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 14도를 기록하고 있다는 학교였다.

(달골에도 온도계를 하나 두어야겠네.)

해를 얼어붙은 멧골을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유리창을 깨뜨리듯 나타난 태양, 고마웠다.

 

겨울산에서 쓰는 침낭 안이었는데 거실은 추웠다.

천장이 높고, 3층 더그메에 이불을 걸어 문처럼 늘였지만

집 전체를 데운 난방이 아니어 바람이 많았다.

1층만 보일러를 틀기로 했고,

혹 아이들이 자는 오신님방도 바람이 많이 스밀까 하여

이불을 말아 방문 아래 놓아주었다.

매우 따뜻했다고 했다.

바깥이 매서울 땐 더욱 몸이 잘 데워 있어야지.

 

천천히 아이들을 불렀다.

간밤 일정이 밤 1시까지 있기도 했고,

쉬는 느낌도 있는 해날 아침이면 좋을 테지, 날까지 엄청 춥다는데.

늦잠을 간절히 원한다던 아이들을

햇살이 이 골짝 저 꼭대기에 닿겠다 싶은 때 깨웠고,

아침뜨락으로 갔다.

건호가 어제 다친 발목 부기가 심해져 방에 머물며 이불을 개기로 했고,

우리는 찬바람에 맞서며 아침뜨락을 걸었다.

새로 꽂은 팻말이며 달골을 지키는 난나 티쭈 뚱카 이카들을 불렀고,

저 건너 산토끼의 안부도 물었으며,

꽃이 보이지 않는 대신 그 꽃핀 시절을 읊어주었다.

대나무수로와 토끼샘과 뽕나무를 휘돌아가는 실도랑이 꽁꽁 언 진풍경을 봤다.

조금 서둔 걸음으로 미궁도 다 돌고 한가운데 느티나무를 향해 만트라도 불렀네.

밥못 얼음장 밑에서 움직이는 한 마리 버들치도 보았고나.

이 겨울 지나며 제일 먼저 얼굴을 내밀 수선화를 상상하며,‘

새로 심은 은행나무를 노란 세상을 또한 그리며 뜨락을 나오다.

 

학교에 내려가 할 해건지기였다.

달골에서 마저 일정을 진행키로. 몹시 춥기도 추우니.

오신님방 문을 열어놓고 한 사람은 밖의 복도에서

나머지 셋은 방 안에서 서로 볼 수 있도록 깔개이불을 깔았다.

몸다루기, 대배 백배, 호흡명상이 이어졌다.

채성아, 물꼬 샘들이 아이들을 맞으며 아침마다 이렇게 한다.”

백배를 다요?”

아이들을 맞는 어마어마한 일을 하자면 그 정도는 해야지!”

땀 때문에도 샤워들을 해야 했네.

 

역시!”

겨울아침은 국밥이 최고지.

콩나물국밥은 시원키도 하다.

7일분을 했는데 더디 온 2인분을 위해서는 김치국밥을 더해야했네. 콩나물을 다 먹어서.

조금 느리게 진행한 일정이어 짧은 실타래가 한 차례 더 있었으나 말 몇 마디로 건넜다.

내가 가진 것이 내가 아니라는 어제 실타래 끝의 말을 받아

좋은 조건에서야 누구나 잘하기 쉽지,

거친 상황에서 제 모습이 드러나더라,

내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유세 떨지 말고

나를 곧추세워 나가보자는 이야기 정도.

생각이 좋은 사람들이 공부도 잘하면 좋지 않나,

열심히 해서 좋은 세상에 일조하자,...

 

, 뚝딱 예술놀이가 더해졌네.

어제 각자 가져가려고 담아둔 사과잼병을 가져와

한지로 포장하고 종이끈으로 묶고 작은 좋이가방에 넣기.

한지는 아이들이 꽃잎그리기 연습을 한 것,

종이끈은 아이들이 만들기하고 남은 조각,
종이가방은 와인가방을 잘라 아래만 쓰거나 위에 손잡이 달린 걸 바닥을 막아 쓰거나.

후다닥 손발들이 어찌나 잘 맞는지.

오래 만나왔던 인연들이다.

서사가 있는 우리들이다.

채성이만 초등학교 전 시간을 물꼬랑 보냈고,

성빈이가 열네 해를 향한 인연인가요.

건호가 십년이 넘어가는 해이던가요.

잘 자라는 아이들을 보는 기쁨, 교사에게 그거 말고 더 무엇이 있겠는지.

보지 못하더라도 어딘가에서 그렇게 또 잘 자라고 있을 아이들, 그러면 되었다.

 

아이들이 갈무리글을 쓰는 동안

아침 설거지를 하는 한편 낮밥 준비.

빵을 냈다.

하나만 더 왔어도 이거 못 먹었어! 하하.”

세 팩이 남아있던 흑임자베이스를 꺼내 우유를 데워 라떼를 만들어주었다.

아침밥상을 물린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하나 더?”

그렇게 또 하나 더, 또 하나 더, 마지막 하나를 먹었다.

건호의 발목 때문에 영동역까지 실어다주기로 하자

영동역까지 1시간이 걸리는 버스 시간에 맞추지 않아도 되어 여유가 생겼다.

날도 추운데, 뒷정리도 하고 힘들텐데...”
저녁답에 나기기로 했던 기락샘과 하다샘이

서둘러 아이들을 태워다주며 나가기로 해서 일을 하나 덜었더랬네.

애들 잘 보냈어요!’

하다샘의 문자가 들어왔다.

 

꺼내왔던 물감들이며 청계에 나온 물건들을 들여놓고, 부엌을 정리하고,

다시 달골 올라 햇발동을 여미고 나오다.

썼던 수건들이며는 날 좋은 날 빨기로.

일을 돕지 못하고 가서 미안하다던 청계 구성원들이다.

아니 아니!

날이 얼마나 매웠느뇨.

게다 계자에서 아이들과 할 작업을 미리 해봐주지 않았느뇨.

그것도 일이지, 아암.

고단했을 학기, 쉬어만 간다해도, 그래서 힘을 비축하고만 가도 고맙지.

 

각자 숙제를 하나씩 또 안고 갔다. 잘 살아서 서로에게 힘이자!

잘들 가시었는가...

건호 발목이 고생이겄다...

그 아이는 발목의 불편에도 찡그리는 법이 없었다.

시간마다 공간마다 긍정을 발견하고 그걸 또 말로 전해주는 그의 행보가 고마웠다.

물꼬가 자신을 키운 바가 크다 했지만

물꼬가 그랑 보낸 날들에 그에게 얻은 바 역시 적지 않았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키웠다 생각하지만

사실 아이들이 우리 어른들을 사랑한 힘으로 그 세월을 어른들이 견뎠다.

당연히 물꼬 또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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