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의 교무실 곳간.

그곳에는 물꼬에서 하는 학습에 필요한 대부분의 준비물이 있다.

비록 다른 학교에서 혹은 가정에서 보내진, 이미 많이 낡았으나 유용한 물건들.

물꼬가 사물을 어떻게 대하는가 알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열린교실이라든지에서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쟁반에 장을 보듯 이곳에서 준비물을 챙겨갔다가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그 물건을 다시 제자리로 보낸다.

더러 어디에 둘지 잘 몰라서 정리되지 못하거나

너무 바쁘게 마무리하고서 나중에 하자던 손이 미처 못가기도 할.

어쩔 땐 가져간 사람과 돌려 놓으려 온 사람이 일치 하지 않아

자리를 제대로 못찾는 경우도 있을.

그러므로 꺼낸 사람이 넣을 사람에게 분명하고 정확하게 전달이 있어야 할.

오늘은 166 계자를 마친 곳간의 흔적을 보다.

글루건을 썼던 교실에서 마구잡이로 넣은 상자며... 

...

돌아갈(계자가 끝나고 집으로) 것을 아니 더욱 함부로 대하기 쉬운 상황이 있다.

아이들에게만 우리 그것을 강조한 건 아닌지.

이곳에 남을 사람, 혹은 이곳에서 이것을 다시 쓸 사람을 위해,

그리고 내 행위에 대한 정리로서도 물건은 제자리로 가야 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것이야말로 물꼬에서 익히고자 하는 첫째라 할 만.

한편, 우리들의 한 부분이 미처 손이 닿지 못했다 하여

우리가 보낸 애쓴 시간이, 아름다운 날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놓친 것을 꾸욱 짚어보는!

 

하얀샘이 들어와 달골 여기저기 풀들을 살폈다.

이것저것 섞어 만든 약제를, 지난번에 다 하지 못한 구역 중심으로 뿌리다.

마칠 무렵 예정했던 시간보다 두 시간 당겨진 소나기가 내려버렸네.

그래도 소용될 곳은 또 소용되겠지.

소나기 내린 참에 물길도 좀 살피지.

예제 툭툭 터지듯 갑자기 내린 창대비를 감당 못해 넘치는 곳들 많은 너른 마당.

느티나무 동그라미 아래로도 물길을 내놓고,

사이집 돌아 들어가는 언덕 아래로도, 도라지밭을 가로지르는 곳에도.

 

11학년 남학생의 위탁교육 논의가 있었다.

계자 끝나면 바로 하리라던 의논이었는데,

물꼬 일이 또 밀렸네.

비로소 오늘 긴 통화가 있었다.

고교를 필리핀에서 보냈으나 들어왔다 코로나19로 발이 묶인.

한국에서 대학을 가고 싶어하기도.

앞서 물꼬의 청소년계자를 보내며 적지 않은 자극들이 있었단다.

물꼬에서 대입수험생으로 돌입하기 전 시간을 보내보겠다는.

이번학기 3개월을 신청하였으나

여기 일정이 허락될지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특히 추운 날들에 쉽지 않은 이곳 삶이라...

 

몸과 마음을 꽤 돌보는 물꼬의 삶이다.

하지만 때로 그 노력은 자주 느슨해지고는 했다.

내 몸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자고 일어나 두어 시간이 지날 동안까지

모니터 안의 활자가 보이지 않아 당황했던 수 년 전 그날 이후로

이쪽이 쿵 저 쪽이 쿵, 삭아서 내려앉는 기둥 같은 순간들이 생겼더랬다.

노화다.

오늘 아침 눈을 떠서 허리통이 내 몸이 아니었다.

너무 아파 어디로도 몸을 움직이지 못한, 마치 사각 상자 안에 갇힌 것만 같았던.

비로소 주중의 제도학교와 주말의 비제도학교를 오가며 쉼없이 달린 한 학기를 끝냈는가.

아직 내게 이틀이 남았으나.(마지막은 연가로 4)

선배들이 더러 그런 농을 했더랬지,

, 너는 어쩌다 세상 나와서 몸 버리지만 우리는 날마다 베리고 있어!”

다시 물꼬로 온전히 들어왔으니

이제 몸과 잘 관계맺기!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6617 2024. 3.26.불날. 정오께 비 걷다 옥영경 2024-04-10 46
6616 2024. 3.25.달날. 비 / 그대에게 혹은 내게 옥영경 2024-04-10 71
6615 2024. 3.24.해날. 흐림 옥영경 2024-04-10 39
6614 2024. 3.23.흙날. 살짝 비 옥영경 2024-04-10 37
6613 2024. 3.22.쇠날. 흐림 / 오늘도 그대들로 또 산다 옥영경 2024-04-10 32
6612 2024. 3.2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4-04-10 26
6611 2024. 3.20.물날. 맑음 옥영경 2024-04-09 27
6610 2024. 3.19.불날. 진눈깨비 날린 이른 아침 옥영경 2024-04-09 32
6609 2024. 3.18.달날. 맑음 / 그대에게 옥영경 2024-04-09 31
6608 2024. 3.17.해날. 맑음 옥영경 2024-04-09 25
6607 2024. 3.16.흙날. 맑음 옥영경 2024-04-03 112
6606 2024. 3.15.쇠날. 맑음 옥영경 2024-04-02 92
6605 2024. 3.14.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4-04-02 91
6604 2024. 3.13.물날. 맑음 옥영경 2024-04-02 79
6603 2024. 3.12.불날. 흐리다 비 옥영경 2024-04-02 64
6602 2024. 3.11.달날. 맑음 옥영경 2024-04-02 49
6601 2024. 3.10.해날. 맑음 옥영경 2024-04-02 55
6600 2024. 3. 9.흙날. 맑음 / 사과 한 알 1만 원 옥영경 2024-03-28 77
6599 2024. 3. 8.쇠날. 오후 구름 걷히다 옥영경 2024-03-28 72
6598 2024. 3. 7.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4-03-28 66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