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25.나무날. 맑음

조회 수 336 추천 수 0 2021.04.27 23:24:15


 

꽃을 보면 누구랄 것 없이 미소가 걸린다.

그 미소 이름을 뒤센 스마일이라 한단다.

프랑스 신경생리학자 이름을 딴 것.

딱 빙그레다.

아침글벗인 어르신이 찾아내준 낱말이었다.

 

한밤에도 바깥세상에서 소식 한 줄 들어왔다.

바르셀에 갔을 때 정성스레 내어주신 아침과 식사들을 다시보니 감동이고 위로네요.’

바르셀로나에 머물던 2018,

휘령샘과 휘향샘이 품앗이샘 대표(?)로 건너와 잠시 머물렀더랬다.

그때 식탁의 사진을 그들이 남겼나 보다.

사진의 힘이라. 그냥 사라졌을 시간이 그리 남았네.

이 사진에 다시 힘 얻고 다시 지금을 살러 가보겠습니다.’

생의 신비라. 자주 생각하기도 하지만 부쩍 그를 생각한 날이더니...

근거 없이 불안해지는 감정의 습들이 있는데 털고 매일을 살려고 할 때,

저도 옥샘 생각이 많이 났어요.’

답이라고 한 줄 썼네.

불안, 그거 가짜일 때가 많음. 더구나 근거 없다 여겨진다면 더욱 가짜임!’

내일 아침은 그를 제목으로 대배를 하겠다.

 

오후에는 어제에 이어 햇발동 남쪽 경사지 위쪽 수로를 쳤고,

언덕 올라간 김에 마른 풀들을 긁고 끌어내렸다.

마침 바람 없는 틈에 마당에서 태우기도 하였네.

풀은 날 때가 아니어도 겨울을 보낸 뒤에도 일을 남긴다.

 

저녁에 잠시 이웃이 건너와 차를 마시다.

얘기가 길어지기 손으로는 수를 놓다.

아들네 등 쿠션이 망가졌다 하기

마침 천 하나 보이길래 재봉질 한 것.

색이 너무 짙어 도안을 그릴 수 없길래

그냥 되는 대로 수를 놓다.

 

410일까지 마감하기로 한 책의 원고는 아직 감감이다.

엊그제야 겨우 얼거리를 짜두었다.

글은 되지 않고 부담만 쌓여

어느 날은 마구 졸음만 쏟아지고

어느 날은 그저 걷기만 하는 속에

그래도 밥상을 차리고 빨래를 하고 풀을 맸다.

더는 찡찡거리지는 않기로, 글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지만.

그래도 책상에 꼬박꼬박 앉지 않는가.

안 되며 읽는 책이라도 붙잡기로.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한 부분을 펼치다.

나는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 있게 된 것이 로렌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도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끝없이 상시시켜 준 어떤 가능성 때문이다. 선행을 행하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범한 그의 태도를 보면서 나는 수용소 밖에 아직도 올바른 세상이, 부패하지 않고 야만적이지 않은

증오와 두려움과는 무관한 세상이 존재할지 모른다고 믿을 수 있었다. 정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어떤 것

()의 희미한 가능성, 하지만 이것은 충분히 생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민간인 노동자 로렌초는 여섯 달 동안

날마다 레비에게 빵 한쪽과 자기가 남긴 배급식을 가져다 주고,

기운 자기 스웨터를 주고, 이탈리아로 엽서를 보내고 답장을 전해주었다.

레비는 바로 그 로렌초 덕에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고맙다, 로렌초가, 그리고 레비가. 그들이 이 순간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나는 살겠다. 그리고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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