두 같이 자기로 한다,

남자방에서 자자고도 했다가

아무래도 화장실이 가까운 쪽이 낫지 않겠냐고.

겨울에는 달골로 오르내리기도 쉬운 상황이 아니라(때로 눈과 얼음으로 오가기 힘이 드는),

해서 하루를 더 자야만 하는 아이 둘과 학교 사택 된장집 한 방에서 같이 자야지 했는데,

아이도 셋으로 늘어나고 윤실샘도 더해지면서

본관에서 자기로. 그러자니 나무보일러 아궁이에 밤새 또 불을 지펴야 하는.

학교아저씨가 하루를 더 애써주기로 하셨네.

한 해라도 더 젊은 나였다면, 올라가십사 하고 불을 때며 날밤을 샜을 거라만. 하하.

 

이튿날.

해건지기를 따로 할 것도 아니었다.

이 겨울 따순 구들에서 충분히 뒹굴기.

그리고 책방으로들 가서 만화책을 쌓아놓고들 보았지.

아침 9시 때건지기 종을 쳤다.

누룽지와 야채죽과 김밥말이구이와 ...

빵보다 밥이 더 좋다는 윤수의 주문이 있었더랬네.

 

아이들은 놀이에서 지치는 법이 없지.

책방 안에서만도 책과 오목과 체스와 그림으로 흘러다니고 있었다.

11시에 참을 냈다.

어제 어른들이 곡주와 함께 놓았던 안주거리에 아이들이 눈독을 들일 적

내일 주마 했던.

끼니는 끼니대로 또 다가왔다.

12:40 낮밥을 먹었다.

토스트거나 프렌치토스트거나 역전토스트거나 샌드위치거나를 잼과.

우유와 소다수를 같이 냈다.

 

이제 가방을 싸야지.

그리고 먼지풀풀’.

복도 저 끝에서부터 이 끝까지 아이들과 같이 걸으며

우리가 손댔던 것들을 정리한다.

교구들도 짝을 맞춰 다 넣어주고.

현준은, 책을 사랑하는 현준, 갈 때가 되면 팽개치고 갈 수 있음을 영악하게 알았더랬고

번번이 그랬더라지.

이제는 형님의 자세 혹은 태도를 배울 때.

두어 마디 전하니 우리의 현준,

형님답게 더 적극적으로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형님이 되어 갔다. 감동이었다.

 

2시께 동우와 윤수부터 앞세우고 인화샘네가 떠나려는데,

이런! 본관이 소란했다.

수범이가 실내화를, 방금까지 책방에 잘 챙기고 갔다던 실내화가 사라져 울고,

윤진이가 더 놀고 가고 싶다 울고.

신발? 찾으면 되지.

더 놀아? 놀면 되지.

신발을 찾았고, 더 놀았다.

곧 모두가 떠났다.

비로소 167계자도 끝나고 더하기 계자도 떠나고.

 

더하기 계자’, 역시 하길 잘했지.

언제나 그렇듯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많은 물꼬의 삶이라.

애쓴 마음보다 더한 따스함을 놓고 갔으니,

내가 돌본 게 아니라 윤실샘이며 아이들이 날 돌봐주고 떠났네.

그리하여 우리는 또 다음 계자가 끝난 뒤 돌아가지 않은 이들과 어우러지곤 하겠지...

윤실샘은... 계자 반찬으로 똥을 빼고 다듬은 다시멸치와 찧은 마늘까지 보낸 것도 그였다.

남은 이의 일을 더느라 내내 부엌 바닥이며를 닦고 갔고나.

 

더하기 계자까지 끝내고야 털썩 앉았네.

167계자를 끝내고 돌아간 샘들이 물꼬 누리집에 남긴 도착 인사를 읽었다.

물꼬는 코로나19로 자가격리에 가까운 2주를 보낸 뒤 사진과 글을 올리기로 했다.

샘들은 지혜로웠다.(그들은 자주 그렇다, 아주 자주)

도대체 계자를 했는가 아니 했는가도 모르겠는 능청스런 글들이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내 동지들이여, 벗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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