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25.쇠날. 흐리다 밤비

조회 수 341 추천 수 0 2022.04.22 13:40:33


소나기인가, 후두둑거렸는데 비가 아니었다.

늦은 오후 태풍이라도 오는 것 같은 바람이 일었다.

한밤에 굵은 비를 예보하고 있었다.

그대로의 밤이었다. 세찬 기세로 비 내리고 있는 밤.

 

낮 기온이 21도까지 올랐다.

낮밥 뒤 아침뜨락 물관 한 부분을 손보았다.

밥못에서 달못으로 내려오는 묻힌 관 가운데 드러난 부분이 있는데,

물이 새고 있었다. 드러나 있어 다행했다.

겨울을 지나며 생긴 틈인가 보았다.

얼마 전 해동기에 발견했고, 임시처방을 해놓았다.

오늘 25mm 관 이음새를 사 와서 부위를 잘라내고 이었다.

걱정이 많던 일이라고 해서 시간과 힘을 그 크기로 꼭 요구하지는 않는다.

간단한 일이었다. 힘은 좀 썼지만.

 

약속 없이 찾아온 이를 만났다.

부리나케 학교로 내려갔다.

마침 전화기가 울렸고, 마침 보았고, 마침 갈 만했다. 반가웠다.

신비하기도 하지, 며칠 전부터 그에게 물을 일이 있었다.

같이 지역에서 공부모임을 여러 해 했고, 아주 가끔 소식을 주고받고 있었다.

얼굴 보기로야 수년이 지났다.

마침 여기 공무가 생겼고, 미리 계획되어있던 일이 아니어 역시 미리 연락하지 않았고,

온 걸음에 혹시 하고 했다는 전화였다.

동행 둘이 있었고, 한 시간여 차를 나누었다.

물을 일이야 따로 전화로 해도 되었고.

어제부터 상심의 시간이 있었다. 딱 그 시간을 건너 전환의 순간 들어온 연락이었다.

그런데 또 신비하기도 하지. 저마다 무거운 마음들이 있었던 거라.

신비가 아니기도 하다. 우리 마음은 늘 서걱거리는 일들을 겪으니까.

저는 저를 소개할 때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하고픈데

그 말을 하는 순간 아, 나는 수행자이지 하고 깨닫게 돼요. 정신 차리는 거지요.”

그리고 내 말들을 나누었다.

내 마음을 잘 지나느라고 말한 어떤 문장에 아, 모두가 제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다.

왔던 이들이 말했다.

요새 계속 투덜거리고 있었는데,

여기(근무지) 와서부터 계속 한 가지에 뱅글뱅글 돌고 있었는데...”

어제 엄청 화 나는 일이 있었는데...”

그건 별 대수로운 문장들도 아니었다.

꽃이 폈다. 바깥에 좋은 것 많다. 나가 놀아라. 네 생각 바깥으로 나가 놀아라.’

만남이 서로를 살리는 순간이었다.

사람이란 이런 것으로도 또 산다.

고맙다. 벗이 와서 좋았다.

 

습이들 산책을 시켰다.

그들을 데리고 다니며(둘이 아직도 으르릉 댈 때가 있어서 따로 따로)

당연하겠지만, 눈이 넓어져 챙기지 못한 곳을 보거나 한다.

그런 일 아니면 학교 안에서만 지내니 마을 사람들 보는 날도 거의 없는데,

오늘만 해도 밭을 가는 이웃아저씨랑 인사를 나누었다.

학교 뒤란을 돌 때는 손을 대지 않은 일을 확인하게 되고

다음 일을 생각하게 되고.

던져둔 언 호박이 아무렇게나 있었다.

거름 자리로 잘 보내거나 나무 아래 묻거나 해야.

 

비바람에 집이 울렁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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