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였다.

오랫동안 숙제 삼은 일 있었더랬다.

정수기를 만들고 말리라.

2,3개월마다 정수기 필터를 갈고, 6개월마다 메인 필터를 바꾸고,

쓰는 동안도 전기에 기대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관리비를 줄이겠다는 의도로 시작이 되었을 게다.

전등을 잘 끄는 것이 단순히 전기를 아끼는 차원을 넘어

보다 독립적 삶을 원하는 작은 행동인 것처럼

밖에 덜 의존하는 삶을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왔듯

정수기를 바깥 업체에 맡기는 일에도 대안이 필요했다.


몇 해 전 장순샘이 마침 들여 준 스테인레스 물통이 있었다.

온·냉수 기능이 가능했다.

저걸 가지고 어찌 좀 해보자, 그렇게 여러 해 흐르는 동안

선배 하나가 맥반석과 작은 에어펌프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을 못하고 있었다.

두어 해 뒤 다른 선배가 을지로 공구 길로 같이 나섰다.

스테인레스 부레와 스테인레스 물통에 구멍을 낼 수 있는 홀쏘를 사주었다.

기존 정수기에 이어진 연결고리와 호스는 있으니

얼추 부품은 마련되었다 했는데,

쉬 또 손이 가지 못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한국을 비웠다.

다시 정수기 앞, 저걸 치우고 말아야지,

스테인레스 물통으로 기어이 정수기를 만들고 말아야지, 다짐했다.


봄이 왔다.

머잖은 곳에 기계들을 고치는 일로 소일하는 분이 계시다.

여러 차례 졸랐다. 정수기를 만드려는 내 구상을 열심히 설명해봤지만, 안 될 일라셨다.

또 졸랐다. 당신은 유투브 애용자다. 알아보자셨다.

어제, 남도 어르신이 보내온 젓갈과 당신의 손 하나를 교환키로 했다.

다른 데서 쓰이는 부레를 하나 구해오셨다.

맥반석을 제외한 기존의 부품들은 무용지물이었다.

정확하게는, 그 부품들로 만들 방법을 찾지 못했던.


오늘, 기존 정수기를 완전히 치워내고 여기서 만든 정수기의 자리를 잡아주었다.

사실 자리부터 이미 잡아두었던 것이었는데,

원래 있던 자리에서 내려져 작업했던 걸 제 자리로 다시 올린 것.

호스를 정리하여 길이를 맞추어 잘라내고 연결고리로 연결했다.

달에 한 차례씩 맥반석도 씻고, 물통 청소만 하면 된다.

냉온수를 동시에 쓸 수는 없는 한계는 있다.

냉수를 기본으로 쓰고 찻물은 커피포트를 쓰면 되고,

겨울에는 자체 통에서 낮은 온도로 데워 쓰기로.

마침내 했다!


오늘도 괭이질. 농사용 전기에서 아침뜨樂으로 뺀 전선 묻기.

그 결에 나온 돌들을 언덕에 낮게 돌탑으로 쌓았다.

돌을 이해하는 것만 같은 요새이다.

햇발동 청소도 2차. 바닥 닦고 이불빨래 이틀째.

달골 아침뜨樂, 패놓은 옴자 자리의 풀도 뽑았다.

풀, 많다. 돌도 참말 많다...

회양목도 자리를 일부 옮겼다. 그러자 내려준 비라니!


저녁에는 목탁을 두드리며 경을 외다.

세상은 아득하고 자주 멀다가

어느새 또 가까운가 싶어지기도.


비 내린 덕에 마을 한 어르신 댁 방문.

한 해를 넘게 비우고 한국에 돌아온 지 석 달이나 되었는데

이제야 마실을 나가 한동안의 마을 근황을 듣다.

한 어르신이 돌아가셨고, 요양원으로 한 분이,

그리고 한 분은 반신불수가 되셨단다.

두루 찾아뵈어야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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