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2도의 아침.

서둘러 수행을 끝내고 나서다.

동학모임에서 이틀 만행을 떠난다. 우리끼리 동학 만행이라 부른다,

스님들이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닦는 온갖 수행을 그리 일컫듯.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 들다.

일제강점기 군산 거리를 재현해놓은 공간도 있었다.

옛날 교실인가 봐.”

중년여성들이 그러고 지나간다.

교실처럼 책상이 그리 놓여있으므로.

아니요, 미두장(미두취인소)이래요. 쌀 가격 정하던 곳요.”

아는 체하며 말을 던졌다.

미곡거래에서 미곡시세의 등락을 이용해 약속으로만 매매하는 투기행위가 미두였고,

미두에 종사하는 이가 미두장이’, ‘미두꾼’.

미두꾼이 모여서 미두거래를 하는 장소가 미두장’.

그러니 일종의 증권거래소라 할.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나오는 정주사가 어슬렁거리던 곳이 이 미두장이었다.

군산 출신 작가가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현장 군산을 배경으로 썼던.

서사의 공간적 배경인 탁류(금강)가 인생사이면서 역사의 흐름을 말하기도 할.

참으로 독한 이야기였다.

도박에 빠진 아비가 한 밑천 잡으려고 난봉꾼에게 딸을 넘기고,

또 다른 이에게 강간을 당하고, 아비 친구의 애첩이 되고,

동생을 지키려 그를 넘보는 이를 죽이고, ...

인간군상이라는 낱말을 들으면 늘 이 소설이 생각나고는 했다.

그 시대의 인물들을 잘 그려낸. 그들은 시대가 달라져도 있을 법한 인물상들이기도 했다.

주인공 초봉의 아버지 정주사가 쌀 시세차익 내기를 하다 지고

더 이상 걸 돈이 없어 젊은이에게 멱살을 잡히는 곳이 이 미두장이었다.

진도라고 하는 섬에서 나는 개(珍島犬)하며, 금강산의 만물상이며, 삼청동 숲속에서 울고 노는 새들이며, 이런 산수고 생물이고 간에 

천연으로 묘하게 생긴 것이면 천연기념물이라고 한다. 그럴 바이면 입만 가졌지 수족이 없는 사람, 정주사도 기념물 속에 들기는 

드는데 그러나 사람은 사람이니까 천연기념물은 못 되고 그러면 인간기념물이겠다’(<탁류> 가운데서)

원도심을 중심으로 현재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흔적을 좇은 길을 탁류길이라는데,

문학기행들을 하고 있었다.

 

1910년 이후 군산에는 크고 작은 정미소들이 세워졌다.

평야를 끼고 있으니 인근에 농장들이 많았고,

미곡의 최종집결지로 수출 직전 가공 시설이 필요했으니까.

조선인 미선공(주로 여성으로 쌀 선별작업자)과 매가리공(주로 남성으로 쌀 짊어지는)에 대한 처우는 형편없었고,

1924년 이후 1930년대 중반까지 이들이 일본인 공장주들에게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일으켰다.

경제적 요구에 그쳤다지만 일본인 고용주를 향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이 역시 반제국주의 투쟁이라 할 수 있을.

 

오늘 우리 발걸음의 핵심은 옥구농민항쟁’.

192711월 옥구에서 가혹한 일본인 지주의 수탈에 맞선 대표적인 소작농들의 저항운동.

농장주가 무려 수확량의 75%를 소작료로 요구하자

서수농민조합의 간부를 중심으로 소작료 인상에 대하여 항의하면서 시작되다.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작료 납부를 거부하기로 결정했고,

일본 경찰은 농민조합장을 검거.

이에 분노한 소작농 500여 명은 주재소를 습격해 조합장을 구출,

하지만 농민조합의 간부들은 일본경찰에 의해 다시 검거되었고, 모두 재판에 회부되었다.

옥구농민항쟁은 조선인 소작농이 소수의 지도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일본인 경찰에게 직접 맞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는 항일독립운동으로 알려졌다.

 

해방은 한순간에 온 것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싸워왔고, 그것이 쌓여왔던.

삶도 그럴지라. 한순간 이뤄지는 일이 아주 없기야 하겠냐만

나날이 쌓여 이뤄지는 것일 테다.

그대여, 오늘도 우리 영차!

 

새만금방조제를 건너 장자도-선유도-무녀도-격포를 따라 달리다.

10년 전 장자도 장군봉 바위 곁에서 야영을 한 적 있었다.

이제 그곳엔 데크가 깔렸더라.

사람은 가고 옛날은 남았나...

 

 

한밤 특수학급에서 만난 인연들을 챙기다.

한 형제는 할머니랑 산다. 아버지는 알콜중독으로 치료소에 있고.

형은 3월이면 입대를 하고, 동생은 곧 고교생이 되는.

한해 두어 차례 이모처럼 작은 선물을 한다.

보탬이야 얼마나 될까만

그대들을 잊지 않는다, 그대들을 지지한다 그런.

물꼬가 하는 작은 나눔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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