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10.쇠날. 맑음

조회 수 700 추천 수 0 2020.06.15 22:45:30


 

물꼬에서는 일정을 앞두고 정한 시간에 빠듯하게 닿아도

워낙 익은 공간이라 마음이 하나도 쫓길 게 없다.

하지만 낯선 공간이라 어떤 변수가 등장할지 모르니

더욱 시간에 여유를 많이 두고 움직이는 제도학교의 날들이라.

일어나는 시간도 아주 일찍,

분교 출근도 나날이 이르게 된다.

 

이른 아침 출근 전 면사무소로 가서 사전투표부터 했다.

주말 동안 비울 사택의 음식물 쓰레기는 밭 가 구덩이를 파서 묻고.

분교 특수학급교실에 들어서서 맨 먼저 한 일은 들꽃을 들여온 것; 봄맞이꽃, 제비꽃

재활용창고에서 PET병을 찾아와 잘라서 화분 삼았다.

그런데 풀섶에서는 그렇게 하얗게, 또 도드라진 보랏빛으로 눈이 부신데

그것이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만 색의 생기를 잃는다.

그럴 수 없이 왜소해지는.

제 자리가 아니어 그런가 보다.

자리를 떠난 생명체라는 게 그런 거더라.

 

09시 직전 병설유치원 아이를 앞세우고 6학년 여아가 찾아왔다.

저도 못하는데...”

동생이 응가 마렵다는데, 뒤처리가 문제라고.

어른이라고 나 혼자인 이른 시간이라.

어여 화장실로 들어가자 하는데,

그때 아악, 가슴 아래가 따끔.

아이를 화장실 한 칸에 들여 주고 옆칸으로 가 옷을 터니 벌이었다, 땡삐.

운동장 가 풀섶들을 구경다닐 때 붙었던 모양이었다.

아이 상황을 정리해주고 해우소를 나오는데

벌써 온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어머, 선생님, 병원 가셔야겠어요!”

돌봄교사가 현관을 들어서며 날 보고 놀란다.

얼굴이 벌겋고, 여기저기 볼록볼록 두드러기가 일기 시작.

전체적으로도 몸이 붓고 뻐근해지고.

가까운 보건소에 달려갔지만 해독할 주사약이 없다고.

인근 도시로 달려갔다.

돌봄교사가 따라나설까 했지만 그럴 것까지야.

헌데 병원에 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꽉 찬.

스물 가까이 돼 보이는.

이미 몰골에서도 짐작되었겠지만 벌에 쏘였다 하니 

의사가 다른 이들을 제치고 먼저 불러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샘들 요걸트와 아이네 방문수업 때 전하고픈 빵을 사서 돌아왔네.

가까이에 없는 가게라.

 

어제 겨우 찾은 교실을 반나절 청소하고 다시 내준다.

선관위에서 어제 오후 이미 투표체제로 바꾸어 둔.

우리 교실을 나와 떠돌다 도서관에 자리를 잡다.

데스크 탑이 있는 책상 있어.

그간 내가 썼던 돌봄교실은 긴급돌봄실로 제 역할을 하고 있고.

학교로 들어서서 서둘러 오후 출장 기안부터 올리다.

 

12:50 학교발 6학년 특수아동 한 아이네.

할머니와 형과 사는, 지적장애아.

할머니로부터 아이 유치원 때 세상 떠난 며느리와 부재 중인 아들의 얘기를 듣다.

의젓한 12학년 형을 앞세우고 아이에게 온라인학습 사이트 바로학교건 안내,

그리고 간 걸음에 공부도 좀 하고 오자 했다.

국어 수학 과목을 특수학급에 와서 하는 그랑

받침동화를 읽고 구구단 개념을 익히기.

빵과 햄버거를 전하다.

시내 나가기 자주이지 않을 것이니 그런 게 입에 당기지 않을까 하고.

아이가 키우는 개도 보았다.

리드줄을 하나 사줘야겠다, 산책 다닐 수 있게.

마을 안내는 다음에 받기로.

흔히 제도학교에서 하는 학습방식으로 그저 지식 전달이나 하려는 게 아니다.

물꼬식 공부법을 가져올 수 있을 것.

특수아동은 개별화 학습을 하니 조건은 이미 갖춘.

앞으로의 시간들에 설렌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없는 일정이라 복무 기록은 정확하게 하나

출퇴근이 조금 느슨하기도.

부장 여교사의 친절한 도움, 분교장의 세밀한 안내,

공간에 아직 익지 못하나 두리번거리지 않음은 돌봄샘의 도움 덕.

유치원샘의 감정적 연대, 전직 교사였던 일흔의 복식학급 강사샘 두 분의 두루 안내가 있고,

학교 아저씨도 편히 살펴주시다.

환대로 읽었다. 고맙다.

 

석면제거공사로 담 주 불날까지 교실 물품목록도 작성해야는데,

우리 교실은 선거체제로 교실 물건들이 한쪽에 몰려있거나 나가 있거나 해서

선거 뒤 제출키로.

남의 집이라...”

모르는 게 많으니 물을 것도 많고

물었던 걸 다시 확인할 때도 있어 멋쩍어 한 말.

그때 한 샘이 그랬다.

선생님이 계시면 선생님 집이죠...”

그렇겠다. 그렇다. , 내 집이지. 내 집에서 사는 정성으로 물꼬라 여기리.

사람들이 더러 내게 그러지 않는가, 옥샘 계신 곳이 물꼬지요.

그래서 재작년 바르셀로나의 1년은 물꼬가 그곳이었고,

아일랜드에서 실크로드에서 네팔에서 인도에서 역시 그랬다.

 

인근 도시에서 넘어오는 아들과 만나 장을 보고 대해리행.

시골서 시골로의 이동이라 돌아오는 길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닷새가 흘렀는데도.

하지만 대해리 들머리에 오자 와락 비었던 시간이 길게, 아주 길게 느껴진.

제습이 가습이가 하늘에 닿을 듯 아주 팔딱팔딱 뛰며

보지 못한 시간에 대한 설움과 보는 것에 대한 반가움을 전해주었다.

물꼬에서는 오늘 노랑천막 옆 나뭇가지들을 정리했다지.

여기는 출근근무 한 주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물꼬라.

그야말로 직장인의 휴일,

그리고 물꼬로서는 일정이 있는 주말이라.

 

제습아! 가습아!”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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