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을 머금은 날이었다.

 

토스터를 고쳤다. 토스터와 전기포트를 몇 차례 고친 경험이 있다.

그게 아주 간단한 구조이고, 고장이 날 것도 별 없는,

간단한 뭔가가 살짝 어긋나거나 아주 작은 탈.

이번 것만 해도 해체해서 보니 버턴을 내리 누르도록 하는,

1cm도 안 되는 길이에 지름 5mm도 채 되지 않는 부분이 부러진.

해체라고 해봐야 드라이버로 피스 몇 개 풀면 된다.

순간접착제로 붙이고 전기테이프로 감아주었다.

된다. 물건 하나 버리지 않아, 아직 쓸 수 있어 고맙다.

물꼬에서 환경을 지키는 건 이런 것이다; 어떻게든 쓸 수 있을 때까지 닳도록 쓰기.

 

168계자 부모님들과 통화 이어달리기.

계자 기록을 누리집에 다 올리고 통화를 하겠다는 계획이었으나

아이들이 남긴 갈무리글만 올리고 못다 올린 채.

마지막에 온 전화를 내려놓으니 자정에 가까웠다.

(오늘 여의치 않다며 다른 날 하겠다는 문자도 왔고, 소식 없는 댁도 있었네.)

뭐랄까, 꼭 친척들 같은, 그야말로 물꼬 식구들의 안부라.

남매가 왔던 댁의 아이들이 하도 물꼬 물꼬 노래를 불렀기

그러면 물꼬 가까이 이사 갈까, 엄마가 말했더라나.

그건 아니라고들 했다지.

애들도 아는 거다. 여긴 삶을 잇기에 쉽지 않은 곳.

거칠고, TV도 없고 게임기도 없고 손전화도 안 쓰고,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없는 여름이다.

그냥 잠깐 다녀가는 곳으로서 좋을.

물꼬 역시 그저 (사람들이) 이곳에서 보내는 날들이 바깥 삶을 보는 계기이길 바라는.

 

종일 전화를 쥐고 있으니

정말 오는 전화도 많다.

여느 날이라면 전화기가 가까이 없으니

닿지 않은 전화는 문자를 남기거나, 내 편에서 밤에 몰아서 할.

그런데 곁에 놓고 울리면 받으니...

한 어르신의 전화, 물꼬 교문이 아주 닫혔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물어온.

한 지방도시에서 한 때 최고의 부자였던 이의 따님이었고,

역시 자산가와 결혼하여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다.

60년대 말 초등학교 때 이웃 큰 도시를 오가며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다녔고,

그 도시 최초로 피아노를 들였던 댁.

의사 사위를 얻었는데, 손녀 둘을 송도국제학교에 넣고 달에 1,500만원이 들었다고.

그 아이 하나 올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한 곳에 입학을 했는데,

아이비리그 12곳 입학원서 컨설팅 비용이 5천만 원이었다고.

직접 들은 실화.

그 동네는 다 그렇게 한단다.

돈을 바르는 거다. 그나마 투자한 대로 성공해서 다행일.

같은 투자를 하고도 못 가는 이가 더 많을.

그들만의 리그. 그들은 그들대로 살면 되지.

문제는 그들이 아닌 우리다.

뭐 하러 그 리그에 들어서려고 애를 태우나.

그 리그에 들어설 게 아니라 다른 방식의 삶을 택하는 게 더 쉽지 않나.

그래도 충만하고 풍부한 삶이 얼마나 많은데.

 

아는 이가 시집을 보내왔다.

벌써 네 차례 엮는 시집이다.

그런데 자가 출판이다.

넉넉한 주머니도 아닌 사람이다.

겨우 돈을 모아 어찌 어찌 내는 시집이다.

그렇다고 그의 시가 빠져죽어도 좋을 만치 좋은 것도 아니다.

(아아아아아, 안다, 알아, 다 제 취향이 있는 거지. 다만 내 취향은 아니었던.

사실 내가 시를 논할 계제도 아니고.)

뭐 할라고 굳이 자신의 돈을 들여서까지 그리 시집을 내는가 싶었다.

그런데 꿋꿋하게 내는 그이고, 시인이라고 하는 그이다.

잘 사신다! 저 원하는 걸 하며 살지 않는가.

무엇보다 그는 시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훌륭하든 그렇지 않든 시를 계속 쓰고있다.

시인 맞다.

시도 안 쓰면서 시인을 꿈꾸는 이는 아닌 거다.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을 기다린다.

(그의 시집 말미에 언젠가 그에게 보낸 내 메일이 들어있었다.

담에 그런 일이 있다면 부디 양해를 구해주기 바란다.

그렇게 내 글이 유통되기를 원치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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