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7도를 예견하는 밤.

밤이 깊을수록 대기가 얼수록 별은 존재로 더욱 빛난다.

마침 해를 비껴간 솔라등이 켜지지 않아 대문 앞이 까만 밤,

길 잃은 산속에서 발견한 먼 마을의 불빛처럼 마른 가지 사이 별들이 총총했다.

오전 달골에 난방기름을 배달 온 아저씨가 눈이 벌개지고 얼굴이 얼어붙었다.

장작도 연탄도 전기도 아끼지 않으리라 했지.

하필 청소년 아이들이 와 있을 시간이 이 겨울 가장 매서울 날씨라네.

세상에서 천 길 낭떠러지보다 추위가 가장 무섭지만

깊은 멧골 대해리의 모진 바람이 또한 나를 단련시켜주기도 하나니!

규모가 적어 수행방을 쓰지 않을 듯도 하나 아침부터 아궁이에 장작을 잔뜩 지폈네.

 

물꼬는 참...

1225일에 청계라니! 자주 다소 무모한 물꼬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그래도 올 수 있는 이는 올 테고, 못 오는 건 또 먼저 선택해야 할 일이 있을 테다.

추워서 도저히 못 오겠다는 이도 있었다.

성탄행사로 못 온다고 미안하다 전한 이도 있었다.

나는 그대의 행복에 관심이 있다. 그대 마음이 좋은 게 중요하다.

아무쪼록 늘 자신에게 더 이롭고 가치롭고 중요한 일을 먼저 하면 됨.’

그쯤의 문자들을 보냈을 것이다.

한편, 게으름 혹은 먼저 하겠다 생각한 다른 일을 털고 물꼬로 오게할 만치

그간 청계를 매력적인 내용을 채우지 못한 건 아니었나 반성도 좀 하다.

내용을 덜 촘촘하게 생각해보는 성찰을 낳기도.

 

청계 여는 날,

마침 대처 식구들도 들어오고 준한샘도 손을 거들고 가니

밥상은 두 자리로 나뉘어졌다.

거드는 어른 넷, 청계 구성원 넷.

요새 대체로 물꼬 일정이 그런 구성비; 진행자:참가자=1:1

저희도 백신 2차까지 다 맞았어요.”
중고생 안 맞은 애들 많던데...”

그래도 놀러 다니고 하려면...”

모두가 접종을 마쳐 일정을 진행하는 마음이 조금 덜 무거웠다.

코로나19가 덮친 세상을 우리 꼭 2년을 건넜다.

지금은 변이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시기.

 

고마워라, 해가 짱짱했다.

이렇게 매서운 날 흐리기라도 하면 얼마나 서글플까.

바람도 없었다.

엊저녁 준한샘은 달골 대문께 벚나무와 호두나무 가지를 잘라

혹 바람에 아이들한테 마른 가지라도 떨어질까 정리를 했고,

하다샘은 크리스마스 풍선 글씨를 가마솥방의 밥상머리 무대 위에 걸었다.

더하여 지난주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가 오름이 되어 대표화면을 장식하며 받게 된 원고료로

성탄케잌을 내놨다.

청계 아이들 맞이라.

기락샘은 습이들이 사람들을 애타게 부르지 않게

미리 산책을 시켜주었고,

학교아저씨는 가마솥방과 책방 난로에 연탄을 넉넉히 넣고,

뒤란 화목보일러에 장작을 잔뜩 집어넣어 본관을 데웠다.

혼자 살아도 한 살림,

아이들 몇 아니어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한 청소처럼

여기저기 난방을 넉넉히 했다. 아니 더 했다.

날이 차기도 차고, 사람 없으면 더 추울까 봐.

 

같이들 버스를 타고 아이들이 왔다.

김이 서린 가마솥방 창으로 아무것도 내다보이지 않았지만

제습이와 가습이가 짖는 소리의 높낮이에 우리 아이들이구나 싶었다.

어떤 것 앞에 섰을 땐 그게 전부 같아도 또 다른 것들이 내 삶을 채우고도 있다는걸,

그저 달리다 멈춰서서 흔들고 깨우고 생각하는 시간이 될 수 있을 청계이다.

