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린다던 소나기는 오지 않았다.

먹구름 한 덩어리 마을 위로 떠 있다 흩어졌다.

하늘 눈치를 보다 들에 있던 이들이

조마조마하며 약을 쳤다.

아침뜨락에도 오후에 만든 약제를 만들어 뿌렸다.

어제도 여지를 보았지만 소나기에 밀렸던 일이다.

마를 때까지만 빗방울이 지나쳐다오,

야삼경을 무사히 지나는 날씨였다.

 

낮 밥상을 물리고 대처 식구들 반찬을 만든다.

해날 이 시간은 거개 그렇다.

산골 반찬이란 게 별 게 없다.

그래도 거의 날마다 밥상에 같이 앉는 하얀샘은

물꼬는 장도 안 보고 들어오는 것이 별 없는데도

어디서 이리 찬이 나오는지 신기하단다.

두부부침조림과 달걀말이를 기본으로

그리고 그때그때 냉장고에 혹은 부엌곳간에,

아니면 그 즈음 밭이든 들에서 나오는 것들이 재료다.

충분하다.

고기는 가끔 나가서들 먹을 것이라.

 

아침뜨락에도 이것저것 넣어 만든 해충약을 뿌리다.

계자를 하기 직전 준한샘이 들어와 면도기로 밀 듯 잔디 깎는 기계를 돌려주었다.

비가 있었더랬고,

다시 풀은 그들의 생명의 길대로 걷잡을 수 없이 크고 있었다.

이 가을 찬서리 들기 전, 백로만 지나도 당장 꺾일 기세라,

그들도 바쁜 생일 것이라.

푸른 기세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물꼬의 학교마당이고 텃밭이고 마을 어르신들이 지나며 늘 그러시지,

내가 마 농약을 확 뿌릴라다가, 라거나

내가 비료를 확 흩칠라다가, 라고.

무성한 풀들에 대해,

실하지 못한 물꼬 밭의 것들에 대해,

당신들의 관심과 애정일 것이다.

아침뜨락은 계자 끝나자마자 깎아놓은 것 위에

그 서슬로 약을 좀 만들어 쳐야지 했지만 오늘에사.

하자 하고도 열흘이 그리 흘렀다.

고작 열흘? 아니, 열흘이나!

여기 일은 자주 계획보다 더디다.

해충약은... 효과도 효과겠지만

사실 심리적인 안도도 없잖다.

 

늦은 오후에는 목공실로 썼던, 지금은 창고로 쓰는 비닐하우스를 손보다.

낡았다, 이곳의 어느 구석이 그렇지 않더냐만.

비닐과 차광막과 다시 비닐을 얹은 세 겹,

비가 늘 샜고,

천장에 고인 비가 물주머니처럼 여러 개 매달리듯 늘어져 있고는 했다.

마침 이웃에서 비닐하우스를 짓다 남은 비닐이 있었던 거라.

옳다구나 했고, 우리는 애써 외면하던 찢어진 비닐하우스에 드디어 눈을 주었다.

학교아저씨가 어제 소나기 지난 뒤부터 걷어내고 있었고,

오늘은 그 둘레 나무뿌리들을 잘라내고 있었다.

준한샘이 들어와 일의 수장을 맡았네.

당신네도 네다섯 해마다 지붕 이엉이듯 해온 일이라지.

기락샘도 손을 보태고 나간다 하였으나

학교아저씨와 두 사람만도 일이 된다 했다.

일을 다 하지 못하더라도 당장 비 내리면 문제가 없게끔

세 겹을 덮어주고 아래를 말아놓는 것까지만 오늘 끝.

물날께 태풍 지난다 하니 그때 피해가 없을 정도까지만.

다른 일은 다시 주말에 하기로.

주말에는 멧골책방 일정도 있으나,

현재는 사람들 들어오기 쉽잖을 걸로 봄.

코로나19의 상황은 더욱 긴박해지고 있는.

오늘 자정으로 전국이 물리적 거리두기 2단계.

실내 50, 실외 100인 이상 집합모임 금지,

무관중 경기, 공공 다중시설 운영 중단. 등교원격수업(등교인원 축소),

유연, 재택근무 등으로 근무인원 제한.

 

틈틈이 바늘집을 하나 만드는 중이다.

입체자수로 작은 꽃들을 수놓고 있다.

손에 그리 익은 일이 아니어 더디다.

밑그림이나 상을 다 그려놓고 하는 게 아니라

쳐다보며 되는 대로,

또 실 색깔이 있는 대로.

그래도 모아놓으면 꽃밭일 거라.

 

가마솥방을 벗어난 게 밤 10.

내일은 제도학교의 개학,

코로나19의 급격한 재확산으로 94일까지 온라인개학이지만

일단은 학교로.

다시 대해리를 벗어날 준비를 한다.

재택근무가 가능하지만 가서 처리할 일들이 남아있다.

원활하다면 하루만 머물러도 될 게고,

이틀을 넘지 않도록.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게, 더구나 한 학기를 보낸 정리라는 게

그곳에서 원하는 방식대로 하려면 내 손이 더딜 수 있을 것이다.

사나흘 머물 수 있는 채비.

 

이 밤에 챙겨놓고 가야 할 일은 무엇인가?

제도학교 동료 하나가 보내온 간단한 서식 하나도 열어는 보고 가야지,

아직도 건축신고가 들어가지 못한(이게 무려 7여년에 걸친 일이라) 사이집 서류 하나도 챙겨야지,

, 교육청에 제출한 서류 하나는 27일이 마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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