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잠 좀 자자 해도 빈들모임을 포함한 주말학교에서 우리들의 밤은 늘 늦었다.

그럴 밖에. 사흘은, 이틀의 밤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니.

무거운 눈꺼풀을 걷고 모두 아침뜨락을 걸었다.

딱따구리며 벌써 한바탕 아침밥을 먹고 나갔다.

세상에 새들이 그리 많은 줄 우리 알았던가.

아고라에 앉아 말씀의 자리에서 자신의 말을 나누었다.

겨울 가뭄이 깊어 밥못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궁에서 꽃그늘길로 내려오면서 모두 돌을 몇 움큼씩 주워냈다.

아침뜨락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 사실 그것인데,

손을 보태러 사람들이 올라치면

그들로서도 애씀이 눈에 보이는 일을 맡기고파

번번이 돌 줍는 일은 밀린다.

그렇다고 상주하는 이로서 그 일을 하자니 닥치는 일이 늘 턱밑이라...

기계로 풀을 깎아야 하는 너른 곳에서

일하는 이가 번번이 튀는 돌에 다리를 다치거나

기계 두 대가 다 멈추기 여러 차례.

올해는 돌부터 좀 주워내자 한다.

 

먼저 내려와 아침을 짓고,

학교아저씨는 이른 아침 화목보일러 불을 피웠다.

아니, 왜 이렇게들 안 오지...’

아침밥상을 몇 차례는 차렸을 시간을 지나 습이들 짖는 소리를 듣는다.

큰형님느티나무까지 걸어갔더란다.

달골에서 마을로 내려오며 멀리 큰형님느티나무를 건너다보십사 했는데,

거기까지 가고 싶었거나 안내가 잘 전달되지 않았거나.

어쨌든 괜찮았다. 바쁠 일이 없었고,

마을을 굽어보는 커다란 느티나무를 가까이 안아보는 것만도

기운을 북돋는 일이라 믿으므로. 잘들 다녀오셨다.

 

수행방.

전통수련으로 몸을 풀고, 대배를 백배하고, 호흡명상.

그리고 나눔.

고마워라, 우리가 이 두메에서 아침에 이렇게 모여 앉아 수행을 하고 있다.

더 바랄 게 없는 것 같은.

마음이 아팠다면 치유가, 몸이 아프다면 치료가 거기 있을.

그리고 힘을 낼.

사는 일이 자꾸 힘을 내야 되더라.

 

떡만두국이 나온 아침상을 물리고 차를 달였다.

윤호샘은 커피콩을 갈아 커피를 내렸다.

이거 우리 재훈샘이 사준 거지!”

달골과 학교에 머리건조기도 그가 사들여준 거다.

다섯 살 때 만나 서른이 된 그이다.

혼자 세상을 헤쳐나오면서도 물꼬살림을 살펴주는 논두렁이다.

우리는 이런 걸 자랑하고 싶었다.

사람 사는 게 별 거 아니다, 이렇게 성장하고 마음을 나누고 그런 거라는.

 

오전 오후 공동창작이 있었다.

모둠방 게시판 한 면을 바꾸는.

물꼬 학교이념인스스로 살려 섬기고 나누는 삶, 그리고 저 광활한 우주로 솟구쳐오르는 나.’가 주제였다.

건호 형님의 제안이었다.

까만 바탕에 우주를 담기로.

거기 갖가지 크기 별을 접어 붙이고, 행성과 위성과 혜성도 넣고.

우주로 향하는 나는 재훈샘이 맡아 그렸다.

세상에! 그런 재주가 다 있더라.

마지막으로 윤호샘이 하얀 물감을 뿌려 미리내를 만들었다.

, 한 시절이 갔다.

게시판에 먼저 있던 것은

2005년 상설학교 아이들이 종이를 접어 바닷속을 표현한 대작이었다.

오래되기도 했고, 이제는 그때와 다른 세월을 사는 물꼬라.

안녕, 우리들의 한때.

지금도 그런 과거가 될.

