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한 번에 전화 받으시는 거 처음인가 봐요.”

대해리를 나와 있는데, 아침부터 이장님의 전화였다.

엊저녁부터 학교 사택 간장집 앞 수도관 공사를 마을에서 하고 있었다.

지난해 그쪽 부분 공사가 있었으나 정작 간장집과 바로 아래 할머니집 수돗물이 끊겼다.

여러 차례 수리 요청을 했고,

드디어 날을 받았던 것.

그간 쓰지 못했다.

거의 비우고 있다 하나 물 만큼은 써왔는데, 학교에서부터 물을 떠다 쓰고 있었다.

가물 때 심은 것들 물도 주어야 하고,

가습이 제습이 물을 주어야 하니 적어도 하루 한 차례 이상은 써야 했다.

오늘 다시 굴착기 공사를 이어가고 있는데,

간장집 앞 바깥수돗물은 나오는데(이건 나오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그걸로 되겠냐 물어온 거였다.

어제 답을 하였는데 이 아침 다시 확인을 해오신.

안 된다. 이곳 겨울을 어찌 감당하라고. 부엌 안이 나와야 한다.

당장 내년에 쓰지 않을 공간이어도 사람이 살 때까지는 그리 써야.

마침내 얼마 지나지 않아 간장집 부엌에도 물이 나왔더라네!



어떤 것에 대해 한 면만 보고 그것 혹은 그곳을 평가하고는 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거나

조금 빗나가긴 하나 작은 것을 크게 떠벌리는 침소봉대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왔을 듯하다.

사람이 모든 면을 보기 쉽지 않다. 보이지도 않고. 시간도 걸리고.

해서 어떤 면을 통해 전체를 짐작하고는 한다.

틀릴 수도 있지만, 전체를 어림할 수 있기도 하다.

기술교육을 하는 현장에 교육생으로 합류할 일이 있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안내실에서는 친절했다. 걱정이 많았는데, 사라졌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역사 속에 묻어가거나 묻힌다.

그러니까 오랜역사 라고 스스로 말할 때

그건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을 안기도 한다.

오래 했으니 잘 한다, 오래 했으므로 잘 안다는 것.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강사 역시 오랜 경력을 자랑했는데, 기술교육에서야 그게 핵심이라지만

사람의 일이란 그게 다가 아니기도 하다.

그는 친절했으나(친절한 언어였으나) 또한 친절하지 않았다.

오랜 경험으로 노련했지만, 그러나 세밀하지 않았고,

적어도 처음 온 첫날을 보내는 이를 결단코 배려하지 못했다.

처음 하는 일에 수월하기 쉽지 않다. 대체로 어렵다.

그걸 당연히 수강자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만 말할 게 아니라

그 부담이 덜할 수 있도록 덜어주는 것도 강사자의 몫이다. 배려다.

처음 수업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주어야 할 정보가 있다.

적어도 이 수업이 어디서 시작하고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끝날 것이라는 전체 윤곽.

시작은 알았으니 그 끝을 몰랐다.

강사는 교육생들을 주시하지 않고 퇴근 준비로 바빴다.

옆 사람에 필요한 것들을 물어야 했다.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그로서는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가르치는 건 강사의 역할이고 의무이다!

(아아, 나 역시 대개 가르치는 자리에 서는 사람이라

그의 고단이 더 짠하고는 하였다마는...)

 

기술교육의 현장을 짐작해본다.

그건 기계 및 도구를 쓴다는 것 때문에 더욱 강사의 권위가 크고,

유대가 강해야 한다는 이름으로, 혹은 기술을 가진 자가 주는 사람이라는 입장을 앞세워

얼마든지 권위와 강압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겠구나 실업교육현장을 생각하게 되더라.

물꼬는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에 작은 후원으로나마 손을 거든다.

대학을 가는 이들 못지않게 그들 삶도 주목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이 사회의 청년이 될 것이다.

그것도 일찍 밥벌이를 하는, 일찍 산업 현장에 서는.

기술교육주체측으로부터 우리는 국영수 가르치듯 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들었다.

기술교육이라 하여 따뜻함과 배려가 필요 없는 건 아니다.

외려 더욱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그런 농을 할 때가 있다.

어떤 과목이 어렵다고 하면 아이들을 위로한다.

그건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라 가르친 선생님의 모자람일 수도 있다고.

나도 같은 위로를 들을 처지가 되었다. 

내게 시간표에 대해 세 차례나 한 같은 말을 못 알아들었다.

세 차례 다시 물었다. 그러나 모르겠더라.

마지막에 시간을 더 뺏지 않으려고, 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그랬기도 하지만

다소 윽박을 느끼며 넘어갔다. 나중에 물어도 될 테니까.

그러나 강사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오비이락이라 불편이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뭔가를 찾아야 해서 두 층의 계단을 몇 차례나 오가며 확인을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결국 1층의 사무실까지 갔다. 한 사람이 남아있었다.

강사 책상에서 찾던 물건을 보게 되었는데, 그가 놓친 거다.

그런 작은 실수는 우리에게 흔하다.

그런데 하필 이런 날,

불편한 마음에 결정타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 된 거다.

나오기 전 마지막에 남아 안내를 해주었던 이가 사탕을 하나 건네주었다,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그런 작은 친절이 정말 마음을 좀 누그러뜨려준 면도 있었네, 하하.

 

불편하다. 그래서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개선되면 된다.

불편하다고 말할 수 없음이야말로 문제다.

물론 이왕이면 불편을 말하는 언어 혹은 행동도 잘 골라야겠지.

한편, 불편하다. 하지만 찬찬히 기다려볼 수도 있다.

처음 만날 땐 서로가 익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간 각자가 가진 기준들이 흔들리다 자리를 잡을 시간이.

처음이라는 건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수 없다.

다만 그 처음이라는 조건이 그저 문제일 뿐인.

그렇다고 그때 하는 행동이 어디 가는 건 아니고 말고!

 

그리고 이런 순간이 내게 아프게 남긴 것은...

물꼬에 처음 걸음 했던 그대의 그날,

더 친절하지 않았음을 반성한다. 공간의 원시성까지 더해져 힘드셨을 것이다.

사실 이 말이 이 글월의 결론이다.

워낙 내부 인력이 적었기 때문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기꺼이 마음을 내고 자기를 쓰려고 왔을 아름다운 그대,

또 이 먼 곳까지 시간을 내 뭔가를 얻으려고 왔을 노력하는 그대,

그대를 더 살피지 못해 미안하다.

문건으로든 말로든

미리 이곳의 움직임이 전체적으로 그려질 수 있도록 더 헤아리고 준비하겠다.

거듭 미안하다.

고백하면, 사실 나는 오늘 그 기술교육 주체측에 성을 내는 것(들이받았다라고 하던가)으로 풀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던 그대에게 고맙고, 더욱 미안하다.

좀 더 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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