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웬 비가 그리 내리누.

아직 바람은 거세지 않았다만.

하기야 집을 건드리는 바람은 아니어 잘 몰랐는지도.

아침, 비와 바람과.

올해는 그야말로 우기의 여름이라.

 

차로 2시간 거리에서 오는 이들에게서

출발하겠다던 아침 10시 전화가 들어오다.

마침 하려고 전화를 들었던 참이라.

여기 비바람이 어떠냐고 물어왔다.

아직 거친 이곳. 그곳도.

모여 비와 바람이 좀 잦기를 기다린다는.

혹 못 올 걸음인가 싶더니 11시 출발한다고 들어온 문자.

 

햇발동 청소.

두 시간이면 해낼 일인데,

1층에서 진도를 더 못 내는.

간밤 들어왔을 적엔 으레 이 비의 날들에 있을 곰팡이냄새이려니 하는 정도였는데,

며칠 만에 환한 낮에 들어갔더니 예상치 못한,

예컨대 나무 조각 작은 상자 틈새에도 낀 곰팡이 같은,

곰팡이들의 대습격을 보다.

그야말로 장악하고 있었더라.

사람이 들어와 잘 곳인데, 다행히 방들이야 멀쩡했지만,

밥을 해먹을 부엌은 아니나 물은 먹어야지,

저래놓고 어찌 물을 마시고 거실에 앉아들을 있겠나,

솔질을 시작했다.

어느새 정오, 오후 잠깐 올라와야겠다 하고 벌려만 놓고 나서려는데

학교에 사람들이 이내 도착했다는 문자가 들어왔네.

비 멎고 바람도 자는 하늘 보며 사람들 들어왔나 보다,

사람들 편히 맞고 편히 들어서라는 물꼬 날씨의 덕을 또 이렇게 보나 부다 할 때.

 

챙겨들 오라는 밑반찬 한 가지는 댓가지씩 되고,

생선이며 과일이며 산골서 귀한 것들이 부려지고,

한 분은 인절미도 말로 해오셨다.

뜨개질한 손전화 가방이며 화사하게 모란을 그려 넣은 식탁 러너며

손으로 만든 여러 선물들까지도 안겨주다.

마음 넉넉한 어른들, 산골살림을 헤아린 엄마들이라.

국수를 준비하는 동안 내놓은 마늘을 잠시 까서 부엌 손을 보태고,

설거지를 할 때 또 마늘들을 까시고.

무 야채 피클과 고구마줄기볶음, 남은 반찬 두어 개를 맛나게들 드셨네.

홍차를 내려 떼오오랑주도 마셨다.

 

낮밥상을 물리고 물꼬 한 바퀴,

다시 찻상에 모여 비 내리는 속에 걷고 식은 체온을 데우다.

사람들이 잠시 쉬는 동안 다시 달골.

난로에 불을 지피고,

햇발동과 창고동의 못다 했던 곳들 청소기 마저 돌리고 걸레질,

하얀샘이 와서 손을 더하고.

준한샘이 들렀다 달골의 밭이며 물길을 봐주고.

 

저녁 밥상,

뭐 하지 말고 가져온 것들로 먹어!”

아구, 우리 집에서 내 하고픈 대로 할 거여요!”

물꼬의 음식이라는 게 따로 장을 보기보다

그때그때 들에서 온 것과 냉장고에 마침 있는 것들로 차려지는.

강낭콩밥에 김치와 마른 꼴두기 넣고 끓인 비지찌개.

떡과 어묵으로 떡볶이,

알타리김치와 두부부침조림과 멸치견과류볶음,

고구마와 같이 으깬 단호박에 견과류를 더한 샐러드.

 

일찍 달골 오르다.

씻고들 나와 밤 9시부터 11시가 넘어가도록 실타래.

신명나는, 생기가 있는 이야기들.

주로 물꼬를 오간 아이들과 어른들의 이야기.

 

인근 중학교에서 진행하기로 한 9월 일정으로 연락이 와 있었다.

달포동안 답을 미루다 더는 안 된다 하고 메일을 쓰려던 차.

이번 사흘 일정 뒤 무범샘이 하룻밤 다녀가고,

이어 유설샘네 다섯 식구가 사흘 다녀가면

중학생들이 올 다음 주를 맞겠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6600 2024. 3. 9.흙날. 맑음 / 사과 한 알 1만 원 new 옥영경 2024-03-28 7
6599 2024. 3. 8.쇠날. 오후 구름 걷히다 new 옥영경 2024-03-28 7
6598 2024. 3. 7.나무날. 맑음 new 옥영경 2024-03-28 6
6597 2024. 3. 6.물날. 흐림 new 옥영경 2024-03-28 7
6596 2024. 3. 5.불날. 비 그치다 / 경칩, 그리고 ‘첫걸음 예(禮)’ 옥영경 2024-03-27 15
6595 2024. 2.11.해날 ~ 3. 4.달날 / '물꼬에선 요새'를 쉽니다 옥영경 2024-02-13 284
6594 2024. 2.10.해날. 힘찬 해 / 설 옥영경 2024-02-13 145
6593 2024. 2. 8~9.나무~쇠날. 맑음 옥영경 2024-02-13 128
6592 2024. 2. 7.물날. 어렴풋한 해 옥영경 2024-02-13 119
6591 2023학년도 2월 실타래학교(2.3~6) 갈무리글 옥영경 2024-02-13 88
6590 실타래학교 닫는 날, 2024. 2. 6.불날. 비, 그리고 밤눈 옥영경 2024-02-13 113
6589 실타래학교 사흗날, 2024. 2. 5.달날. 서설(瑞雪) 옥영경 2024-02-13 83
6588 실타래학교 이튿날, 2024. 2. 4.해날. 갬 / 상주 여행 옥영경 2024-02-11 113
6587 실타래학교 여는 날, 2024. 2. 3.흙날. 저녁비 옥영경 2024-02-11 102
6586 2024. 2. 2.쇠날. 맑음 옥영경 2024-02-11 105
6585 2024. 2. 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4-02-11 93
6584 2024. 1.31.물날. 안개 내린 것 같았던 미세먼지 / 국립세종수목원 옥영경 2024-02-11 93
6583 2024. 1.30.불날. 맑음 옥영경 2024-02-11 93
6582 2024. 1.29.달날. 맑음 / 그대에게 옥영경 2024-02-11 96
6581 2024. 1.28.해날. 구름 좀 옥영경 2024-02-11 94
XE Login

OpenID Login