그리고 우리도 그 과거가 되는 날이 올.

 

낮밥으로 수제비를 먹었다.

사람 수가 좀 되면 잘 하지 않는 음식이겠다.

아침을 먹고 샘들이 볼을 잡고 같이 반죽을 했더랬다.

냄비를 두 번 올렸다.

어제 사람들이 들어오기 직전의 긴급 상황을 살펴주러

점심에 준한샘이 들어와 학교의 온풍기들을 확인하고 떠나려할 때

마침 들어온 기락샘도 있어 두 사람이 먼저 밥상에 앉은.(낮밥이 늦어지고 있어서)

 

뭐 안하기’.

낮밥을 물리고 1시간,

누구는 자고 누구는 책을 읽고 누구는 불가에서 뜨개질을 하고 담소를 나누고.

 

저녁 때건지기.

밥에는 은행도 넣고 호두도 넣고, 반찬은 이 골짝서 나온 것들이 여럿이었다.

묵도 쑤고, 건 가지나물이며 취나물이며도 내고, 시래기국을 놓았다.

기도 같은 밥이라.

이 밥을 먹이자고 오십사 하는 교육 일정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다시 실타래단법석‘.

각자의 고민들이 있었고, 다른 이들과 나누고픈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 시대 화두답게 페미니즘과 이대남(20대 남성)에 대한 저마다의 의견들도 있었다.

우리는 때로 첨예하게 대립했고, 연대했다.

이 시간을 보내며 어떤 마음들이 내게서 오고 갔는지 나눔하겠습니다.”

지윤샘이 그랬다, 마흔 몇 해를 살아오면서 토론의 경험을 처음한 것 같다고.

서로 존중했고, 애써서 들었고, 정성껏 말했다.

그런 생각도 하였네,

우리가 생각은 서로 다른 극에 있을 수 있지만 감정 만큼은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서로 설득은 할 수 없을지라도 사람으로서의 마음을 나눌 수는 있지 않나 하는.

그리고 곡주와 노래와 맛난 것들이 넘친 밤.

소나기 한차례 지났다.

 

, 모두 달골에 걸어 올랐다.

진행 차량이 한 대는 올라가나(먼저 내려올 아침을 위해서도)

살짝 언 길이 걱정이었다.

걱정보다는 불편을 택하기로.

오늘도 밤이 늦고 늦었더라.

 

일정을 진행할 때 공간의 질서에 대해 고민할 때가 있다.

계자의 경우에는 미리 그 선을 정하고 공지한다.

어떤 질서(규칙이라는 말과 좀 다르게 물꼬에서 쓰이는 용어)를 만드는 것은

서로 동선이 엉키지 않기를 바라서이고

마찬가지로 순조로운 일정 진행을 위해 그런 걸 분명하게 하는 게 필요하다.

예컨대 부엌 곳간은 학생부장샘까지 드나들 수 있음, 그런.

한 예로 밥바라지가 먹을거리의 규모를 알고 자신의 움직임대로 쓰임새를 정리해두었는데,

그걸 밤에 야참으로 먹어버린다든지 하면 곤란하다.

두어 해 전의 한 모임에서 곳간에서 여분의 칫솔을 한 샘이 썼는데

미처 확인못한 중앙에서 아직 칫솔이 있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못했다든지 하는.

공간에 대한 조심스러움, 그런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어른의 학교는 어른들 중심이니 좀 느슨하기도 하고

모두가 참가자이면서 진행자이고 보니 경계가 불분명하기도.

staff only, 관계자 외 출입금지 그런 게 필요할 때가 있다.

(병상에서 회복하지 못한 몸으로 움직이며 손이 더 가지 못한 부엌 곳간의 먼지를

타인이 벌컥 문을 열고 보는 게 내가 불편했을 수도)

그리고 그의 행위가 아니라 나의 행위로 보건대,

나는 애쓰는 누군가를 돕자고 나선 일이, 그의 힘을 덜어주려고 내가 더 움직인 일이

그에게는 무례할 수도 있었겠다 새삼 돌아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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