낮밥은 두부두루치기.

싱싱한 바지락을 듬뿍 넣고, 손두부를 두툼하게 썰어 넣었다.

곁에 있는 불 위에서 칼국수를 삶고.

그런 유혹이 있다, 달고 짜고 매우면 맛있다는 말을 들을 확률이 높다는.

순한 맛에도 다행히 모두 먹고 또 먹었다.

우리들 먹성의 시작이었다.

하다샘이 모두 오느라 애썼다고 낮 설거지를 해주고 퇴장했다.

 

차부터 한 잔 마시면 안 돼요?”

왜 아니겠는가. 오래 익은 아이들이 그렇게 내가 진행에서 놓치는 것들을 챙긴다.

상을 물리고 차부터 달이다.

수놓은 차깔개를 놓고 정갈하게 홍차를 내다, 다식과 함께.

이미 실타래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물꼬 한 바퀴

공간안내지만, 오래온 이들이 이 공간을 모르는 게 아니지만,

물꼬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를 되짚어보는.

그냥 공간 안내잖아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보게 되고,...

또 물꼬처럼 살기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다른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게 참 좋은 거 같애요.”

건호가 말했다.

 

예술놀이는 겨울에도 피어있을 꽃 만들기.

올 겨울 초등계자에서 할 일정 하나를 미리 연습하기.

플라스틱병으로 꽃을 만들고 아크릴물감을 칠하고, 버려진 옷걸이로 꽃대를 만드는.

별 대수로울 것도 없을.

그러나 지리한 삶은 언제가 그것을 바라보는 눈에서 신선해지지.

물꼬 정신이 들어있는 시간...”

건호의 말은 버려진 물건들을 다시 씀을 말하는 거겠지.

성빈이 형이 주도해 주어서...”

미술활동을 딱히 재미있어하지도 재주가 있지도 않다는데,

재미를 내고 있었고,

자칫 시들할 수도 있었을 동생들이 달싹달싹 흥을 내게하였다.

일수행은 사과잼 만들기.

달골의 세 그루 사과나무에서 거둔 사과다.

꼴만 보자면 결코 짐작 못할 맛이다.

겨울의 신선한 바람까지 담은 맛.

더러 썩은 것 곤 것도 있었지만 대체로 짱짱했다. 다소 작았지만.

사등분하고 씨를 자르고 껍질을 벗기고 다지고.

먹어가며 해.”

벌써 그러고 있어요.”

이것도 물꼬정신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네요.”

버려지기 수운 걸 잼으로 만들고 있다고.

사과깎기 연습도 되네요.””

그림활동으로만 끝나지 않을까 싶더니, 오래 맞춰온 손발들이라

살뜰하게 시간을 채웠다.

이래서도 청계 질감은 34일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저녁은 기사식당 백반집처럼.

찬이 많네요.”

채성이가 말했다.

그래, 그런 밥상을 차리고 싶었다.

바삐 쑨 도토리묵이 찬 날씨 덕에 서둘러 굳어져 고마웠네.

멧골 묵은지도 빼놓을 없지. 찌개에 부침개까지.

두부조림과 떡볶이와 미역줄기무침과. 무말랭이무침, 지고추무침, ...

묻은 김장김치와 파김치를 꺼내오고.

후식으로 하다샘이 사온 케잌을 먹었다.

인터넷 뉴스매체에 쓴 글이 머릿기사가 돼

원고료로 청계를 위해 쏘아준 성탄선물이었더라.

아이들이 오는 시간 물꼬 안에 있는 손 말고도

내놓는 마음들이 얼마나 많은지!

 

고구마 없어요?”

이 아이들, 아는 게지, 이곳을.

가마솥방 안 난로가 절절 끓고 있었다.

계자에서는 벼를 벤 빈들이나 마당에 불을 피우고 구워먹는 고구마.

저 난로에 주전자의 엉덩이를 비집고 고구마를 올리면 딱 좋겠지.

