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3.나무날. 맑음

조회 수 349 추천 수 0 2022.01.08 16:35:36


 

아구, 머리야!”
이불 안에 좀 더 머물렀다. 짧은 잠시간 때문일 거라 여겨.

다시 일어났을 땐 두통이 물러갔다.

겨울90일수행 39일째.

수행에 더 충실하기로 하면 시간부터 넉넉하게 잡으니 마음도 또한 부드럽다.

천천히 몸을 다루고 대배를 하고 호흡명상.

얼마 전 갑자기 심하게 어깨를 흔들고 힘줄에 탈이 좀 났던 적도 있어,

움직임이 너무 크지 않게 한다.

겨울에는 더 조심해야 한다. 몸이 깨어날 시간을 주어야.

 

볕이 가장 좋은 때는 그 볕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바깥일이야 하면서 땀이 나니 굳이 해가 가장 높은 때를 맞춰야 하는 건 아니다.

물론 아주 추운 날에야 그렇지도 않겠지만.

대처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식구들 다녀갈 때 보내야 하니

다소 바쁜 마음으로 책장 좀 넘기고.

 

어제오늘 본관 전체 청소, 그리고 교무실에 어느새 또 쌓여있는 우편물들 들여다보기.

가마솥방 일정표 아래 식탁에도 어느 틈에 또 쌓여있는 것들을

보낼 곳에 보내고 버릴 것 버리고.

책방에 난로도 피웠다.

내일만 피워도 될 것이나 하루 일찍부터 찬기를 몰아내기로.

 

, 그때야 보았네, 납작한 우체국택배상자를.

학교아저씨가 상자를 눌러놓았나 보다 하고 무심히 지나치기 여러 날.

커다란 그림책 앞에

내가 특히 좋아하는 그의 글씨체가 담긴 엽서가 먼저 보였다.

우연히 그림책 한 권을 보고 선생님과 대해리가 그리워졌습니다.

선생님과 함께하던 대해리의 여름과 겨울, 그리고 적막한 동네 한바퀴.

지난날들에 선생님과 함께한 추억들이 참 많습니다.

어쩌면 스무 살 이후에 내 서정을 키운 건 대해리와 우리학교가 아닐까 합니다.

나는 자유학교의 아이인 적은 없지만 자유학교 출신임이 분명한 듯합니다.

이 문장을 쓰고 나니 가슴이 벅차네요.’

, ‘우리학교’!

우리는 여기서 만났고 우정을 나누고 자랐다.

나의 선생님나의 친구로 변해가는 시간이었다.

‘12월에 태어나심을 축하드리고, 이 광활한 우주에서 나와 인연을 맺고 우정을 나누어주어

고맙습니다. 오래오래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선생님이 읽어주신 <부엉이와 보름달> 만큼은 아니지만...

혹독한 겨울을 조금은 좋아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봄도 기다려지고...‘

겨울 밤 교실 벽에 스크린을 내리고 <부엉이와 보름달>을 읽어주었던 날을 그가 기억한다.

그리고 대해리의 모진 추위를 누구보다 그는 잘 안다.

내 모진 겨울을 염려해주어 더욱 고맙다.

좀 더 따스한 날들일 수 있을 것 같은.

새삼 이런 선물 하나가 칼바람 앞에 사람을 의연하게 할 수도 있구나 싶었네.

늘 그래왔지만 오늘도 고마워라.

일단 청소하고, 주말에 청계거든, 천천히 읽으리다!

별로 중요치 않다 여기는 생일을 덕분에 의미를 더하게 되었으이.’


밤에 방에 돌아왔을 때 엽서를 찬찬히 다시 읽고

<산책>(다니엘 살미에리 글, 그림/북극곰)을 펼쳤다.

, 거기, 계자에 온 아이들과 겨울산을 헤매고 돌아오던 우리에게 선물처럼 왔던,

꽁꽁 언 저수지 위에 새하얀 눈이 덮여 감탄사의 끝을 맺지 못했던 되살아나 있었다.

겨울 지나 봄이 온 대해리의 저수지도 담겨있었다.

그 봄이 매서운 겨울을 지나 이곳에도 올 것이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곰과 늑대가 나누는 우정도 우정이지만

책과 겹쳐진 우리들의 이야기가 오롯이 있었다.

서사를 지닌 관계들은 쉬 무너지지 않는다.

사랑한다, 내 벗들이여!

올겨울 아이들한테도 읽어주어야겠다.

그리고 학교 동쪽 산기슭에 있는 저수지를 함께 다녀와야지.

 

빚 독촉을 받았다. 글 빚이었다.

해가 가는 즈음에 물어온 안부이기도 했고.

지난해 10월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다시 10월이 갔다.

5월 말에 원고를 넘기려던 계획이었고,

공저자인 아들의 병원실습으로 출판사에 양해를 구하고 이 겨울까지 온 일.

다음 주쯤 문자나 메일을 보내야지 했는데 기회를 앗겼다.

아들은 인터넷신문에 기사도 쓰고 책도 읽으며 문장 연습 중이고,

우리는 어째도 이 방학에 원고를 마무리한다는 계획,

자주 얼굴 맞대고 이야기 하고 걷고 뛰고 있다고, 합숙훈련처럼,

이런저런 소식을 전하다가

아쿠, 안되겠네, 문자가 길어져 메일로 넘어가 밤에 답하겠다 했네.

상담 문건 하나 쓰고 나니 새벽 3,

낼 드린다 다시 문자 넣어 놓았다.

 

지난달 왜 대부료 감면 소식이 없냐고 교육지원청이며 도교육청에 재촉을 했더랬다.

곧 공지가 왔고, 서류를 보냈고, 다시 여러 날이 갔다.

연말은 어디라도 살림들이 빠듯할 테다. 이 멧골도 이즈음에 챙길 고지서가 적잖다.

오늘 승인처리가 되었다. 숨통이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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