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동안 특수학급 담임을 맡을 학교가 있는 인근 군에 다녀온다.

뭐 일이 그리 되었다. 기준은 내가 그곳에 필요한가일.

물꼬가 있는 영동군은 아직 확진자가 없다고는 하나

혹 내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묻혀갈 가능성이 있지 않나.

그쪽 역시 아직 심각함이 덜했다. 거기도 확진자가 아직 없다고 하는데,

내가 감염원이 된다면...

교무실에 있던 세 사람, 그리고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던 댓의 엄마들 역시

아무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고 앉은 내가 무색할 만치.

어제 걱정스레 했던 전화가 멋쩍을 만했다,

계약 관련 일을 대면으로 말고 팩스로 최대한 처리할까 물었으니.

본교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맡을 특수학급이 있는 분교에 가서 학교를 둘러보다.

그곳 학교아저씨가 교실을 보여주었다.

이 교실에서 한 학기 특수아들과 뒹굴 것이다.(코로나19로 개학은 39일로 연기)

아이들에 대한 내 학습도움이 그들의 치료에도 좋은 영향일 수 있다면!

차를 더 운전하여

한 번씩 물꼬에 필요한 소품을 사는 도시에 들러 몇 가지 실어오기도.

 

아주 오래 전 시집을 낸 적이 있다.

이름난 시인도 제 시집을 원고료로 받는다던 시절

시집을 내자 하고 돈까지 준다는데 혹해서 팔아넘긴,

나중에 좋은 시절에 제대로 된 시를 써서 그때 내겠다는 바람을 가지면서.

그 뒤 다시는 돌아보지 않아왔던.

하지만 20년이 더 넘어서도 여전히 잘 쓴시집은 나오지 않았다 :(

시집은 고사하고 시도 거의 쓰지 않고 있는.

인터넷이란 게 이리 발달하여 그 흑역사를 날마다 실시간으로 확인할 날이 올 줄이야!

당시 그 시집은 시류를 따라간 제목이었는데,

두 후보 제목 가운데 선택받지 못한 제목이 문턱에 걸리는 기억이었다.

문턱에 걸리는 기억...

그 시집에 실린 시 하나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정말 기억들이 그랬다.

나는 과거에 끈이 더 깊은 사람이었고,

자주 과거는, 특히 뼈아픈 과거는 자주 문턱이 되어

나는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그나마 물꼬에 산 세월이, 수행의 시간이, 덜 아프게 하거나 혹은 덜 넘어지게 한.

어떤 사실을 잊지 않음을 기억(記憶)이라 하고 잊어버림을 망각(忘却)이라 한다.

그런데 기억력이라는 말은 있어도 망각력이란 말은 없다.

대신 건망증이란 말이 있다.

ː(健忘症): 기억력의 장애로 보고 들은 것을 금방 잊어버리거나,

어떤 시기 이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등의 증상.

기억에 력이 붙인 건 기억하는 것을 능력, 즉 힘으로 보기 때문.

그렇다면 건망에 붙은 증은 기억력의 장애로 본.

그런데 건망, 망각에도 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방어기제로 흔히 쓰는 망각을 회피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때로 망각하는 힘이 우리를 살게 한다.

미치도록 괴롭히는 과거의 한 부분은 결단코 잊을 수 없다면 우리가 오늘을 어찌 살까,

그 삶의 무게를 어떻게 견딜까.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강화하고 나쁜 기억을 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은(둘 다 !)

내 삶을 돕는 것이기도 했다,

사회적 목소리로서 분노를 말할 때도 있지만

나는 개인에게도 상상할 수 없는 적대감을 지닐 때가 있고,

그게 잊히지 않고 기억증으로 나를 괴롭히는 날이 있다.

과거가 머리 안에서 확대되고 요동칠 때, 망각의 힘을 키우기.

오늘은 망각에, 건망에 력자를 붙이나니.

별일 아니다! 그렇다, 많은 일이 그렇다.’

오늘 부디 그대의 잠이 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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