마침 남은 고구마였더라.

호일에 싸서 올렸다.

먹을 게 많은 저녁이니 달골로 가져가 한밤에 실타래를 하며 먹으리 했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한쪽에서는 사과잼을 만들었다.

끈기를 포기하는 대신 설탕을 덜 넣어 요걸트든 뭐든 섞어 먹는 용도로.

이 크기 유리병이 딱 세 개잖어. 셋 아니었음 못 가져갔어!”

잼이 되는 동안 그림책도 하나 같이 읽었다.

엊그제 아리샘이 보내온 <산책>(다니엘 살미에리).

우리 모두 거기 나오는 그림처럼

그렇게 꽁꽁 얼고 눈이 하얗게 덮힌 그런 대해리의 저수지를 아는 사람들.

어린 곰과 늑대가 나눈 우정처럼

우리가 걸었던 그 길들을 떠올렸네.

각자 병에 잼을 담는 걸로 마무리.

 

듣고 좋은 소리도 삼세번이라, 그래도 세 번만 더 말할 게; 너무 좋다!”

괜찮아요, 앞으로 150번 더 해도 돼요.”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나온 아이들과 앉았으니 느껍고 또 느껍다.

내리 두 번의 계자를 이어서 하고 다시 일주일을 남고, 방학을 다 보냈죠.”

우리 그랬다, 성빈이도 건호도.

2월에 며칠 따로 불러 함께 지내기도 했던.

그들의 엄마들은 물꼬의 오랜 밥바라지였기도.

그런 밥바라지들을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전체 진행을 충실하게 도우며 뒷배가 되셨던 분들,

당신들이 계셨을 때 계자가 수월했기야 두 말하면 잔소리.

어느새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모가 되었을지도.

채성이만 해도 처음 왔던 2학년 이래 계자를 빠져본 적이 없다.

좋다, 아무리 말해도 좋음을 크기를 다 말할 수가 없다.

이런 감정의 색깔을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게다.

이 아이들과 지난 한 학기를 톺아보고, 새 학년을 맞는 마음을 준비하리.

 

날이 차니 일찍 달골에 오르기로. ‘실타래는 거기서.”

집단상담쯤 되는, 청계의 백미라고 하는 시간.

늘 그렇기도 했지만 이번 청계는 세상의 모든 질문이라 제목을 붙었노라 하였네.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을 생각하면서.

절집에서라면 즉문즉설일 수도 있을.

, 달골 문설주 위 둥근 솔라등불이 푹 꺼져있다.

그것이 밝혀줄 길인데.

해가 닿지 않는 거다. 아침에는 아예 닿지 않고 서쪽 볕을 좀 받을 수 있을 때.

챙기지 못했네. 고장은 아니겠지, 아니기로. 서향으로 집열판을 살짝 돌려놓다.

환히 밝혀주지 못해 아이들에게 미안했네.

 

각자 준비한 책과 이야기들을 풀고 나누었다.

함께한 동그라미 안의 사람들만 속내를 알 수 있는,

서로 안전망을 만들고 하는 이야기들.

진솔할 기회가 드문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어 좋았다고,

이런 이야기들이 흔히 진지충 소리를 듣고는 하는데

이곳에서는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어 고맙다고,

첫걸음한 이는 진지한 대화들에 새롭다 했다.

때로 우리는 진지한 이야기도 필요하나 할 데가 없었던.

사람 몇 안 되니 나도 같이 한 꼭지를 준비하였네.

돌려가며 시를 읽으며 시가 내 목소리를 타고 몸밖을 나오는 경험을,

타인의 목소리가 시로 흐르는 경험도 나누고,

<유한계급론>(소스타인 베블런)의 일부 문장을 읽었다.

, 베블런효과!”
, 그게 바로 이 책에서 나왔지요.”

아이들도 사회 시간에 들어봤던 이름.

우리가 가진다는 것, 내 가진 게 내 것이라는 착각들에 대해서 짚어보다.

 

, 자정이 지나 1시로 향하는데

우리는 세상을 바꿀 전사들이라도 되는 양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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