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의 수련 수반에 살얼음이 얼어있는 아침이었다.

 

해건지기’.

사람들이 일어나기 한 시간 전 창고동 보일러 바닥을 데우고 난로에 불을 지피고,

꽃을 따서 물에 띄워 수행에 동행할 수 있게 준비했다.

학교 수행방에서 했을 법도 한데

창고동을 내놓기로 했다. 손도 더 가지만 정성으로 치기로.

곧 사람들이 건너왔고,

몸을 풀고 대배 백배를 한 뒤 호흡명상, 그리고 아침뜨락으로 들어섰다.

젊은 의사들이 고민들이 많을 때다.

정책이란 게 절차가 있을 것인데,

조율을 거치며 특히 그것이 미칠 파장을 여러모로 고려하며 뺄 거 빼고 더할 거 더하면서,

국민 여론도 수렴하며 다듬은 뒤 정책을 발표하고 시행에 들어가는 게 일반적.

이번 의료개혁을 내세운 정부 정책은 그저 밀어붙이기였다.

필요하다는 문제제기조차 공론화 과정이 없었고,

필수의료와 지방의료를 살리겠다는 해결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협의 혹은 숙의가 전무했다.

전공의들의 사직 물결이 이어졌다.

누구는 떠났고, 누구는 남았다.

떠난 자도 남은 자도 어렵기는 매한가지 일.

소수자로 남은 이들의 부대낌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짐작이 된다.

아침뜨락 아고라의 말씀의 자리에 앉아 그 마음들을 꺼내고 바람에 실어 보내다.

 

사람들이 두멧길을 걸어 내려오는 동안

먼저 와 아침 밥상을 차렸다.

현관으로들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비가 후두둑거렸다. 날씨까지도 손보태는 물꼬라.

무려 이 봄에 소나기.

무겁게 하기보다 가볍게 돕는 비였던.

쉬어가라는 말이겠다.

지쳤을 그들이다.

뭘 하지 않아도 그저 쉬어만 가도 될 빈들이다.

비님 덕에 더욱 여유로운 아침이었네.

 

물꼬 한바퀴-안내모임’.

시작하며 할 안내모임이었으나 아침 밥상을 물리고서야 했다.

엊저녁 모이는 데만 서너 시간이 걸렸던.

물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래서 무엇을 하는지,

어느 공간에서 어떤 활동이 이루어지는지,

한 바퀴 돌며 전하는 물꼬에 대한 공부였다.

 

찻자리’.

쉬라고 그러나 봐!”

이 역시 비님 덕이었다.

감자를 심고 마련키로 한 자리였으나

신발을 신고 나서기 전 먼저 하기로.

땅이 젖어있어 시간을 벌기로도.

인도에서 가져온 백차를 열었다.

다른 것들도 흔히 그렇지만 차는 찻봉지를 처음 땄을 때 가장 맛있다.

이번 빈들을 위한 선물이랄까.

홍차도 내렸다.

현 의료사태에서 각자가 하는 생각들이 찻물 위로 얹혔다.

 

일수행·1-감자놓기.

아직 땅이 질어 두 고랑만 하기로. ‘해보기.

이거 일삼아 하지 말라고 비님 와 주셨더랬네!”

이원수의 동시부터 읊었다.

감자씨는 묵은 감자/칼로 썰어 심는다/

토막토막 자른 자리/재를 묻혀 심는다//

밭 가득 심고 나면/날 저물어 달밤 /

감자는 아픈 몸/ 흙을 덮고 자네//

오다가 돌아보면/ 훤한 밭골에/

달빛이 내려와서/ 입 맞춰 주고 있네//’

감자씨는 종자를 구입하는 대신 지난 해 거두었던 감자로.

수확량은 사온 종자 만큼이지 못하겠지만.

무슨 대단한 종자 지키기까지는 아니고 그저 우리 방식으로 해보는.

썬 감자에 상처 연고를 바르듯 재를 묻혀 심었다.

털신들로 갈아 신고 밭에 들었다.

야물게 일 시킬라고 물꼬는 이런 것도 다 준비했다지.”

새참을 내갈 것도 없었다.

후루룩들 심고 나왔다.

 

일수행·2-나물 캐기.

봄나물이 좋을 때다.

캐서 밥상을 차리기도 한다.

본관 앞 꽃밭에서는 원추리를 자르고,

텃밭에 들어서서는 냉이와 달래를 캤다.

논가에는 미나리가 한창이었다.

원추리는 데쳐 나물이, 달래는 고추장무침이, 냉이는 된장국으로,

그리고 미나리는 부침개가 되었다.

쑥도 뜯어왔으면 쑥털털이를 쪄주었을 것을...

 

저녁에는 본관 현관 앞으로 화로에 불을 피웠다.

현철샘이 고기와 해산물을 구웠다.

날이 차서 밖에서 먹을 수 있으려나 했지만

안에서 각자의 접시에 밥을 담아 나갔더라.

바람은 불었지만 차지 않았다.

불이 있어서도 맞춤하였네.

불가에 모이거나 평상에 둘러앉거나.


모두를 위하는 길과 나를 위한 길이 상충할 때 고르기가 쉽지 않다는 누군가의 고백이 있었다.

부엌을 정리하다 돌아보며 내가 외쳤다.

그게 뭐가 어려워? 그거야말로 너무나 간단한 선택이지. 모두를 위한 길!"

80년대를 산 사람다웠다.

"그건 전체주의지!"

40년이 지나 지금의 청년들은 또 다를 테다.

맞다, 누구를 희생해서, 갈아서 전체를 돌아가게 해서는 안될 것.

"아니, 의료집단만을 위하는 선택을 말하는 게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라면 해볼 만하지 않나...”

꼬리를 내렸다.

문제는, 바로 그 길, 정말 나를 버려서 모두를 살릴 길이 없다는 거 아니겠는지.

나도 살고 모두가 살 길은 역시 숙의를 통해서 나올.

노무현이 그토록 외쳤던 거버넌스를 염원한다.


저녁수행, ‘명상돔’.

가운데는 촛불이 둥글게 켜있었다.

우주 어디쯤 와 있는 것 같다고들 했다.

그리 어렵지 않게 우리를 명상으로 이끌어주었더라.

 

실타래’.

전공의들은 현장으로 쉬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현재 의료 사태 속에 각자 어떤 길들을 찾고 있는지...

사직하지 않은 한 전공의는 미국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 고백했다.

, 현실이었구나...’

 

낯선 곳에서, 그것도 몹시 불편한 곳에서 긴 하루였을 것이다.

따숩게들 자라 보일러를 세게 틀어두었다.

 

 

아침밥: 콩나물국밥과 고명들, 콩자반, 오징어젓, 달걀말이, 깍두기와 갓김치, 그리고 바나나

낮밥: 잔치국수와 몇 가지 찬

저녁밥: 콩밥과 냉이된장찌개, 감자채볶음, 원추리나물무침, 달래무침, 오징어채, 미나리부침개상추와 깻잎과 고기와 가리비와 새우 숯불구이, 그리고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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