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의 일정에 동행하는 날씨는 우리에게 자주 경이다.

기적이라고도 한다.

사실 날씨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우리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이라.

그러므로 대체로 해석의 여지가 얼마든지 많은.

우리는 대개 우리에게 딱 맞는 날씨로 해석한다.

없이 사는 사람은 이런 걸로도 위로 받음:)

아무렴, 이런 위로도 우리 맘대로 못하겠는지.

밤새 비 내렸고, 아침에 해건지기를 나와 아침뜨락을 걸으려 할 때 비가 멎었다.

덕분에 상주로 떠난 하루여행은 대단히 멋졌다.

그리고 밤 학교에서 모든 일정을 끝내고 달골로 움직이려 마당으로 나왔을 때

, 다시 비 내렸다.

아쿠, 어쩌자구 날씨는 이리 또 한 표를 더해준단 말인가.

물꼬 날씨의 기적은 이렇게 또 보다 공고해진다.


눈을 부비며 화장실만 다녀와 깔개를 가지고들 1층 오신님방으로 모였다.

좁았지만 그에 맞춰 움직임을 만들면 될 테다.

전통무예로 몸을 풀고, 대배를 가르쳐주고 같이했다.

물꼬에서 샘들이 아이들을 맞이하는 아침 전 먼저 그리 백배하는 대배.

호흡명상하고, 옷을 든든히 챙겨입고 아침뜨락을 걷고 나왔네.

 

씻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먼저 학교로 내려와 아침밥상을 차리고,

아이들이 늦지 않게 닿아 먹었다.

감자샐러드를 노래 부르기 감자를 삶아 으깨고 야채들을 다져넣고,

삶은 달걀노른자로 고명을 환한 노랑으로 포시럽게 올린.

설거지를 학교에 남은 이에게 부탁하고

다섯이 서둘러 차에 올랐더라.

 

몇 군데의 후보지들을 놓고 동선을 그리는데,

가족들과 상주 여행을 다녀왔던, 일전에 들은 현철샘 조언의 영향이 컸다.

국립낙동강생물전시관부터! 상주 자전거박물관을 포기하고.

가면서 어제에 이은 믿음의 동그라미후속탄.

173계자를 같이 했던 우리라 그 후일담들도 나누고.

간밤에 두어 시간 눈을 붙였던 터라 쉬며 가자 했건만,

아이들 즐거운 말에 말려 아주 신바람이 났더라지.

노래를 부르지 않는데도 노래로 채운 시간 같았던.

 

국립은 일단 먹고 들어간다던가. 선택에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그랬다.

특별전; 생태통로-생명의 길, 공존의 길.

사람으로 터전을 빼앗긴 동물들이 도로 위에서 죽어나가고,

그들을 위해 터널로 육교로 그들이 이동할 길을 만들어왔다.

알던 일이다.

그런데 찻길 사고를 막고 생태통로까지 안전하게 유도하기 위한 유도 울타리는 또 몰랐던.

, 그들은 그 길이 자신들을 위한 길인 줄 모를 것이기에.

2전시실에서는 낙동강에 사는 동식물들, 그들의 생활터전을 살폈고,

1전시실에서는 종다양성, 유전자 다양성, 생태계다양성에 대해

그 의미들을 다시 새기게 되다.

특히 식물채집과정들이 우리 멧골에서도 아이들과 할 수 있는 좋은 공부거리겠다 그려보게 된 건 큰 수확.

어릴 때 방학이면 곧잘 식물들을 채집하고 누르고 말려 도감을 만들고는 했더랬는데...

전 세계 다양한 생물들의 표본 덕에 아주 생생한 생태계를 보여주고 있어

어린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어른들에게도 매우 좋은 공부자리였다.

 

식당에서 싸간 간식으로 가벼운 요기. 삶은 달걀이며 귤이며 견과류며 물이며.

식당은 딱 다섯이 둘러앉을 수 있는 자리를 준비해주고 있었네.

건너편에 앉은 한 꼬마 아이가 자기네 싸온 간식과 달라 자꾸 눈이 오기

우리 걸 나눠주었고, 거기 또 그 아이가 자기네 것을 답례로 건네오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 시간이 없었으면 밥집으로 바로 달려갔을 걸,

놀이터에서 한판 거하게 뛰어다니다. 전시관보다 놀이터가 더 재밌었다나.

아이들은 그렇다. 어른들이 준비한 선물보다 그 상자에 더 홀리고는 하는.

, 나중에 전시온실을 보기 위해 걸음해야겠다 하고 나왔더라.

 

미리 전화를 걸어둔 밥집으로 향했다.

지역사람들이 꼽는 식당. 브레이크타임도 따로 없었다.

3시에 먹은 밥이라, 우리끼리 식당을 다 차지하고.

편안한 밥이었다.

나는 별스런 요리 말고 이런 일상적인 밥이 맛있는 밥상이 좋더라.”

정환샘 밥요!”

, 아이들이 그랬다.

 

낙동강 1,300리 최고의 절경이라는 경천대.

하늘을 경외한단 말인 줄로만 알았더니

임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뜻의 경천대비;擎天臺碑가 있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거기서 온 이름 아닐까 싶은 의심이...

어라! 사대주의였을세!”

그래 그래, 조선을 도왔던 의리였다고 하자.

경천대로 오르는 단거리 언덕길에 줄이 처져있어

출렁다리를 향한 호젓한 숲길을 지나 출렁다리 건너 돌아서 경천대 쪽으로.

