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많다.

학교 가마솥방 앞 싱크대 창 아래는

수선화가 일제히 나팔소리를 내고 있는 중.

 

아주 천천히 일어나 퍽 천천히 수행을 한다.

보름 가까이 움직이지 못할 일이 있었고,

엊그제 달날부터 출근하고 있다. 사흘째 무사하다.

오늘은 더 힘차게 호흡해서 제습이와 가습이 산책을 시켰다.

좋아하는 그들을 보며 그들도 내가 지켜야 할 존재들이란 생각이 새삼 들었다.

 

절반은 밖에서 대단히 천천히 움직였다.

아침뜨락에 들어 한 공간에서 마른 거름을 밟았다.

밥못에서 달못으로 물이 가는 묻힌 관에서 땅으로 살짝 드러나는 한 부분이 있는데,

그곳에서 매우 가느다랗게 새는 물줄기가 있었다.

오늘 본 건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제부터 이걸 임시방편으로라도 뭘 좀 해야는데, 밤에도 아침에도 그 생각을 했다.

호미로 관을 드러나게 파고 부위를 찾아 전기테이프로 감아주었다.

오래 그리 둘 상황은 아니다.

관을 자르자면 그곳을 이어줄 부품이 있어야 하는데,

몸을 원활히 움직일 수 있을 때 하는 게 좋을 테지, 다음 주에 하자 한다.

 

교무실 일들.

코로나19 상황이 어느 쪽으로든 교통정리가 되려는 모양이다.

작년에는 거의 하지 못했던 외부 강연인데

약속이나 한 듯 두 곳에서 강연요청이 들어왔다,

교무실 응답기에 남겨진 건 어제 들어온 것이었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의 작가초청.

아직 답을 못하고 있는데 출판사를 통해서도 다시 메일이 왔다.

강의료도 적지 않은 데다 먼 곳이라 숙박비까지 지원해주겠다 했다.

이제 외국여행을 떠날 움직임들이 꿈틀대나 보다.

너무 멀어 고민이 좀 된다 하니 아들의 문자,

그래도 책 읽고 강연 보고 애들 계자도 많이 오던데!’

호텔을 잡아준다고 하니 여행 삼아 다녀올 만도.

 

교육청에서 다음 주에 있을 협의회 전,

보수가 급히 필요한 세 곳의 사진을 다시 챙겨 메일을 보내다.

두어 가지 서류를 챙겨서 보낼 곳들 보내기도.

행정 일이 서툴지만 어쨌든 한다.

내 일을 누가 대신해줄 수 없다고 생각하면 일은 어떻게든 된다.

대체로 다른 샘들이 밖에서 거들어서 되는 일들이나

세상 속에서 그들은 또 얼마나 분투하며 살고 있을 것인가.

시간이 걸려도 내가 더 해야 된다는 생각들을 한다.

 

챙겨야 할 인사도 몇 보낸다.

한 대학의 동아리에서 졸업생들이 모임을 이어가며

오랫동안 물꼬에 논두렁이 되어주었다.

한 인연이 거기 닿아있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고, 그래서 인사 한 번 보낸 적이 없다.

그동안 보태준 마음으로 굳건히 잘 지내왔노라고,

오늘은 물꼬 연을 통해 그곳에 우리 거둔 먹을거리를 좀 보내고 싶다 말을 넣어두었다.

 

여러 호소들이 닿아있다.

밤새워 일을 하고 또 출근을 한 청년이 문자를 보내왔다.

너무 힘들다고, 마음도 몸도, 물꼬 가서 울고 싶다고.

잠을 못 자서도 더 그럴 거라고, 단 거를 좀 먹어보라고,

일이 안 될 때도 있지만 어째도 내 일은 내가 해야 하는구나 하고

어찌어찌 해나가면 결국 지나간다고,

그런 작은 성취가 또 다음 걸음을 걷게 한다고 말해주었다.

서로 멀어지는 연인들에게도 말을 보탰다.

가까우면 기대가 생긴다. 그런데 내 기대대로 하지 않았다고 상대가 나쁜 건 아니지.

사람은 대체로 언제나 자신에게 필요한 일, 중요한 일, 사랑하는 일들에 시간을 바치는 법. , 때로는 의무감으로도 하겠네.

누군가에게 내가 첫 번째가 아니라고 해서 내 삶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님.

내가 상대에게 매력이 없어진 게 상대의 잘못도 아님,

그리고 그에게 내가 매력이 없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의 매력이 사라지는 것도 결코 아님!’

상대가 자신을 위해 기쁘게 잘 살아주면 나도 고마운 일 아닌가,

그런 게 사랑 아닐까 싶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이 멧골에서도 멀리 있는 누군가를 위해 말을 찾을 수 있음을 기쁘게 여긴다.

고마우이, 내게 삶의 기쁨을 주는 그대들이여!”

 

가까이서 확진 받은 사람들 많아 조만간 우리 차례가 올 것만 같더라니’,

그렇게 확진을 받은 사람들의 소식도 닿는다.

덜 아파야들 할 텐데.

, 힘냅시다. 지독하게 우울 할 때 그대 생각이 내게 힘이 되었듯

그대 서글플 때 여기 굳세게 살아가는 내 삶으로 힘을 보탬세.’

그래서도 단단하게 살아야겠다.

 

04시에야 강의초록을 보내고 자려는 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5916 2022. 3.17.나무날. 비 옥영경 2022-04-20 287
» 2022. 3.16.물날. 맑음 / 그리고 그대에게 옥영경 2022-04-05 417
5914 2022. 3.15.불날. 맑음 옥영경 2022-04-05 354
5913 2022. 3.14.달날. 비 옥영경 2022-04-05 359
5912 2022. 3.13.해날. 비 옥영경 2022-04-05 366
5911 2022. 3.12.흙날. 흐림 / 굳이 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옥영경 2022-04-05 327
5910 2022. 3.11.쇠날. 흐림 옥영경 2022-04-04 326
5909 2022. 3.10.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2-04-04 303
5908 2022. 3. 9.물날. 맑음 옥영경 2022-04-04 307
5907 2022. 3. 8.불날. 맑음 옥영경 2022-04-04 320
5906 2022. 3. 7.달날. 맑음 옥영경 2022-04-04 300
5905 2022. 3. 6.해날. 맑음 옥영경 2022-04-04 298
5904 2022. 3. 5.흙날. 맑음 / 경칩 옥영경 2022-04-04 343
5903 2022. 2.28.달날. ~ 3. 4.쇠날. 맑거나 흐리거나 옥영경 2022-04-04 323
5902 2월 어른의 학교(2.25~27) 갈무리글 옥영경 2022-03-24 519
5901 2월 어른의 학교 사흗날, 2022. 2.27.해날. 밤 눈싸라기 폴폴 옥영경 2022-03-24 468
5900 2월 어른의 학교 이튿날, 2022. 2.26.흙날. 밤 소나기 지나다 옥영경 2022-03-24 381
5899 2월 어른의 학교 여는 날, 2022. 2.25.쇠날. 맑음 옥영경 2022-03-24 395
5898 2022. 2.24.나무날. 맑음 / 러시아, 우크라이나 진격 옥영경 2022-03-24 379
5897 2022. 2.23.물날. 맑음 / 우리는 그렇게 우리가(또한 각자가) 되었다 옥영경 2022-03-24 351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