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은 1860년에 창도된 후 1864년 수운 최제우 선생이 교수형이 처해지는 등
조정으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는다.
이에 제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은 경상, 강원, 충청 지역 포교활동을 거쳐
1881년 단양에서 『용담유사』(가사로 된 동학경전)를,
1883년 목천과 공주에서 『동경대전』(한문으로 된 동학경전)을 발간하고
1885년 충북 보은으로 피신한다.
이후 1887년 보은 장내리에 자리 잡고,
1890년대에는 교세가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이 무렵 동학은 민중들에게 신분적 차별을 두지 않고
빈부 간 유무상자(가진 자와 없는 자가 서로 돕는다)하며
상하귀천, 노소를 구별하지 않는 집단으로 알려져 평등주의가 실천되고 있었다.
그렇게 보은은
지배층의 수탈 속에서 사회적 평등주의와 경제적 균등을 지향하며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던 민중들이 동학을 매개로 결합한 이들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893년 3월,
보은 장내리에 동학교도들 2만여 명이 모인 민중집회가 있었다; 보은취회
(떡 값을 1푼씩 걷어 2만3천 냥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 형편이 어려워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가진 자가 더 많이 내어 가능했을)
우리나라 최초의 민중집회로 일컬어지는,
1893년 3월 11일부터 4월 2일까지 열렸던 보은취회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으로
교조신원운동을 출발로
밖으로 척왜양창의, 안으로 보국안민의 기치를 내걸고
정치변혁운동, 사회운동, 대중운동, 민족운동으로 발전하는,
사회변혁운동으로 가는 전환점이었다.
제24회 129보은취회 닫는 날.
비가 와주었다. 가뭄 오래였더랬다.
엊저녁 우리들이 천막 아래 새벽이 오도록 부른 노래와 달인 차가
기우제였다고들 농을 하였네.
마지막 날이라고 별다른 일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북실기림굿을 한다느니 북실기림터로 간다느니 했으나 비도 내리고...
어슬렁거리고들 있기, 마침 비도 멎었기
마당으로 나와 해건지기를 하자 제안하다.
팔단금으로 몸풀다.
보은의 한 벗이 가죽장떡과 백숙을 준비하다.
그 옛적 동학도들의 집회에서 바로 이런 풍경들이 있었으리.
할 만한 이가 내고 움직였을.
꼭 그렇게 우리 해보는.
전봉준의 이름은 남루한 옷으로 죽창을 든 동학군 모두의 이름이고
우리를 지키는 모든 아비들의 이름.
제국주의 아래 목숨을 걸었던 건 지키고 싶었던 것이 있어서였다.
‘아버지’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1년여 연인원 30만 명의 농민대중이 참여한
세계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뛰어난 사상적 운동·투쟁이었던 동학농민혁명을
오늘 이리라도 기리나니.
아주 먼 길도 아닌데 빗속에 돌아오며 곤했네.
국도에 휴게소 하나 있기 차를 세우고 졸다.
오자마자 차매트며 다건이며 팍팍 삶았다.
차 기물들을 다시 꺼냈던 곳들에 차곡차곡 넣다.
또 한 가지 마무리하네.
올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 예산이 81조원, 역대 최대 수준.
인구절벽으로 해마다 학생 수는 줄지만 지난해보다 21조 가량 늘었다.
그리고 넘치는 돈으로 지방교육청의 방만한 운영은 계속된다.
한 예로 교육교부금 학교회계집행우수교 지정 총 48억원의 포상금을 뿌렸다.
예산이 남아도니 예산을 빨리 집행한 학교에 포상금까지 주는 진풍경.
지난해 전국 곳곳 교육청은 보육·교육재난지원금으로 1인당 5만~30만 현금을 뿌렸다.
울산 경북교육청은 올해부터 학생들 수학여행 경비까지 지원,
예산을 소진하기 위해 멀쩡한 책걸상이나 업무용 PC 등 비품을 갈아치우고,
서울시 교육청은 중학교 신입생들에게 태블릿 PC 1대씩 보급하기로.
경기교육감 1인 1스마트기기 개인 소유 지급,
인천교육감은 초등 4학년부터 고교 3학년까지 1인 1노트북을 보급한다지.
교육교부금을 고등교육 부분에도 쓸 수 있도록 개편 논의가 시급함!
2022. 1.26.물날. 맑음 / 교육재정을 들여다보다; 풍요는 낭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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