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1.불날. 맑음

조회 수 353 추천 수 0 2022.01.08 16:32:47



해가 다소 더디게 나오긴 하였으나,

일찍도 일찍 진 해여서 금세 마치 흐린 듯한 어둠이었으나,

맑아 고마웠다.

내일이 동지일세.

내게 새해는 동지를 지나면서 시작되는 듯.

마치 나무처럼 나도 풀 한포기, 볕이 참말 중요하더라.

 

아침뜨락을 걷고

아침 9시부터 앉은 교무실 일이 저녁 6시에도 계속되었다.

대개 밤에 보내는 메일들을 낮에서부터도 챙겼네.

이번 주말에 청계도 있고, 계자(초등)도 가까우니.

당장 이번 청계랑 관계 있지 않아도

이제 청소년 시기에 접어든 예전 계자 아이들 몇에게도

그대들을 기억하노라 문자 두어 줄 보내다.

같이 목청껏 걱정 없이 불렀던 노래들을 소환해주고 싶었으므로.

 

30년이 넘어 되는 물꼬의 세월이니

아이들이 자라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고,

혼례를 올리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 자라 물꼬를 오는 일이 드물지 않다.

이번 계자에도,

계자 아이가 자라 품앗이샘이 되는 물꼬의 역사를 또 한 사람이 쓰게 되었다.

초등 6년이 마지막이었으니 꼭 10년만이다.

그 뒤로 유학을 갔다 들었던 듯하다.

이번 계자에 처음 합류하는 이도 있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 중에 마음 작업을 꾸준하게 하고 있습니다.’라는 자기소개가 있었다.

지금 메일을 보내고 계신 ''가 바로 ''인데

어디서 나를 찾는단 말인가, 늘 내게 내가 있는데,

하고 농을 하고

마음작업을 한 이야기들(어디서 무엇을)도 궁금하니

자신의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면 어떨까 싶다고 답메일도 보내다.

 

지난여름부터 쓰려던 메일 둘도 챙기다.

스무 살이 되면서 일을 시작하고(원격수업이었으니)

물꼬 논두렁 회비를 챙겨 보내는 윤호샘에게

그대가 사려는 세상을 생각대로 잘 살고 계신가고 물었다.

보내주는 후원은 무척 귀함 쓰임을 받고 있다:)

계자 아이가 자라 후원을 한다는 상징으로서도 그렇고,

실제 바람 성긴 이 살림에 보탬이 되기 때문에도 그러하다.

누구보다 그대여서 더욱 기쁘고 고맙다.’

더하여,

강기슭에 닿으면 강물에서 나를 살린 통나무를 이제는 버려야 하지만

이제는 뭍에서 내 목숨을 살릴 뭔가를 잡아야겠지만

, 또 이곳에서 보낼 날이 있길 바란다는 그런 말도 했을 게다.

 

지난여름 뜻밖의 큰 후원금을 보내 살림을 도왔던 한 품앗이샘(그러니까 논두렁이기도)한테

가을도 지나고 겨울 한가운데 들어서야 인사를 하다.

지혜롭지도 똑똑하지도 재물이 넉넉하지도 않은 이가

좋은 가치관을 지켜나가기 결코 쉽지 않은 세상이니

물꼬의 일은 때로 대양의 돛단배 같고는 하지.

그런데 그런 도움들이 큰, 아주 큰 힘이 되다마다.

(가끔은, 물꼬의 뜻은 좋으나 아는 이들에게 짐을 같이 지운다 싶어

적이 미안하고 스스로 애처로워질 때가 있네.

예컨대, 스무 살이 된 아이가 아버지 사업에 기대 저도 돈벌이를 좀 하면서

달마다 1만원씩 논두렁 회비를 보내는데,

코 묻은 어린애한테도 후원을 받는 것 같은 마음이 들 때.

하지만 그게 또 이 멧골 모진 겨울을 견디게도 하는. 잘 살아야지 허리를 곧추세우는.)'

그래도 마음이 넘쳐 또 문자를 더하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번져가는 관계의 확산이 주는 고마움에 대해서도 생각했네.’

품앗이샘들끼리 애사를 챙겨 먼 길에도 인사를 가고 하는 걸 보며.

두루 고맙다는 말을 그립다는 말에 얹어 남도의 섬으로 보냈다.

사람마다 상대를 경외하는 덕목이 있을 것인데,

나는 대체로 착함을 그것에 둔다.(게다 똑똑하기까지 하다니!)

나는 착한 사람이 좋다. 그래서 나 또한 착한 사람이 되고 싶게 하는.

고맙네, 화목샘!

 

자정 넘어 마지막은 문자로 맺었다.

지난 여름계자를 끝내고 돌아갔던 그가 후원금과 함께 보내왔던 문자는 이러했다.

계원이 될려면 곗돈(논두렁)을 보내야 하잖아요.

오늘부터 적은 금액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좋겠어요.

조만간 또 계하면 좋겠어요ㅎㅎㅎ

지난 초여름 두어 해 건너 물꼬에 닿았던 그는,

계자 아이였고 새끼일꾼이었고 품앗이일꾼이었던, 이제는 논두렁까지 된 오랜 인연.

돌아온 그는 얼마나 눈부시던지.


우리 모두 대단히 훌륭한 사람 같은 거 안 돼도 된다.

나날을 로만 살아도 매우 훌륭한 일.

우리 아프지 말고,

슬플 때도 있겠지만 눈물을 닦을 줄 알기로!

 

그랴 그랴, ‘찾아뵙고란 말이 얼마나 찡한지.

그대는 누군가에게 그런 기쁨을 주는 사람임을 잊지 마시라.

살면서 누구에겐가 그런 의미만 되어도 아주 훌륭한 생이라 나는 믿네!

 

그대가 물꼬를 잊지만 않아도 그게 후원이고,

언제든 이곳에 오겠단 마음만 있어도 또한 큰 논두렁일세.

 

올 한해도 애쓰셨네.

이 찬 겨울 부디 따듯하게 보내고,

그대가 잘 살고 편한 마음으로 지내는 게 내게도 힘임을 아시길!


휘령샘이 그렇듯 나는 물꼬에서 그런 사람을 여럿 보았다, 보면 볼수록 진국인.

사랑한다, 윤지야!”

물꼬에 오고 소식을 주고받으면 자신이 너무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다지만

괜찮은 사람 같다가 아니라 괜찮은 사람임을 말해주고 싶었다.

, 나는 이곳에서 괜찮은 많은 어린 벗들을 만났고, 배웠다.

고맙다, 내 안내자들이여!

 

수능을 끝낸 한 친구가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달라기에

내 젊은 날에 잘 읽은 책에 더해 근자의 책 두어 권도 권하고

그 참에 두어 시간 책을 읽다.

도대체 몇 장을 나가지 못하였네.

대중서인데도 인용하는 책들을 살펴보니라고.

책읽기의 묘미는 이런 것이기도.

그에게 보낸 마지막 문장도 그러했다.

하나를 읽다보면 그게 다음에 읽고 싶은 책을 찾게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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