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겨울 가운데 있으나, 봄눈 같은 눈이었다. 상서로운 눈, 서설(瑞雪)이라.

주먹만 하게 느껴지는 눈이 툭툭 떨어졌다.

밤새 내리던 비가 이른 아침부터 눈이 되었더니

물먹은 함박눈이었다가 오후 반나절 멎더니만

저녁부터 다시 눈이 되어 내리고 있다.

 

맑은 날이었으면 달골 몇 곳의 무너진 작은 돌담들을, 짐승들이 걷어찬,

아이들과 보수하리라 했다.

어제 하루여행을 다녀와 고단하다고 쉬라 함인가, 덕분에 천천히 움직이기 좋았다.

해건지기를 하고,

싸락눈 내리기 같이들 차를 타고 학교로 움직였다.

아침밥상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은 난롯가에서 책을 읽고,

설거지를 저들이 하였다.

그리 설거지 할 것 같으면 3주도 얼마든지 밥상을 차리겠네.”

계자랑은 또 다르게 큰 그릇들까지 손끝 야물게들 하길래 던진 말이었다.

마지막 행주질 같은 건 아직 안내가 필요했지만.

잡곡밥과 떡만두국에 하얀지단, 노란지단, 두부 꾸미를 고명으로.

파프리카며 야채볶음, 무피클, 알타리무, 그리고 귤이 올라온 밥상.

 

일수행을 둔 시간, 펑펑 쏟아지는 눈 덕분에 불가에서 책을 읽기로 하다.

사흘 동안 읽어온 책들을 모두 한 권씩 털다.

그 중간에는 불가 공연. 판소리 두어 대목 부르다.

어떤 문화에 자꾸 노출되면 익어지기도 하잖던가.

아이들이 모일라치면 무심한 듯 그리 소리를 하고는 한다.

 

출동!”

오늘 오후는 입으로 행복하기로 잡은 시간이었다.

한 차에 올라타고 인근 도시로 향한.

적은 수여 가능했던.

나는 아무리 맛난 게 있어서 이리 멀리 나오는 건 반댈세.

집에서 먹는 밥이 최고여.”

하지만 아이들이 있어 가능했던.

차 안에서 밤에 할 믿음의 동그라미가 이어지다.

나를 불편케 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같이 고민하고 찾았다.

때로 답이 있지 않아도

말의 끝에 이르면 생각과 마음이 가지런해지고는 한다.

그러면 또 다음을 생각할 수 있게 되는.

 

하다샘 합류.

병원에서 주 88시간 일하는 하다샘은

다낭으로 떠나는 휴가 대신 이 멧골에서 한 주를 보내기로 했다.

아이들이 뷔페보다 하다샘이 더 기대된다고들 했다.

아이들 밥을 사준 하다샘.

간밤에 그런 일도 있었다.

그 전날 하다샘이 우리가 부탁한 타피오카 펄을 주문을 했는데, 황당하게도 교자만두가 왔던.

상담원과 통화하니 만두를 폐기하고 1만원 배상을 해주었다나.

마침 도시에 나간 길이니 혹 구할 수 있을지도. 없으면 또 운명이려니.

돌아오는 길에 큰 식자재마트에서 마른 전분 펄을 사다.

들어가서 찾았을 땐 직원들조차 모르더라.

앞서 전화로 물었을 때 확인해주었던 데스트 직원이 나와 저 구석에서 찾아다주다.

이게 다 있네요!”

전에 누가 찾아서...”

덕분에 우리도 구한. 손쉬운 냉동 펄 아니어도 이게 또 어딘가.

 

저녁에는 바(bar)에 모인 우리였다. 가마솥방 카페였네.

배식대 앞에 아이들이 늘어서서 앉고 싶어 하였다.

우리 꼭 소꿉놀이하는 것 같았더라.

타피오카펄(화이트펄;보트방으로)을 삶고 헹구고, 흙설탕 녹여 펄 넣고 졸이고,

우유에 핫초코를 풀고 그 안에 펄,

아이들이 먹고파한 초코버블티였다.

떡을 찌고, 곶감과 버터 쿠키도 같이.

빵도 먹으려?”

달라한다.

감자샐러드도 먹어도 돼요?”

아무렴. 식빵도 굽고 감자샐러드와 잼도 내고.

 

달골에서 읽은 책 나누기’.

그래서 우리는 몇 권의 책을 동시에 읽은 셈이었던.

하루재기, 그리고 날적이 기록.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은 저들이 같이 보내기로 하였는데,

내일 극장에 가서 볼 <웡카>의 미리보기 쯤 될 <찰리와 초콜릿공장>을 본다더니

드라마 하나를 보는 것과 같이하는 게임으로 합의되었다.

(전사, 이 낱말을 쓸 때마다 전에 있었던 일인 전사(前事)로 써야 할지,

앞의 역사이니 전사(前史)로 써야 할지 고민이라.)


멧골 깊은 밤에 눈은 다시 굵어졌다.

아이들 방 아랫목 온도를 확인하였다.

아구, 따뜻해!”

옥샘 같이 자요.”

하던 일 좀 하고.”

자정께야 잠자리로 들어간 아이들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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