굳이 경천대까지 오르진 않고,

대신 그 아래 강가 절벽 바위무더기 무우정 전망대에 올라 강을 굽어보았네.

경천대 절경을 하늘이 스스로 만들었다 하여 자천대;自天臺라고도 한다지.

 

어둠을 가르고 돌아오는 길,

차가 몇 번을 덜컹거렸는데도 학교에 닿을 때까지 눈을 뜨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저녁을 지으며 난롯가에 둘러선 아이들과 2024 겨울계자를 의논하다.

, ‘2024학년도 겨울계자 기획단이라!

겨울 방학이 길어지면서, 또 물꼬에서 좀 더 오랜 시간 보내고 싶다는 아이들의 소망도 있어

한 달을 생각해보게 된 것.

지난계자 이후 그런 말들이 부모방에서 오갔고,

일종의 수요조사가 있었는데 거의 모두가 동의했다는.

그런데 내년 달력을 보니 1월 마지막 주가 설 연휴.

애들이 설이 무슨 상관이겠냐 하지만 또 그건 아닐.

하여 3주 가능하지 않을까 한.

그것에 대해 남편과 나눈 아래의 이야기를 이번 실타래 아이들에게 전한 게

이번 기획단의 시작이었더라.

겨울에 이 추운 대해리에서 때마다 밥을 해 먹이는 게 보통일이가?”

왜 전에도 해봤잖어,”

그땐 젊었을 때고! 인제 나이도 있고, 뭐할라고 그 고생을 하노?

그렇다고 무슨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재밌잖어!”

좀 전에 그렇게 일단락 지었던 일이었다.

우리 다음을 또 할 생각까지는 말고, 그저 한 번 해본다고 생각하자.

아이들한테도 얼마나 좋겠어?

어린 날 한 때를 멧골에 모여서 겨울을 같이 난다, 얼마나 큰 경험이 되겠어?“

마구 신이 났던 거다.

어쩌면 이번 나흘의 일정이 내년 겨울 일정을 가늠해보는 과정이란 생각 들었네.

, 이거 우리 계자 준비팀인 걸!”

적은 규모의 아이들이 먼저 2주 외가댁 일정으로 들어온다.

그때는 달골 기숙사에서 자고.

마지막 3주째 계자 일정으로 아이들과 샘들이 합류한다.

그때는 학교에서 캠핑처럼.

기록을 맡은 아이의 기록을 빌자면,

 

[2024학년도 자유학교 물꼬 겨울계자 3주 프로젝트 밑그림]

- 기간: 2외가댁’, 1계자’(외가댁 아이들은 내리 3, 마지막 주는 계자 아이들이 합류)

- : 외가댁-5학년 이상부터 7(변동가능)/ 계자는 전체 20?,

2주 외가댁에서는 5일 일정에 주말 이틀 쉬고, 주말에 손전화 사용 가능.

- 준비물(예비): 세면도구, 수건, 여벌옷, 잠옷, 속옷, 양말, 목도리, 수건, ...

학원이나 학교 숙제도 싸오기(계자 때 말고 외가댁)

- 옥샘 왈: 주말에는 여행도 가면 좋겠다!/영양보충(뷔페?)/찜질방도 가볼까?/공부도 하면 좋겠다.

 

저녁밥상이 늦었다.

톳밥에 김치짜글이, 달걀찜과 콩나물무침과 무말랭이무침 배추김치.

그리고 사과 깎기 수업.

한 번도 제 손으로 깎아본 적이 없다는 아이도 있었다.

과도를 죄 꺼내 사과를 예닐곱 개 꺼내놓고 연습에 또 연습.

아무렴, 하면 는다.

금사과라는 요즘인데 덕분에 매우 넉넉하게 먹은 사과였더라.

 

밥상을 물리고 설거지 재교육? 그런 걸로.

물꼬 오면 하는 거지만 어른들이 냄비 같은 큰 그릇을 부시고 아이들이 자잘한 걸 하는 구조와 다르게,

전체 설거지를 해보는 과정.

큰 냄비 철수세미로 미는 것까지.

바닥 물기 닦는 것까지.

덕분에 나는 교무실일이며 잠시 학교일 좀 챙기다.

 

비를 뚫고 올라와 하루재기, 그리고 날적이 기록.

아침밥 너무 맛있었다, 짜글이 맛있었다. 운전 고맙다, 설거지 고맙다, ...

1시간은 아이들이 자신을 위해 쓰는 시간.

오늘은 나가는 날 극장에서 보기로 한 영화의 전사를 볼까도 했지만

벌써 졸음에들 겨웠더라. 좀들 놀았거던. 제법도 걸었거던.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2020)를 읽고

한 독자가 보내준 글월이 닿았다.

제목이 좋았다고, ‘저는 아직 이처럼 선언적인 주장을 펼칠 만큼의 역량이 없기에

부러움과 호기심이 섞인 심정으로책을 펼쳤다고.

어제 오늘 참 많은 것들을, 많은 시간들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참으로 고마운 책이었다고. 물꼬도 알아보게 되었다고.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긴 생애가

튀르키에의 바자르에서 접한 아름답고 고귀한 양탄자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그의 마음, 그의 글이야말로 퍽 빛났다.

응원의 말을, 굳이 메일로 써서, , 그의 행동이 나를 밀어주네.

작년에 내려던 책을 출간을 못한 채 해를 넘겼고,

올해 내려 계약한 책의 원고도 손을 못 대고 있었는데 어여 써라 등을 밀어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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